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30일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에서 친부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아무개 씨가 현장 검증을 했다. 이 씨가 살던 집(작은 사진)은 갖가지 옷과 버리지 않은 쓰레기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하지만 아들은 ‘장례비용을 마련할 때까지 아버지의 사체가 썩지 않게끔 진공상태로 만들어 모셔둔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체는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부검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9월 29일 사건을 담당한 고양경찰서 수사 관계자 및 살해된 아버지의 10년 지기인 문 아무개 씨를 만나 사건의 자세한 내막과 수사진행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엽기적인 패륜범죄일까 아니면 참담한 가정사가 빚어낸 비극일까.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9월27일 고양경찰서에는 충격적인 신고가 접수됐다. “사촌이 연락이 안 돼 집에 찾아왔는데 장롱 속에 죽은 채 발견됐다”는 A 씨의 신고였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16.5m²(5평) 남짓한 방안은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장롱 속에는 신고내용대로 사람 크기만한 검은 비닐봉투가 이불에 쌓인 채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 집의 가장이었던 김 아무개 씨의 사체였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부패 상태 및 아들 김 씨의 진술로 봤을 땐 사망 후 적어도 19개월 정도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사체를 장롱 안에 넣어두고 남매가 일 년 이상을 지낸 셈이다. 경찰은 “부자지간에 몸 싸움이 잦았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아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초기 쉽게 마무리될 것 같았던 사건은 용의자를 조사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현장 수사에 참여했던 강력팀의 한 관계자는 “용의자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찢어지는 가난이 빚어낸 참극은 아닐까 싶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연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가족을 수십년 동안 곁에서 지켜봐온 문 아무개 씨에게서 사건을 전후한 이 가족의 사정을 비교적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골재업체에서 덤프트럭 운전사로 일해오던 김 씨는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가난하지만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공사판 내에서 ‘베테랑 운전사’로 통했던 그는 아들을 자주 일터에 데려와 동료들에게 자랑하곤 해 오래된 동료들이라면 이들 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문 씨는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할 정도로 예의 바른 아들이었다”고 전하며 “아버지 김 씨는 자식들은 제대로 공부를 시켜서 나 같은 꼴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아들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화목했던 가정은 어머니 B 씨의 외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남편이 현장 일로 지방출장이 잦은 틈을 타 외도를 시작했고,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급기야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말았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아들에게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재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오래 알고 지낸 문 씨에게 속내를 털어 놓으며 “아들이 그 후로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며 시름에 잠긴 채 자주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자 사이의 갈등이 싹텄고 시간이 갈수록 악화됐다. 아들은 결국 학교를 그만뒀고 돈을 벌겠다며 공사판을 전전하며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예 일을 그만두고 아들을 찾으러 다녔다. 아들은 일거리를 찾아 공사장을 매일같이 옮겨 다녔지만 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술에 잔뜩 취한 채로 “공부를 해야 한다. 집으로 가자”고 끌어냈다. 때문에 집안에는 부자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살림살이도 기울어져 갔다. 고정적인 생활비라고는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던 누나가 모자공장에서 삯바느질을 해 벌어오는 월급 80만 원이 전부였다.
경찰에 따르면 아버지가 사망한 시점은 2009년 2월경으로 추정된다. 동료 문 씨는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났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당뇨와 간질환으로 힘들어하던 그 친구가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에겐 부모는 물론 형마저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다. 세 식구가 16.5m²(5평) 남짓한 방에서 함께 살며 매번 근처 슈퍼에서 산 달걀, 콜라, 빵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문 씨는 김 씨가 자신에게 “강원도에 있는 친척누나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겠냐”며 “차비만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문 씨는 돈을 넉넉히 챙겨 주었지만 그 후로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한다.
김 씨의 부재에 대해 가장 먼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친척누나 C 씨였다. 집에 들르겠노라 했던 동생이 1년 넘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 때문이다. 추석을 맞아 전화를 했지만 조카는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아버지를 찾지 마라”며 전화를 끊었고 그후론 연락을 받지 않았다. 수상한 느낌을 받은 C 씨는 사위 D 씨와 그의 친구를 시켜 동생의 집을 찾아가 보게끔 했고, 결국 장롱 속에서 김장용 봉투에 겹겹이 싸여 밀봉되다시피한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김 씨 부자가 자주 몸싸움을 했다는 마을 주민들의 진술을 근거로 아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아직 아들이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했는지는 부검결과가 나와 봐야만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어려운데다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했지만 돈이 없어 비용을 모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살인사건 범인들은 처음엔 집안에 사체를 숨기더라도 나중에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강변으로 옮기는 법인데 김 씨의 경우는 무려 2년 가까이, 그것도 냄새까지 나는데도 사체를 옮기지 않은 점이 달리 해석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또 사체가 최대한 썩지 않게끔 진공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한 것도 판단하기 애매하게 만든다. 은닉하기 위해서 한 것일 수 있겠지만 김 씨의 주장대로 이후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누나(32)를 조사했지만 누나는 정신지체장애 증상이 있어서 수사에 별 도움이 못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아들이 자주 아버지를 때리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는 증언은 이미 보도된 바와 같지만 다른 증언도 있었다. 김 씨가 당뇨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돈이 없어 라면과 빵, 콜라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워 온 만큼 건강악화로 자연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9월 30일 기자와 만난 친척누나의 사위 D 씨는 “경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마치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보도되는 바람에 유가족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