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황제가 등장하는 영화 <아스테릭스>의 한 장면. |
8월말까지 증시에서 주가 100만 원을 넘는 종목은 롯데제과, 아모레퍼시픽 단 두 종목뿐이다. 예전 100만 원을 넘었던 종목까지 추가하면 롯데칠성과 태광산업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는 액면가 5000원을 기준으로 할 때의 얘기다.
액면가 5000원 기준으로 200배가 100만 원이라면, 액면가 500원 기준 200배인 10만 원 이상 ‘대왕주’ 종목도 적지 않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SK텔레콤 엔씨소프트 NHN 다섯 종목이 주인공들이다. 실제 액면가 5000원의 황제주보다, 액면가 500원의 대왕주들의 최고가 수준이 더 높다.
액면가 500원 대왕주 가운데 SK텔레콤은 2000년 2월 50만 7000원까지 올랐다. 액면가 5000원을 기준으로 하면 1000배인 500만 원을 넘었던 셈이다. NHN도 2006년 6월 34만 5700원까지 치솟았고, 삼성화재 역시 2007년 12월 26만 6500원의 최고가 기록이 있다. 엔씨소프트도 지난 8월 23만 4000원의 최고가를 기록했고 삼성생명도 올 5월 상장과 함께 12만 1000원까지 치솟았다.
반면 액면가 5000원 황제주 가운데서는 롯데제과가 184만 원, 태광산업이 165만 원, 롯데칠성이 166만 원까지 오른 적이 있지만, 400배를 넘은 종목은 단 하나도 없다. 액면가 500원 대왕주들 모두가 주가 10만 원 돌파 후 3년 전후로 20만 원 이상을 넘었다. 이와 비교해 액면가 5000원 황제주들은 주가 100만 원 돌파 후 최대 6년이 지났음에도 200만 원 벽을 뚫지 못하는 등 행보가 더디다.
기업의 실제 가치는 주당 가치보다 시가총액으로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히려 주당 가격이 높다 보니, 개인들의 투자가 쉽지 않은 탓이다. 고가주의 경우 단주 거래가 허용된다지만, 1주 가격이 100만 원이 넘다 보면 개미투자자 입장에서는 1주를 사들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실제 액면가 5000원 황제주들의 발행주식수는 100만~200만 주 사이가 대부분이며, 가장 주식 수가 많은 아모레퍼시픽도 600만 주를 넘지 못한다. 액면가 500원 대왕주들은 가장 적은 엔씨소프트가 2198만 주이며, 삼성화재와 NHN은 4000만 주 선, SK텔레콤은 8000만 주 수준이다. 삼성생명의 경우 상장 직전 액면분할을 단행해 발행주식수가 무려 2억 주에 달한다.
게다가 액면가 5000원짜리 황제주 반열에 오른 종목들은 최대주주 지분율도 아주 높다. 그만큼 주주가치보다는 경영권을 가진 회사 측 가치를 더 높게 여기는 성향이 많다. 태광산업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71.13%에 달하고, 롯데칠성과 롯데제과도 각각 52.03%와 49.97%로 절반이나 된다. 그나마 가장 주주가치를 생각한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최대주주 지분율도 무려 44.81%다.
액면가 500원 대왕주들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최근 상장한 삼성생명만이 51.17%에 달할 뿐, SK텔레콤은 23.23%, 삼성화재 17.47%, 엔씨소프트 34.48%, NHN 10.29%다. 최대주주 외 일반 주주나 기관투자자들이 많다 보니 그만큼 주주가치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시가총액 규모에 그대로 반영된다. 액면가 500원 대왕주들은 최소 5조 원, 최대 20조 원에 달하지만, 액면가 5000원 황제주들의 시가총액은 가장 큰 아모레퍼시픽만 6조 원을 넘을 뿐 1조 원대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액면가 500원 대왕주들의 시장 위상은 상당하다. 삼성생명은 금융주 시총 1위를 다투고, 삼성화재 역시 4대 금융그룹 가운데 하나인 하나금융그룹보다 높은 시장가치를 자랑한다. SK텔레콤은 통신업종 내 단연 1위이며, NHN은 서비스업종에서 LG그룹 지주사인 ㈜LG 다음으로 시가총액 순위가 높다. 엔씨소프트도 서비스업종 시가총액 4위로 결코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액면가 5000원 주식 가운데 진정한 황제주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목표주가로는 이미 황제주에 올랐어야 할 삼성전자와 언젠가 황제주 등극을 이루게 될 포스코가 그 주인공들이다. 삼성전자는 90만 원 문턱까지 오른 적이 있으며, 포스코도 70만 원을 훌쩍 뛰어 넘은 경력이 있다.
이 두 회사는 국내 증시 시가총액 1, 2위 종목이어서 위상 면에서는 이미 황제주라 할 만하지만 짧은 시일 내에 이들 두 종목의 주가가 100만 원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포스코의 경우 100만 원까지 갈 길이 아직 멀고, 삼성전자의 경우 시총 비중 11%가 넘는 시장 대표주라는 점이 부담이다.
간혹 등장하는 ‘짝퉁 황제주’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코스닥 금속업종에 속해 있는 동일철강이라는 종목은 2007년 12월 5000원에서 500원으로 액면분할이 되기 석 달 전에 주가가 161만 원을 넘기도 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 동생인 구본호 범한판토스 대주주가 이 회사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기적 세력이 10만 원대였던 주가를 단기간에 급등시킨 결과였다.
그러나 이후 펀더멘털 변화에 대한 기대가 현실로 이어지지 않고, 구 씨의 주가조작 혐의까지 드러나며 주가는 곤두박질쳐 현 주가는 1만 원 언저리다. 액면가 5000원으로 계산해도 겨우 10만 원 수준인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