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에 있는 한화금융프라자. 한화그룹이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
이번 한화증권 비자금 의혹 수사의 단초가 된 것은 금감원에 들어온 한 통의 투서였다. 금감원은 지난 6월 ‘한화가 그룹 차원에서 지시해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제보가 접수돼 조사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입수한 첩보는 한화증권에서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근무했던 한 전직 직원이 제보한 내용으로 그룹 내 비선조직인 ‘장교동팀’이 한화증권 지점에 개설된 차명계좌를 통해 300억~5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해왔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해당 제보가 들어온 이후 자체 조사에 들어간 금감원은 관련 의혹을 수사기관이 직접 조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지난 7월 검찰에 해당 자료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한 달여 내사를 벌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8월 말 사건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으로 이첩했다. 사건이 배당된 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최근까지 활발한 수사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에는 한화증권 참고인 두 명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며 이번 사건의 파장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여의도 증권가와 애초 조사를 시작했던 금감원 내부에서 이번 비자금 사건 제보자에 대한 신빙성 문제가 거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첩보에 의해 시작된 이번 수사에서 실질적인 제보자가 자금흐름을 담당했거나 해당 비자금 계좌를 관리하던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검찰 관계자 역시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은 단 한 건의 제보며 계좌 자체와 실질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기류와 맞물려 검찰 내부에서조차 이번 한화증권 비자금 의혹의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서울서부지검으로 수사가 넘겨진 것 자체를 두고 ‘알맹이 없는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서부지검의 화려한 수사팀 진용을 사건이 대검에서 서부지검으로 넘어간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한화 비자금 수사를 맡은 서부지검 형사5부 특별수사팀에 ‘박연차 게이트’ 등 과거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던 비자금 전문통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전반적인 평가는 좀 다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서부지검 수사팀의) 수사진들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실적 중심으로 흘러가는 검찰 내부에서 만약 실제 큰 건이었으면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진을 새롭게 꾸려 수사를 벌이는 게 오히려 더 맞지 않겠느냐”며 “이런 관례를 볼 때 이번 사건에서 비자금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액수와 크게 차이가 나거나 혹은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이런 기류와 더불어 무언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검찰의 한화증권 관련 참고인 조사가 유명무실한 결과만을 남기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 9월 7일 한화증권 관계자 두 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한 검찰은 문제가 된 휴면계좌 개설 경위와 계좌에 들어있던 돈의 출처와 성격, 사용처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한화 측 관계자 두 명의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단지 개개인의 휴면계좌였으며 한화 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기존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참고인 조사에서 건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고 전했다.
물론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재로선 검찰 수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이에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이번 수사의 방향과 관련된 갖가지 추론과 설들이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아직까지는 재계 안팎에서 한화증권 비자금 수사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처럼 다방면에서 이번 비자금 수사가 ‘속 빈 강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나오자 하락했던 한화 주가 다시금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비자금 수사가 알려진 뒤 첫 거래일이었던 지난 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화 주가는 전 거래일에 비해 3.28% 하락한 4만 5650원에 마감했다. 이후 8일 종가 4만 4100원까지 떨어졌던 한화 주가는 10일 4만 6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화그룹에서는 이번 수사 소식을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먼저 한화증권 관계자는 “금융감독원 조사 때부터 이미 다 소명된 사안인데 검찰 수사까지 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라며 “의혹을 받고 있는 해당 계좌는 이미 오래전에 개설돼 지금까지 방치돼 왔던 것으로 규모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한화그룹 관계자도 “한화 내부에 비선조직은 결코 없고 장교동팀이라는 것 자체도 한화그룹이 장교동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어낸 얘기일 뿐”이라며 “제보자가 앞서 해직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소설에 가까운 얘기를 제보해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