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민주당 당대표 후보 예비경선에서 당선된 후보들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배숙,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정세균, 손학규, 이인영, 최재성, 백원우 전대 주자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앞서 9일 치러진 예비경선(컷오프) 결과는 전대 본선이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현재 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평가받는 정세균·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 등 ‘빅3’와 독자세력화를 선언한 백원우, 최재성 의원과 이인영 전 의원 등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그룹’ 3명이 모두 컷오프를 통과해 본선 후보로 등록하면서 당권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본선’에 진출한 천정배·박주선 의원도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 평가받고 있어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가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인2표제로 6명의 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는 후보군은 486그룹이다. 이들은 단일화 조건으로 제시했던 예비경선 순위를 당이 공개하지 않아 본선 돌입 전에 후보단일화를 이루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향후 본선 경쟁 과정에서 단일화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486대표주자의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당권 경쟁은 ‘빅3 대 486’이라는 세대 대결 양상이 될 것이고, 이들의 본선 성적에 따라 민주당 대선 국면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우상호 전 의원은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단일화 일정을 연장하기로 하고 일단 후보자 등록을 했다”면서 “당 지도부가 표결 결과를 확인해주는 것이 후보 단일화를 지지하는 대다수 당원과 대의원의 요청이자 요구”라며 순위 공개를 촉구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이들이 당초 전망과는 달리 예비경선에서 모두 본선에 오르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서 딴 생각이 든 게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같은 486그룹이지만 백원우 후보는 친노(친노무현)계, 이인영 후보는 김근태계, 최재성 후보는 정세균계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관계로 각자 지도부 입성의 길을 찾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 전 의원은 “반드시 단일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론조사 같은 단일화 방식과 시기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486그룹의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룰 경우, 전대의 본선 후보는 7명밖에 되지 않아 모두 6명의 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이번 전대의 탈락자는 1명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인 조배숙 후보가 탈락할 경우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자동 입성하게 돼 떨어지는 후보가 없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순위 싸움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빅3’의 경우 1위를 해야 되는 게 지상과제다. 3위 이내의 성적으로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예비경선에 ‘빅3’ 후보들 가운데 3위 안에 못 든 후보가 있다는 설이 당 내외에서 돌면서 이들 캠프를 긴장케 하고 있다. 나머지 후보들은 ‘빅3’ 중 한 명을 꺾고 최소 3위 안에 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후보들 간의 합종연횡과 짝짓기가 본선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486그룹의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 정세균-최재성의 주류연대, 정동영-천정배-조배숙의 반(反)정세균 연대, 손학규-박주선의 지역연대라는 합종연횡 구도가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친노인 백원우 후보와 김근태계인 이인영 후보가 누구와 연대를 모색하느냐에 따라 당권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빅3’들은 연대를 위한 물밑접촉에 나서는 한편, 정책 이슈 선점과 세과시를 위한 행보에도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손학규 후보는 국내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선거 후원회장으로 영입해 위상 높이기에 나섰다. 최 교수는 서강대 교수 출신인 손 후보와는 학계 때부터 교분을 쌓아온 사이로, 지난 2년간 손 고문이 칩거했던 춘천에도 가끔 들러 진보 정체성 등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보수파보다 더 과격하게 신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며 “무능력과 비개혁으로 실패한 이상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겨도 당연하다”고 비판해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에 친노그룹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세균 후보 측에서는 당장 견제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 후보 측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정권이 탄생해도 당연하고, 민주주의 후퇴는 없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반성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놓았다. 정 후보는 대응카드로 전북 출신인 소설가 박범신 씨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했다. 한 측근은 “정치인과 기업인이 후원회장을 하면 부담스러운데 중량감 있는 문인이 기꺼이 하겠다고 해서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정동영 후보는 노선경쟁에 불을 지폈다. 정 후보는 이날 “독소조항 제거를 위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전면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선제구를 날렸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가 초고속으로 추진될 때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와 고민이 없었음을 고백한다”면서 “개방에 대한 원칙이 무엇인지 합의해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란 이슈로 ‘담대한 진보’를 내건 선명성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빅3’간의 무한경쟁과 486그룹의 단일화 여부 등으로 민주당의 당권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
※ 본 기사가 보도된 이후인 지난 12일 친노계 백원우 후보가 전격 사퇴해 당권 경쟁구도에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