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수사대상에 오르자 이 씨는 해외로 도피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의 행방을 끈질기게 추적, 그의 소재를 파악해 미국법원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이 씨는 7년 동안의 도피를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고 한국 땅을 밟자마자 검찰에 의해 현장에서 바로 구속됐다. 부도 직전 회사를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후 자신의 잇속을 챙겨온 이 씨의 뻔뻔한 범죄 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당기손실 규모가 54억여 원 정도 될 것 같은데요.”
I 사 임원실은 가결산 결과가 나오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코스닥 상장업체였던 I 사는 그동안 해마다 수십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부도 위기가 현실로 다가올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 공시될 경우 대외신뢰도가 떨어져 금융권 대출마저 끊길 우려가 있다는 점이었다. 대책회의를 위해 임원실에 모여 앉은 회장 이 씨와 사장 황 아무개 씨, 부사장 노 아무개 씨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 재무제표 조작이라는 ‘묘안’을 떠올렸다.
재무제표 상에서 손실액을 감추고 흑자를 기록한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하면 외부로 재정난이 새어나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씨와 공모자들은 우선 54억여 원의 당기순손실액을 감추기 위해 매출액을 80억여 원으로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분식회계를 했다. 또 이를 근거로 모 시중은행 등에서 50억여 원을 대출받았다.
처음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방편으로 분식회계를 했지만 계속해서 적자 규모가 커지자 이들의 행각은 갈수록 대담해졌다. 이후 425억여 원의 적자를 12억여 원의 흑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 씨와 공모자들은 같은 방식으로 1997년까지 재무제표와 감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금융기관에서 12차례에 걸쳐 수백억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2년 동안 대출받은 금액만도 모두 828억여 원에 달했다. 문서상으론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는 건실한 업체였기에 금융권에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편법적인 방식으로 간신히 운영돼 오던 I 사는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부도를 맞았고, 1999년 7월 코스닥 상장도 폐지됐다.
마땅히 경영진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었지만 회장과 사장, 부사장이 모두 공모자인 데다 IMF 위기로 당시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진 탓에 이들의 행각은 묻혔다.
이 씨는 외부에는 IMF 여파로 회사가 갑작스럽게 사업을 접게 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부도 직전에 업무상 보관하고 있던 회사자금 20억여 원을 뻔뻔하게 챙기기도 했다. 부도를 맞은 후에도 이 씨는 회사를 이용해 계속 자신의 잇속을 챙겼다. 그는 I 사의 종합건설업 부문만 가지고 새 회사를 차렸다. 건설 사업의 경우 이 씨가 부도 전에도 이중계약서로 꾸준히 자신의 주머니를 불려온 분야였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씨는 1996년부터 I 사의 공사현장에서 하도급 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실제 하도급 금액보다 높은 금액의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했다. 실제 금액보다 더 많이 지출된 공사비 중 차액은 물론 자신이 챙겼다. 이 씨는 새로운 회사를 차린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비자금을 마련해 모두 63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회사와 관계없는 업체에 금전을 대여하거나 부당지원하는 방법 등으로 회사 돈 160억 원가량을 유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 씨의 ‘막장 경영’ 때문에 새로 차린 건설업체 역시 자금난에 허덕였다. 이 씨는 당시 정치권 인사 등을 이용해 금융권 대출을 받은 혐의로 법정에 선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씨가 운영한 업체는 자본금 120억 원에 총부채가 1500억 원으로 부채 규모가 자본금의 12배에 이르는 부실기업으로 꼽혔다.
2003년 자신의 범죄가 발각되자 이 씨는 미국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2009년 한국 법무부가 신청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수락한 미국법원에 의해 강제로 귀국길에 올라 곧바로 검찰에 구속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관계자는 “이 씨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황 씨는 미국에서 도피 중이고, 노 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200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확정받았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