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당권경쟁이 정세균 전 대표(사진)를 지지하는 486세력과 손학규·정동영 고문 지지세력 간 대결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
우선 지난 8월 31일 마무리된 민주당 조직강화특위의 지역위원장 선정결과에서 이런 특성이 두드러졌다. 전국 245개 지역구 가운데 인준보류 또는 사고 지역구 14곳을 제외한 231곳의 지역위원장 선정을 마쳤는데, 정 전 대표 측으로 분류된 지역위원장의 수가 70~8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의 주축이 바로 ‘친노 486’과 ‘정통 486’이다. 반면 손 고문 측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40~50명, 정 고문 측은 호남과 영남 일부가 주축인 40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물밑에서 진행돼오던 정 전 대표에 대한 486그룹의 지지가 수면 위로 부상한 데 힘입은 것이다. 486 출신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인 ‘삼수회’는 최근 토론회를 열어 ‘정세균 옹립’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상호 전 대변인은 “전체 회원 21명 가운데 송영길 인천시장을 제외한 전원이 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냈다”고 했다. 백원우 의원 등 당내 ‘친노 486’ 인사들 대부분도 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김근태계로 최고위원 출마를 준비 중인 이인영 전 의원과, 그를 지원하기로 한 임종석 전 의원도 정 전 대표와 전당대회에서 우호적인 연대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 전 대표에 대한 486그룹의 지지세가 지근에서 활약해온 강기정, 최재성 의원과 우상호, 오영식, 윤호중 전 의원 등의 측근그룹을 넘어 세력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486그룹은 ‘빅3’의 조직대결뿐만 아니라 노선경쟁에도 그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정 전 대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민주당의 노선과 역사를 승계할 정통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486인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 고문은 민주당의 대선후보까지 됐으면서도 탈당과 복당의 과정에서 당의 적자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손 고문의 경우에도 완전하게 뼈와 피까지 민주당표로 거듭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486그룹 내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인식은 세 후보의 정치지향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 손 고문의 ‘실용적인 진보’, 정 고문의 ‘담대한 진보’는 486그룹이 추구하려는 ‘중도까지 포괄할 수 있는 리얼(real)진보’의 노선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는 사실 중도에 가까운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포용력과 합리성으로 486들의 정치노선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정 전 대표가 가장 진보적인 486인 이인영 전 의원에 대해 공을 들인 것도 선명성 강화 효과를 노린 측면이 강하다.
이에 대해 손·정 고문 측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손 고문 측의 한 관계자는 “이미 486그룹은 민주화시대의 적통을 이을 이념적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됐고, 권력적 측면에서도 기득권층에 속하면서 정통성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쏴붙였다. 정 고문 측 관계자도 “세력대결의 구도에서 486그룹이라는 이름이 필요했을 뿐, 실질적인 내용은 구식 정치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힐난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정 전 대표와 486그룹의 관계에 주군과 신하가 아닌 ‘동업자인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정 전 대표는 486의 힘을 빌어 당권을 잡고, 486은 정 전 대표를 통해 사실상 당권을 접수하려는 의도가 서로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비(非)486의 한 당직자는 “486들은 정 전 대표체제가 되면 창업의 ‘대주주’로서 당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손, 정 고문의 경우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정 전 대표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486그룹의 기대에 부응하듯 정 전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는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각축장이 아닌 더 큰 변화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실상 대선후보까지 나설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그가 손 고문에게 전당대회 불출마를 권한 것도 자신에게 당권을 맡기고 대선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486그룹의 구상대로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 전 대표가 당권 재도전에 성공하고, 최재성 백원우 이인영 등 486 출신 최고위원들이 지도부에 입성할 경우 민주당은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의 트랙에 들어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세대교체를 이루는 것은 물론, 진보적 가치 추구, 야당의 선명성 강화 등의 ‘좌클릭’ 노선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게다가 2012년 총선을 겨냥한 ‘물갈이 공천’과 정권교체 전략의 일환으로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은 문호개방 등이 현실화된다면 대선후보 경쟁 구도에도 파란이 일 수 있다. 최재성 의원은 노골적으로 “지난 총선에서 정체성이 불투명해진 민주당을 486 출신 등 개혁블럭 중심으로 다시 정비하고, 이를 토대로 2012년을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486그룹이 향후 15년 정도는 구세대를 대체해 정치를 이끌 중심이라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이것이 당 안팎에서 486그룹의 ‘정세균 지지’를 단순한 당권 세력전이 아니라 민주당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대모험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는 이유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