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8일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대한민국무궁화클럽 전경수 회장과 회원들이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특검’ 도입 주장은 청문회 종료와 동시에 일단락되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노무현 재단이 조 후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이 조 후보자의 명예훼손 혐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검찰은 상황에 따라서 조 후보자를 직접 소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차명계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수사가 중간에 종결된 만큼 실제 존재할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조 후보자가 말한 차명계좌란 어떤 것이며 그는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발언을 했을까. 정치권을 요동치게 만든 조 후보자의 차명계좌 발언 이면에 감춰진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 |
이 발언은 조 후보자가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이후에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노무현 재단과 유족들은 조 후보자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조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나왔던 것일까. 조 후보자는 이에 대해 일단 “당시 주간지인지 인터넷 언론 기사인지를 보고 한 말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수사대상으로 언급된 2009년 1월부터 조 후보자가 차명계좌 발언을 한 2010년 3월 13일까지 차명계좌와 관련해 보도한 언론은 일간지는 물론이고 주·월간지 및 인터넷 언론 등 어디에도 없었다. 조 후보자의 이 같은 해명도 거짓이었던 셈이다. 결국 조 후보자가 이런 발언을 한 근거는 다른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이었던 조 후보자가 경기청 소속 정보과 경찰들이 올린 첩보에 근거해 발언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관내 각 경찰서 마다 첩보 수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찰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기경찰청 자체적으로도 정보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는 일선 경찰서 소속이면서도 전문적으로 검찰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경찰도 있다. 각 정보팀에서 올라오는 정보의 양은 국정원을 능가한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2009년 초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할 당시 서초동 주변에서는 갖가지 루머들이 나돌았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 아무개 씨가 바다이야기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차명으로 관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가 해외에서 벌이려 했던 사업자금 출처가 차명계좌에서 나왔다’는 식의 루머들이었다. 대부분 허위사실들이었다.
첩보를 수집하는 경찰들은 이 같은 내용들을 가감 없이 상부에 보고했다. 그들은 첩보에 대한 사실 확인뿐만 아니라 시중 루머까지 보고하는 것도 임무였기 때문이다. 당시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관련 첩보들은 대부분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에게 보고됐음이 분명하다.
현재까지 경찰 내부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얘기는 조 후보자가 이런 첩보를 기억하고 있다가 강연 과정에서 불쑥 꺼냈다는 것이다. 즉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첩보 수준의 정보에 낚여 이를 그대로 내뱉었다는 것.
그러나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발언의 근거를 대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검찰 조사에서 모든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검찰은 ‘차명계좌는 없다’는 전제 하에서 수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4일 기자와 만난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차명계좌는 없었다. 당시 수사에 대한 언론의 경쟁이 얼마나 뜨거웠는데 차명계좌가 있었다면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았을 리 없다. ‘차명계좌는 없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은 조 후보자가 검찰에서 어떤 진술을 하느냐가 사건 처리의 1차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후보자가 ‘인터넷에 나온 얘기였다’는 식으로 사실상 허위사실임을 인정하면 결론은 간단해진다.
반면 조 후보자가 ‘차명계좌 발언의 근거가 있다’고 진술할 경우 사건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차명계좌와 관련된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 후보자의 사법처리에 대해서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100억대 비자금 사실을 폭로해 기소된 주성영 의원과 비슷하게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2008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1년 반이나 지난 8월 26일에서야 약식 기소 처리했다. 검찰은 주 의원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지만 비자금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최근에야 기소했다.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당사자인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사건도 처리가 늦어져 주 의원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검찰 내부의 분위기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