▲ ‘카페 띠아모’ 매장 전경.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음악 콘텐츠 업체에 근무하는 L 씨(여·30)는 얼마 전 카페에 갔다가 낯선 남자와 몸싸움을 했다. 카페에 어울리는 음악 선정 업무를 맡아 노트북을 들고 종종 카페를 찾는 그는 일방적인 남자의 시비로 창피를 당했다며 분개했다.
“카페 한쪽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자리를 전세 냈느냐면서 비키라고 하는 거예요. 다른 빈 테이블이 많았는데도 시비조로 계속 말을 걸어서 할 수 없이 꾹 참고 다른 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랬는데도 쫓아와서 또 계속 빈정거리더군요. 그러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막말이 오갔고 살짝 몸싸움까지 하게 됐어요. 일부러 오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평소에 노트북을 들고 와 있던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았어요.”
L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는 “생각해보니 매장 직원한테 바로 이야기할 걸 그랬다”면서도 “하지만 그 소동에도 남자를 만류하지 않는 직원들이 야속했다”고 털어놨다.
코피스족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일부 손님뿐만이 아니다. 업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손님이 눈엣가시로 비치기도 한다. 중소기업 직원 Y 씨(여·27)도 이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던 경험이 있다.
“집에 가면 아무래도 늘어져서 퇴근길에 집 근처 작은 카페에서 업무 관련 공부를 하곤 해요. 어느 날은 커피를 시키고 공부를 하다가 한 잔 더 마시려고 주문하러 간 순간 점주인 듯한 사람이 말하길 ‘팔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매장에 다시 오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커피 한 잔 시키고 하루 종일 있었던 것도 아니고 두 시간에 한 잔꼴로 시켰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싫었나 봐요. 바로 따지고 싶었지만 주인이 팔기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입술 깨물면서 짐 챙겨 나왔죠.”
카페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은 둘째 치고 치명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코피스족이 늘면서 새롭게 생긴 문제다. 세무사 P 씨(35)는 얼마 전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들여 노트북을 새로 마련했다. 코피스족만 노리는 전문 ‘꾼’ 때문이었다고.
“고객 회사에 외근 나갔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기보다 시원한 카페에 들러 일을 마무리할 때가 많아요. 자주 그렇게 하다 보니 방심하게 됐고 이번에 크게 당했습니다. 예전에는 화장실 갈 때도 지갑을 챙겨가고 노트북에도 주의를 기울였는데 최근에는 그냥 자리를 비웠거든요. 그러다가 지갑과 노트북이 다 사라졌습니다. 옆자리에 분명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더라고요. 화장실 갈 때마다 일일이 짐을 누구한테 맡길 수도 없고 지갑이야 챙긴다지만 노트북 같은 고가의 물건은 사실상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트북이야 어찌 됐든 가슴이 미어져도 다시 사면 되지만 그 안에 있는,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IT 개발자로 일하는 S 씨(32)의 이야기다.
“머리도 식힐 겸 프로그램을 짤 때 카페로 나올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가슴 서늘한 일을 당해서 요새는 좀 자중하고 있습니다. 노트북 전원 코드를 콘센트에 연결하면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해서 보통은 배터리를 완충해서 쓰는데 그날은 깜빡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배터리 방전 경고 메시지가 떠서 할 수 없이 코드를 꺼내서 꽂아놓고 바로 일어나 화장실에 갔어요. 그런데 갔다 오니 노트북 전원 코드가 뽑히고 그 자리에 누가 휴대폰 충전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장도 하지 않았는데 노트북은 꺼져 있었습니다.”
S 씨는 순간 너무 아찔해서 바로 전원을 연결하고 노트북을 켰지만 작업하던 프로그램은 날아간 뒤였다. 이후 프로그램을 복구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그는 “남의 코드를 함부로 뺀 사람을 보고 내 안의 폭력성을 억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본의 아니게 코피스족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카페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른다. 사보제작 업체에 근무하는 B 씨(여·28)는 급한 마감 때문에 카페를 이용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자리 때문에 피곤하단다.
“요새는 정말 카페에 넷북이나 노트북을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단순히 공부를 하는 사람부터 영화를 보는 사람, 동영상 강의를 보는 사람 등 다양해졌더라고요. 그래서 저처럼 급한 사람은 발만 동동 구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일단 아무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는데 배터리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거든요. 콘센트 옆은 명당이라 좀처럼 빈자리가 나지 않아서 일하면서도 누가 혹시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온 신경을 그 자리에 두고 있습니다. 워낙 장시간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은 터라 어쩌다 자리가 나도 다른 사람이 앉아버리면 그날은 포기해야 합니다. 마감 시간이 촉박한데도 콘센트 자리를 찾아 여러 카페를 전전해야 할 때는 정말 초조하다니까요.”
스스로를 코피스족이라고 밝힌 K 씨(31)도 속 쓰릴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재무컨설턴트인 그는 밖에서 고객과 미팅을 할 때 주로 카페를 이용한다.
“조명도 좋고 음악이 흐르고…. 딱딱한 사무실보다는 카페에서 고객들을 만나는 게 낫거든요. 그런데 한 달에도 수십 번 고객을 만나다보니 비용이 엄청납니다. 요새 대부분 브랜드 커피전문점 커피 한 잔만 해도 5000원인데 한 번에 두 명이 마시고 어떤 날은 미팅이 여러 번 일 때도 있어요. 개인적인 영업을 위해서 카페를 이용한 터라 회사에서 지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매달 쌓이는 커피 값 영수증만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프리랜서 D 씨(33)도 “카페에서 일하면 좀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업무적으로 쓰는 휴대전화 요금이나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아 코피스족으로 일하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고 고백했다. 어디서 하든지 일은 일인 셈이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