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배추 등 먹을거리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밥상 물가’가 치솟고 있다. 사진은 마트에서 장보는 시민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렇게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 물가와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면서 물가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8월과 9월 사이에 전기와 가스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물가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와 정부에서 발표하는 지표 물가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물가 통계가 특정 계절 농산물의 경우 산출이 되지 않는 달에 전달 가격을 반영하는 보합처리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유사 농산물의 가격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통계상 계절 농수산물의 경우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어 오히려 품목 대체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IMF가 지적하는 것처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 변동을 알기 위해 통계청이 조사하는 전체 품목은 489개. 그런데 이 품목들이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무가 10% 오른 것과 도시가스 요금이 10% 오른 것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은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가 489개 품목의 상승률을 모두 더한 뒤 평균을 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품목마다 가중치(전체 가중치=1000)라는 것이 있어서 상승률에 가중치를 곱한 뒤 전부 더해서 평균을 내게 된다. 무의 경우 가중치는 0.8에 불과하다. 반면 도시가스는 가중치가 16.1이다. 즉 무는 10% 올라도 전체 합에서 실제 반영되는 것은 8에 불과하지만. 도시가스는 10%가 오르면 반영되는 수치는 161이나 된다. 차량용 휘발유의 경우 가중치가 무려 31.2나 된다. 무보다 가중치가 40배나 높다.
반면 무를 포함해 대부분의 먹을거리들은 가중치가 낮다. 배추가 그나마 1.9로 높은 축에 속하지만 파(0.9) 양파(0.8) 콩나물(0.6) 등은 1 이하다. 한식 요리에 빠지지 않는 고춧가루는 2.8, 마늘은 1.4 정도다. 이처럼 먹을거리 가중치가 낮은 이유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전체 생활비 중 먹을거리에 사용하는 비용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가중치는 5년에 한 번씩 변경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정부의 통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고,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서민 입장에서 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중형승용차(가중치 5.1)나 외식 삼겹살(6.2) 건강기능식품(3.6) 등은 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데 반해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아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서민들은 이보다는 가중치는 낮지만 가격은 크게 오른 배추와 무 파 고등어(1.1) 명태(0.9) 오징어(0.9) 등으로 식탁을 차리기 마련이다.
489개 품목 중 절반 정도가 내리고 절반 정도가 올랐지만 서민들은 전체 물가지수보다는 대개 자신들이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상승률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세분화된 품목을 조사하다 보니 고소득층이 타는 중대형 승용차의 가격이 내리고, 서민들이 찾는 라면 가격이 오른 경우에도 전체 물가는 적게 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러한 통계상 문제를 의식해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통계청과 협의해 향후 소비자 물가동향 발표시 식품물가 대책을 함께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어쨌거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통계상 문제와 서민들의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체감 물가와 지표 물가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현재 물가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상승 속도는 상당한 문제가 있고, 이 문제에는 분명히 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부 정책은 바로 고환율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고환율을 선호하는 정책을 폈다. 고환율 정책을 펴면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품목의 수출 가격이 하락, 가격 경쟁력이 다른 국가의 상품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환율 정책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환율은 한때 1500원을 넘은 적도 있다. 현재도 1200∼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경제정책이 그렇듯이 환율정책에도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경제부처의 한 관료는 “환율은 제로섬(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손해를 보는 것)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경제 정책에 비해 빛과 그림자가 더 뚜렷하다”면서 “우선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이 오른다. 우리나라처럼 식량자급률이 25%에 못 미치는 나라에서 수입품 가격 상승은 고스란히 장바구니 물가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먹을거리 물가가 급등한 이유도 바로 고환율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정부 내부에서까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수입품 가격이 오르다보니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대기업에 넘기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대기업은 고환율을 등에 업고 사상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는 데 반해 중소기업은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이익이 줄면 이들 업체에 근무하는 서민 가장들의 월급 주머니는 얇아지고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률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물가 지표 상승을 ‘물타기’ 하기 위해 정부에서 새로운 통계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미국에서 나온 근원물가라는 개념이다. 당시 미 행정부는 소비자 물가가 연 5%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비판이 제기되자 가격변동이 심한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빼고 물가지수를 산출한 근원물가 지수를 만들어냈다. 이 지수는 현재 우리나라도 사용하고 있으며 매월 물가동향 발표시 ‘근원물가는 1%대가 지속되면서 물가의 전반적 안정흐름은 지속되고 있다(7월 소비자 물가동향 분석)’고 언급된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