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 ||
요즘 삼성, SK 등 경쟁그룹들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와 불법대선 자금 수사 뒤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반해 LG그룹은 전례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DJ정부 시절만 해도 LG는 반도체 사업을 반강제로 포기해야만 했다. 구본무 회장이 재계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던 LG가 요즘 왜 신바람이 난 것일까.
최근 구본무 회장의 행보를 보면 LG그룹의 신바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다. ‘역동적 LG’를 선언하던 지난달 27일 구본무 회장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을 단독면담 했다. 그리곤 커다란 선물도 받았다. 이날 만남은 지난 5월25일 노무현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의 청와대 회동 이후 그 후속으로 벌어진 공정위원장과 재벌총수들의 연쇄 면담의 첫 번째 순서였다. 재계에선 명실상부한 재벌 1위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구본무 회장이 면담 1순위에 오른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LG그룹의 행보가 노무현 정권의 ‘모범 답안’으로 ‘총애’를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재계 일각에서 나오는 평가다. 실제로 LG는 지난해 12월9일 불법대선자금 수사 초기에 강유식 부회장이 차로 1백50억원을 제공했다는 이른바 ‘차떼기’ 진술을 해 정국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이후 불법 대선 자금 수사는 애초 1백억원대를 제공했다는 삼성이 3백40억원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시인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최근에도 불법대선자금 재판과 관련 강유식 부회장이 지난 5월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 등 재벌그룹 관계자들중 가장 먼저 1심 선고를 받는 등 정국 흐름에 물 흐르듯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재벌기업의 사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와의 ‘밀월’이다. 국내 1위 재벌 삼성이 에버랜드의 지주회사화 문제로 공정위와 갈등을 보이고 있지만, LG는 소리 없이 ‘민원’을 해결하고 있다.
▲ 지난 27일 LG연수원에서 있었던 ‘스킬올림픽’ 행사. | ||
LG는 지주회사 체제를 만든 후 일부 계열사들의 지분을 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새로 개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지주회사가 자회사가 아닌 회사는 지분 5%를 넘게 가질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주)LG가 LG히타치 49%, 한국오웬스코팅 29.2%, 오티스엘리베이터 15.8%, 드림위즈 10% 등 5개 비계열사 주식을 5% 이상 갖고 있었고 규정대로라면 2년 내에 이 주식을 처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LG쪽 입장은 외국과의 합작사의 경우 추가 지분 취득이 어렵거나 아니면 주식을 대부분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5%룰’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구 회장은 강 위원장에게 “지주회사가 외자유치나 신규사업 발굴, 구조조정 등 지주회사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5% 이상의 전략적인 지분을 취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규제완화를 요청했다. 이에 강 위원장이 “LG측이 합작 투자사의 경우 이 조항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밝혀왔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강 위원장은 첫 번째 공식 면담에서 LG측에 선물을 안긴 셈. 그러자 LG측에 화색이 돌며 그날로 이천 인화원 LG그룹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투자에도 앞장서고 역동적인 LG로 만들자’며 기세를 올린 것이다.
이런 LG의 희색은 삼성과 공정위의 긴장 국면에 비춰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삼성과 공정위는 재벌계 금융계열사가 갖고 있는 계열사 의결권 허용폭을 축소시키는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여기에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이 자산의 50%가 넘는 바람에 자동으로 금융지주회사가 되는 문제까지 겹쳤다. 공정위 강 위원장과 이건희 회장의 면담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하고 역동적인 LG’를 만들겠다는 구본무 회장의 어깨가 유난히 가벼워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