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
모 방송국의 주말드라마를 보니 한 신혼 커플이 ‘혼전계약서’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약서의 내용은 3년 동안 계약결혼을 유지하고, 이후에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를 낳자는 것이다. 결혼을 원했던 남자는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함께 살면서 계약서대로 이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부가 결혼생활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조정해서 합의된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한 혼전(결혼)계약서가 드디어 드라마의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멀리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나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혼전계약서와 유사한 ‘부부재산계약’이라는 제도가 있다. 결혼 전에 부부간 계약을 통해 결혼 후의 재산 관리와 이혼시 재산 분할 내용을 정하는데, 합의의 내용이 재산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혼 운운하는 것이 사회 정서상 맞지 않아선지 거의 사문화되고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계약서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배우자에 대해 다짐을 받아두고 싶은 것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문제가 있을 때 ‘각서’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지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게 노력하라
딸만 다섯, 딸 부잣집 막내인 20대 후반의 Y 씨. 언니 넷이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직 미혼인데도 결혼생활을 몇 년은 한 것같이 아는 것도 많다. Y 씨가 언니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여자는 잘났건 못났건 간에 결혼을 하면 약자가 되면서 여자에게 불합리한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대학원을 가고 싶었던 큰언니는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형부의 말을 믿고 결혼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들 없는 부모님을 아들처럼 모시고 살겠다고 큰소리치던 둘째형부는 처가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종갓집 며느리인 셋째언니는 1년에 10번이 넘는 제사를 지내면서 집안일에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 그나마 나은 넷째언니도 Y 씨가 보기엔 그저 답답하고 딱할 뿐이다.
Y 씨는 결혼을 하면 적어도 언니들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 교제 중인 남자친구에게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자기 위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면 서로 실망할 것 같고 신뢰감이 깨지면 결혼생활이 힘들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계약’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계산적이라는 것. 사랑하면 그냥 믿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계약서를 썼다고 치자. 그래놓고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데? 벌금이라도 물어야 하는 건가?” 그의 반론에 Y 씨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할 때 이혼을 한 번쯤 생각하자
Y 씨가 원하는 건 꼭 결혼계약서는 아닐 것이다.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 서로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혼할 때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결혼할 때 이혼을 생각해서 미리 갈등의 여지를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의 현실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하루에 두 쌍 결혼할 때 한 쌍이 이혼하는 이혼율 세계 3위 국가라는 것이다.
계약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속은 꼭 필요하다. 그냥 “행복하게 잘 살자”가 아니라 “이럴 때 이렇게 하자”는, 조금은 구체적인 약속 말이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해도 하루를 넘기지 말자, 하루 한 끼는 가족이 같이 먹자, 명절 때는 양가를 모두 방문한다, 등 함께 살다 보면 자주 부딪히는 상황에 대한 해법을 미리 정리해 놓는다면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이런 내용들을 문서화해서 부부의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 액자에 넣어놓는 것도 노력의 자극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혼전계약서. 이런 거창한 명칭보다는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사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