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영 전 의원. |
최재성 의원이 15일 경선 완주를 선언해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주자 간 단일화가 끝내 불발되면서 정세균 전 대표, 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 천정배·박주선·조배숙 의원, 이인영 전 의원 등 8명의 주자가 양보 없는 일전을 벌이게 됐다. 하지만 조 의원은 낙선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지명직 여성 최고위원이 되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6명을 뽑는 최고위원에 7명이 경쟁을 벌여 ‘1명의 낙선자’를 가려내야 하는 싸움이 됐다.
1인2표제의 투표방식에 따라 벌써 후보들 간 ‘짝짓기’로 전대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가의 관심은 486그룹의 지지를 받는 이인영 전 의원에게로 온통 쏠려 있다. 차기 지도부를 구성할 전당대회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얼굴’로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 세대교체 바람과 맞물려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흥행카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 전 의원은 전대협 1기 의장으로 운동권 출신의 대표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빅3’의 계파 간 경쟁구도에서도 자유로워 참신성을 지닌 장점이 있다”면서 “과거 당권이나 대선후보 경쟁을 벌였던 다른 주자들과 달리 당 지도부에 새바람을 넣어 줄 수 있는 인물로 관심도가 급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경쟁 후보 진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당직자도 “사실 이번 전당대회가 일찌감치 ‘빅3’의 경쟁구도로 굳어지면서 민주당의 변화를 기대하는 당원이나 유권자들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예비경선(컷오프)에서 486그룹이 모두 통과하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게 됐다. 이 전 의원은 그 대표 주자다”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에게는 가장 신선감을 주었던 ‘후보단일화’ 협상 결렬의 후폭풍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과제다. “하청 정치를 청산하겠다”던 486그룹의 실험이 내부 파워게임과 계파별 이해관계에 묶여 한계를 드러낸 셈인데, 이 전 의원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486그룹의 전·현직 의원 모임인 ‘삼수회’가 이 전 의원을 단일후보로 추대하자, 최재성 의원은 “귀동냥식 단일화는 우리세대에 안 맞는다”고 완주선언으로 반기를 들었다. 최 의원에게는 당장 ‘단일화 불복’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전 의원도 ‘반쪽짜리 단일후보’에 그치면서 공동책임을 안게 된 것이다.
벌써 당내에서는 486에 대한 견제로 시끌시끌하다. 비주류 연합체인 쇄신연대는 성명에서 “486이 정치적 독립의 첫걸음으로 내세운 단일화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면서 “겉으로 ‘계보정치 타파’를 외치면서 당권파의 후광을 등에 업고 구태정치 뺨치는 실망스런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 전 의원은 ‘빅3’ 모두에게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정세균 전 대표는 486그룹 중에 우상호, 오영식, 윤호중 전 의원 등과 가장 우호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 단일화 약속을 깬 최 의원이 자신의 최측근이기에 지도부 동반 진출을 꾀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전 의원과의 연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정 전 대표가 최 의원의 단일화 파기의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데다 최 의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 자신으로서도 이 전 의원의 지원이 절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상임고문도 이 전 의원과의 연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빅3의 경쟁 와중에 가장 큰 공격을 받고 있는 ‘정통성’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파트너이자, 노선으로도 중도층을 강조하는 자신의 취약지대를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상임고문이 호남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주선 의원과의 지역연대를 모색하면서도, 이 전 의원에게 호의적인 신호를 보내는 이유다. 손 상임고문의 캠프 좌장인 이강철 전 대통령 특보가 직접 나서 이 전 의원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상임고문의 경우 지난 대선 실패 이후 486그룹에게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만큼 ‘486 대표’로 인식되고 있는 이 전 의원과의 우호적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 상임고문이 슬로건으로 내세운 ‘담대한 진보’는 이 전 의원이 지난해 먼저 제시했던 노선이다. 정 상임고문이 이 전 의원에게 ‘저작권료’를 물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같은 ‘이인영 끌어안기’는 정 전 대표나, 손·정 상임고문에겐 모두 자신들이 당권을 잡는다는 전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이 단일화 실패의 여진을 정리하고 종반으로 가면서 변화를 갈망하는 여론을 등에 업을 경우 오히려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빅3 중 한 명은 이인영에게 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물론, 각 진영이 최근 자체 실시한 대의원 대상의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이인영 효과’는 아직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빅3’가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주자들이 큰 격차를 두고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너 그룹에서 빅3를 위협할 만한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486 주자들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약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선 결과 ‘낙마할 1명’이 이 전 의원과 최 의원 중에 나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인영 효과’가 정치적 상징성만큼이나 물밑에선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시각인 것이다.
이 전 의원은 그러나 “주변에서 도와주려는 분들이 너무 많아졌다”면서 “내가 새바람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욕을 다지고 있다. 그의 지도부 입성 여부에 따라, 그의 성적표에 따라 민주당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