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국무총리에 김태호 전 경남지사(48)를 내정했다. 사진은 2008년 당시 경남도청 업무보고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대통령과 김 지사. 연합뉴스 |
하지만 김 총리 후보자 기용에 대한 정치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은 이 대통령이 위험을 무릅쓰고 던진 승부수라는 게 중론이다. 개각 전 이미 세대교체형으로 청와대를 개편했기 때문에 총리는 경륜관리형으로 균형을 맞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미완의 대기를 총리로 전격 기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의 장·단기적 의도가 숨어 있다. 장기적으로는 김 후보자를 대권 잠룡으로 키우는 데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6·2 지방선거 뒤 대격변이 일어난 새로운 정치지형에 대처하는 맞춤형 인사 성격이 짙다. ‘박근혜 대세론’을 무력화시키는 ‘세대교체 프레임’을 통한 대권 구도의 다변화,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영남권의 민심 이반에 대한 무마, 그리고 노쇠화 현상을 보이는 보수층에 대한 체질 개선 등의 효과를 들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김태호 기용’ 노림수를 들여다봤다.
최근 미국대사관 정무라인은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동향파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 대사관 측은 인터넷을 통한 여론 전파가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높여준다는 점에 주목, 인터넷 공간에서 활약하는 1인 미디어(대표적인 것이 ‘미디어몽구’)와 면담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차기 야권의 대권 주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여권의 경우 ‘박근혜’라는 확실한 주자가 있지만, 야권의 차기 주자는 아직 안개 속에 있기 때문에 면담자가 선뜻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직접 면담을 했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차기 주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 대사관 정무관계자가 ‘안희정, 김두관은 어떤가’라며 자문자답을 하더라. 나로선 한명숙 전 총리나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이름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인물을 먼저 불러 놀랐다. 그래서 미국도 한국의 차기 대선이 기존 ‘평범한’ 주자보다 지방선거 뒤 집중 부각되고 있는 세대교체형 정치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안희정 김두관의 경우 도지사직을 던지고 바로 대선에 뛰어들기는 당장 부담이 크겠지만, 야권의 대선 구도가 급변할 경우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는 미국 대사관이 한국의 인터넷 여론 동향을 살피는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정무라인 관계자가 먼저 야권의 젊은 주자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그들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2012년 대선 구도의 프레임이 세대교체로 만들어질 경우 여야 대권 구도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민심을 확인한 이상, 차기 대선도 세대교체와 같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6·2 지방선거 뒤 여권은 인터넷 여론에 기반한 젊은 층의 투표율 상승과 그에 따른 예상치 못한 패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대통령으로선 세대교체 요소를 대선 구도의 핵심 변수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밝힌 대로 미국 대사관 측이 대안 미디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야권의 젊은 주자들을 주목하는 것도 한국 정치의 여론 형성 구조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고, 그것이 곧 차기 대선의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라인도 이런 세대교체에 대한 일련의 변화 분위기를 감지하고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7·14 전당대회 전 소장파 정두언 나경원 의원 등의 출마를 적극 독려, 당의 체질을 젊게 변화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 뒤 청와대 참모진도 50대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기용되면서 세대교체의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 박근혜 전 대표. |
그렇다면 왜 이 대통령은 무리하게 김태호 카드를 썼을까. 여기에는 차기 대선 구도 다변화와 지방선거 뒤 새롭게 전개되는 정국에 대응하기 위한 두 가지 전략이 담겨 있다. 먼저 김 총리 후보자가 새롭게 대권 주자 반열에 오름으로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이 또 다른 도전을 받고 있다. 만약 이번에 이 대통령이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같은 화합형 인사를 총리로 내정했을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계파갈등이 줄어들면서 친이계 의원들의 저항도 무뎌질 수밖에 없게 되고, 박 전 대표도 자연스럽게 대권 후보로 무혈입성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대교체형으로 급선회한 것은 ‘박근혜’와의 정면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로 읽힌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개각은 박근혜 대세론이 여권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다시 상기시켜 준 것이다. 보좌관·도지사 경력이 전부인 김태호 후보자까지 대권 후보로 키워 긴장이 풀린 대권 구도에 경쟁논리를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세대교체의 민심을 적극 수용하는 모양새도 갖췄다”라고 전제하면서 “그 결과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 총리 후보자 간의 극적인 단일화 그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권 구도가 박근혜 대세론에서 세대교체로 프레임이 바뀔 수 있다. 이미 링에 오른 박 전 대표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의 반란을 진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이 되면 60대에 접어드는 박 전 대표로선 여권 세대교체 주역들을 ‘진압’할 수 있는 ‘박근혜만의 카드’를 꺼내들 필요성이 높아졌다. 세대교체에 맞설 박근혜만의 아젠다 발굴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영남의 민심 이반 현상을 김태호 카드로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여당은 지난 선거에서 텃밭인 경남에서 무소속 친노 후보인 김두관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가 55.4%를 얻어 44.6%를 얻은 김정길 후보에게 ‘겨우’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부산·경남의 민심 이반과 차세대 주자로 우뚝 서고 있는 김두관 지사에 대한 견제카드로 김태호 후보자의 정치적 효용성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은 이에 대해 “부산·경남의 정치적 성향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관리 수준이 아니라 공세적 대응을 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여당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흔들릴 경우 대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리 방벽을 단단히 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 ‘여당이 너무 노쇠화되었다’라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보수의 현대화와 체질개선 없이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앞으로 김 후보자가 새롭게 선보일 소탈한 행보와 ‘캐머런 영국 총리식’ 이미지 메이킹은 정치권 전반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몰고 오는 동시에, 새로운 보수 대권주자의 모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신 보수주의의 시대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김 후보자가 이렇게 다목적 카드임에도 장기적으로 볼 때 그가 대권주자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따른다. 한나라당의 친이계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젊은 대권후보를 만드는 데 당내에 많은 의원들이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대 정권에서 총리의 운명은 대통령의 예스맨이 돼 정치적으로 망가지든지, 대통령과 대립하다 쫓겨나든지 둘 중의 하나인 만큼 김 후보자의 전망도 밝지 않다”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김 후보자로서는 당내의 비토 그룹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비전 제시와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한 제3의 길을 찾는 것만이 첩첩산중 대권가도를 뚫는 지름길이다. 김태호 후보자에게는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다. 무한도전을 한들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이, 그의 가능성이 무한함을 나타내는 역설이 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