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대한민국무궁화클럽 전경수 회장과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박은숙기자 espark@ilyo.co.kr |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다. 야당은 일제히 조 내정자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여당은 청문회에서 해명기회를 줘야 한다며 ‘특검’ 카드로 ‘조현오 구하기’ 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경찰 내 권력암투를 넘어 청문회정국을 달구는 핵뇌관으로 부상한 ‘조현오 발언’ 후폭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조현오 사태’는 조 내정자의 막말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그 서막이 올랐다. 문제의 동영상은 조 내정자가 서울경찰청장에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31일 기동본부 지휘관 464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사건의 핵심은 동영상이 유출된 배경이다. 당시 강연은 일반인도 아닌 경찰 내 지휘관들을 상대로 한 특강이었다는 점에서 내부자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그 동영상 CD는 서울경찰청이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기동단 내부에서 교육용으로 찍어 일부에만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 강연내용을 CD에 복사하거나 USB메모리에 담아뒀다가 의도적으로 유출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영상 유출 시기다. 조 내정자가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5개월 전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누군가 순수하게 경찰 수뇌부로서의 부적절한 발언을 문제삼으려했다면 이미 그 당시에 동영상이 유출됐어야 했다. 하지만 조 내정자가 경찰청장 후보로 내정되자마자 유출된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조 내정자가 경찰청장 후보로 내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외부에 유출시킨 듯한 모양새다.
과거에도 경찰 고위층 인사를 하는 시기에는 감찰부서에 비위 사실에 대한 투서를 넣거나 청와대 윗선에 제보하는 등 ‘자리’를 두고 경쟁관계에 있는 인사들이 상대방 흠집내기를 한 전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경찰 간부들 앞에서만 강연을 한 1시간8분 분량의 화면이 언론사에 통째로 넘겨진 사례는 없었다. 전면적인 언론공개를 통한 파상공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 내정자의 낙마를 노리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넘겼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일선 경찰간부들은 “발언이 국민정서에 반하는 내용이라 경찰청장 입성을 코앞에 둔 조 내정자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조 내정자는 ‘국민의 일꾼’ 이미지로 밀어붙여야 하는 경찰청장에 걸맞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졸지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다분히 정치적인 냄새가 난다”며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다. 대다수 일선 형사들도 “군대만큼이나 지휘체계가 분명한 경찰 조직에서 내부 발언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자체만으로도 순수한 의도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 갈등은 경찰내부를 사분오열시키는 고질병이었다. 현 정부에서 경찰인사의 키워드는 ‘고려대-TK(대구 경북) 라인’이었다. 강희락 경찰청장(고려대-경북 성주)을 비롯해 김석기 전 서울청장(영남대-영일), 주상용 전 서울청장(고려대-울진) 등 이른바 경찰 최고 노른자 요직을 ‘고려대-TK’ 인사가 차지했다. 이 때문에 승진 때마다 최고 ‘정점’ 입성에 실패했던 경찰대 출신들의 불만이 쌓여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업무실적과 성과를 강조하는 조 내정자가 서울청장에 오르면서 자부심과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경찰대 출신들이 불가피하게 소신을 접어야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더구나 끊임없이 불거지는 ‘경찰대 폐지론’에 더해 소수의 경찰대 출신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경찰대 출신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번 양천경찰서의 고문수사 파문과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 조 내정자의 성과주의를 지적하며 동반퇴진을 요구한 하극상 사태도 경찰 내부 권력암투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이번 동영상 유출사태도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힘겨루기라는 고질적인 내부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은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한다. 사법고시와 외무고시 출신 간부들과 이른바 ‘고려대-TK’ 인사에 밀려 최고 수뇌부 진출이 사실상 봉쇄돼온 경찰대 인사 측에서 ‘조현오 죽이기’를 본격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찰대 출신을 경찰총수 자리에 앉히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알게 모르게 감행됐다는 얘기도 있다. 경찰대 출신이 경찰총수에 등극할 경우 본격적인 경찰대 출신 수뇌부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에서 경찰대 출신들이 이번 인사에 사활을 건 게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경찰내부 암투로 몰아가거나 특히 경찰대 출신 측에 의혹을 보내는 것은 다분히 억지스럽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대 출신 간부들은 황당하다 못해 불쾌하다는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1985년 이후 매년 120명씩 배출되는 경찰대 출신들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명되는 등 다른 출신보다 고속승진을 하며 조직 내에서 숫자는 적지만 파워풀한 권력 이너서클을 형성해 왔다.
현재 경찰조직에는 경찰대 1기생뿐만 아니라 2기에서도 치안감이 배출된 상태로 경북 영일 출신인 이강덕 부산청장과 경남 합천 출신인 윤재옥 경기청장 등 쟁쟁한 실력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실력으로 치자면 조 내정자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즉 ‘자리싸움’을 위한 지저분한 ‘암투’를 하지 않아도 경찰대 출신 실력자들의 수뇌부 진출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오히려 경찰내부 세력대결로 몰아가는 자체가 음모라는 역공세를 펴기도 한다.
경찰 일각에서는 경찰대가 아닌 조 내정자의 실적주의에 불만을 품은 하위직에서 ‘조현오 낙마’를 꾀한 ‘거사’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경찰 내부 암투설 등이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본질은 조 내정자의 발언이 과연 국가치안 책임자의 자리를 맡겨서는 안 될 만큼 심각한 배제 사유가 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막말파문 외에도 갖은 악재가 겹친 조 내정자가 험난한 풍파를 헤치고 치안사령탑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