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전격 복귀하면서 이학수 고문을 중심으로 한 전략기획실 재건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삼성 측은 “이 고문이 사면도 안 된 입장인 만큼 전처럼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 고문이 전략기획실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줄곧 이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학수 고문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이 회장을 수행했다.
이 고문은 지난 7월 15일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만찬 자리에도 참석했다. 이번 특사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8월 12일 논평을 통해 “이학수 고문을 비롯해 과거 전략기획실 핵심 멤버들이 여전히 이건희 회장의 참모 역할을 하며 그룹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삼성 측은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재계에선 이학수 고문 사면을 계기로 삼성이 본격적인 전략기획실 재건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삼성 주변에선 “전략기획실 출신 임직원으로 구성된 별도의 팀이 그룹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숱하게 전해지고 있다.
삼성 관계자들은 그동안 신속한 의사결정과 경영 효율성 강화를 위해 전략기획실의 부활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러나 이학수 고문이 새 전략기획실의 공식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삼성 관계자들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이 회장이 복귀한 데 이어 이학수 고문 중심의 전략기획실이 꾸려질 경우 불과 2년여 만에 삼성쇄신안 이전으로 회귀한다는 여론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 주변에선 삼성이 전략기획실이란 이름 대신 새 이름으로 컨트롤타워를 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을 주시하는 정보당국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학수 고문이 컨트롤타워에 직접 몸을 담지 않은 채 신사업팀 같은 별도 조직을 이끌면서 원격조종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후계 작업을 늦출 수 없는 만큼 황태자 이재용 부사장으로 힘을 실어줘야 하기에 이 고문이 경영에 적극 나서는 대신 이 회장 측근보좌 역할에만 전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고문이 다시 경영 중심에 서게 될 거라 보는 시선도 재계에선 제법 많은 편이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시작해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전략기획실로 넘어온 삼성 컨트롤타워는 총수의 손발 노릇을 하며 그룹 경영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왔다. 몇몇 대기업 정보 관계자들은 “이건희 회장에게 최측근인 이학수 고문 없는 새 컨트롤타워 구성은 무의미할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