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일만 잘하면 된다”는 인사 원칙으로 지금까지 4차례 개각을 단행했지만 단 한번도 호평을 받은 적이 없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전임 대통령들은 인사를 국정 쇄신의 최대 기회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4차례의 개각을 단행했지만 단 한 번도 호평을 받은 적이 없다. 굴러온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악순환을 거듭하다 이번에는 내각수반인 총리 후보자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자진사퇴’시켜 역대 최악의 인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여기에는 이 대통령의 ‘3대 고질병’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과 권력에 대한 과욕, 국회와 내각을 ‘졸’로 보는 청와대 중심의 독선주의, 정치적 신의가 없고 우유부단한 성향이 빚은 총체적 리더십 부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얽힌 국정 운영 난맥상을 짚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 욕심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30여 년 동안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경험을 통해 ‘천재 한 명이 천 명, 만 명을 먹여 살린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는 기업계의 바이블 같은 인사 원칙이 그대로 몸에 밴 ‘정치인’이다. 이런 원칙은 그가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예외 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의 틀로 정치를 억지로 꿰맞추는 아집을 고수하다 결국 이번에도 인사 실패를 자초하고 말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실 그는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모호한 인사 원칙으로 지금까지 4차례 개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훌륭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 국론통합을 위해 주요 사회집단과 야당에서 추천한 인사를 내각에 충원하는 방식까지 쓰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한국의 경우 지역안배 전략에서 한 발 나아가 사회집단과 당파까지도 안배를 해야 정치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복잡다단한 정치 환경에 맞는 정무적 인사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민심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효율성을 앞세운 경제논리로 인사를 재단하려는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욕심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일을 할 때 가장 최우선으로 ‘누구’를 쓸 것인지, 즉 포석을 어떻게 두는지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쓴다. 일단 포석을 깔면 그 뒤 전략은 일사천리로 나간다. 포석 때 이미 전투할 전략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찾는 데 시간도 걸린다”라고 전제하면서 “그런데 이 대통령이 포석에 집착한 나머지 사람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한 것 같다. 이번 인사에서도 민정 라인에서 사전에 후보자들의 도덕적 결함에 대해 보고를 했겠지만, 결국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판단에서 (대통령이) 최종결정을 한 게 아니겠느냐. 사람에 대한 과욕은 이 대통령이 인사를 사실상 직접 챙기는 ‘사천’을 가져왔다. 시스템보다 대통령의 사적 기호에 따라 인사가 좌지우지된 것이다. 이번 차관 인사(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의 인사)를 비롯해 현 정권 역대 개각에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이 작동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도 이 대통령의 과도한 사람 욕심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 8월 24일 당시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그는 청문회 과정서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29일 자진사퇴했다. 연합뉴스 |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인사 파동은 이 대통령 특유의 권력 운용 기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이해찬 전 의원 등 실세총리를 기용하며 권력 균점과 분산을 꾀했다. 청와대 중심의 권력 집중이 낳은 폐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총리실을 청와대 하부기관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정운찬-김태호 두 총리 기용에 잇따라 실패했다. 차관 인사까지 직접 챙기려 했을 정도로 청와대 중심의 권력 독점욕이 강했기 때문에 장관들이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느냐.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치면서 이미 관가에도 자율성이 정착돼 있는데 그것을 거꾸로 돌리려고 하다가 이런 인사 난맥상을 부른 것 같다. 절반 정도의 각료 임명권을 총리에게 과감히 넘기고 권력 분산을 유도했다면 이처럼 혼자서 인사 파동의 덤터기를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신의 부재와 우유부단함도 이번 인사 파동의 진동을 더 크게 높였다. 특히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측은 이번 파문을 겪으면서 여권에 배신감도 느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3선이 확실한 김 전 지사를 총리로까지 올리려 했다면 그에 맞는 확신과 신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문회 이틀 동안 김 전 지사가 뭇매를 맞자 이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버리지 않았느냐. 물론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끈끈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유력 주자를 총리로까지 밀어 올리려면 이 대통령이 조금 상처를 입더라도 최대한 지원을 해주는 모양새를 취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 대통령 측근 가운데 그 누구도 낙동강 오리알이 된 김 전 지사에게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 입장으로선 여론을 따랐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정치인이 볼 때 신의나 약속을 언제라도 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정치적 의리가 없다. 효율성과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가 이미지만 오버랩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에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그런데 왜 시중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사퇴한 것으로 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 8월 20일 당시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그도 지난 29일 김태호·신재민 후보자와 함께 자진사퇴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한편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 대통령 용인술의 단점은 폐쇄성과 타이밍 상실, 능동적 참모 부족이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의 인사, 2009년 경제부처 개각 등 인사 때마다 두세 달씩 질질 끌어 타이밍을 놓쳤고, 이른바 ‘MB이즘’을 앞장서서 논리적·합리적으로 전파하려고 애쓰는 능동적 참모를 보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폐쇄성과 능동적 참모의 부족은 인사라인이 실세 중심의 사적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친이계 한 중진의원은 이에 대해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의 상당수가 이상득 의원-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초기의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을 짰던 사람들이 아직 다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도 문제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하자가 있어도 능동적 참모들이 없어 내부 필터링이 안 되고, 그것이 그대로 이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추석을 전후로 새 총리 및 장관을 뽑아야 하는 이명박 대통령. 정치를 하면서 ‘사람’을 경제학의 구성 요소로만 생각한다면 천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를 데려온다 한들 또 한 번 청문회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충고도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