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소 동기 8명이 출소 후 다시 만나 간 큰 절도행각을 벌였다. 사진은 영화 <홍길동의 후예>. |
이들 일당이 처음 경찰조사를 받았던 것은 인천 소재 병원 금고를 턴 혐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범죄횟수와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예닐곱 군데의 기업을 털었으며, 특히 3년 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침입해 금고에 있던 유가증권 208만 주와 현금, 수표 등을 합쳐 104억 원가량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최첨단 보안이 갖춰진 장소들을 망치와 드라이버 하나로 뚫어버린 금고털이범들의 대범한 범죄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한 박 씨는 교도소에서 의기투합했던 8명이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새 출발에 대한 기대나 교도소에서 쌓였던 정 때문이 아니었다. 박 씨는 교도소 수감 당시 절도행각을 벌이다 잡혀 온 전과자들과 계획적으로 친분을 쌓았다. 절도에 있어선 제각기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모이자 보안장치 해제부터 출입문 개방, 금고개방, 증거인멸까지 다년간의 경험이 쌓인 다양한 절도기술이 총집결했다. 박 씨를 조사한 담당 경찰은 “교도소에서 마치 ‘드림팀’을 구성하듯 각자 한 가지 분야에서 손이 재빠른 전과자들이 모여 범행을 모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도소 출소 후 규모가 큰 기업이나 병원만을 골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규모가 큰 곳일수록 피해사실을 외부에 쉽게 드러내지 않는 데다 인력보다 보안장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범행이 즉시 발각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노렸다.
이들은 출소 후 사전에 계획한 대로 8명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사전답사팀, 현장급습팀, 잠금장치 해제팀, 증거 인멸팀 등으로 나눠 규모가 작은 일반 기업의 금고를 털며 ‘실습’을 했다. 범행 이후 경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자 이들은 본격적인 범행에 돌입했다. 이들이 노린 것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금고였다. 2007년 4월 16일 현장탐사 팀이 미리 회사를 방문해 비상계단의 위치 및 재무관련 부서가 있는 층수를 확인하고, 이어 실행 팀이 동선을 짰다.
새벽 3시 40분경. 현장을 급습하는 실행팀의 손에는 어떤 첨단장치도 없었다. 못을 뺄 때 쓰는 장비 하나와 드라이버, 스카치테이프가 전부였다. 이들이 노린 것은 비상계단이었다. 야간근무가 많은 기업은 밤늦은 시간까지 비상계단을 개방해둔다는 점을 노렸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들은 비상계단을 이용, 재무팀이 있는 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순찰 중이던 경비원에 발각됐지만 재빨리 경비원을 붙잡아 준비해간 스카치테이프로 입과 손발을 묶어버렸다. 그리고 드라이버를 이용해 출입문을 열었다. 이미 다른 기업을 털면서 실습한 뒤라 금고위치도 쉽게 찾았다. 현장급습팀이 금고를 찾자 잠금장치 해제팀이 못을 뽑는 장비로 금고 문도 쉽게 열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회장 자녀들 명의의 주식 208만 주(액면가 104억 원)와 현금 2000만 원, 수표 1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사후처리팀은 경찰 추적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지우고 재빨리 빌딩 밖으로 빠져나왔다. 경비를 맡은 보안업체가 신속하게 달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절도의 달인’들만 모인 박 씨 일당이 범행을 끝내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에도 기업체와 종합병원을 골라 같은 방식으로 절도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동일 수법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인천지방경찰서는 피해 업체를 상대로 통신 수사를 벌였고 결국 박 씨 일당의 대담한 행각도 덜미를 잡혔다.
8월 26일 기자와 통화한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나머지 용의자 5명이 도주한 탓에 피해규모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며 “인천지역에서 동일 범죄가 이어졌지만 피의자들이 범행 현장에 작은 단서 하나 남기지 않아 이들의 범행은 오랜 시간 미궁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