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어머니가 유품처럼 남겨둔 것이라는 오래된 종이엔 피 냄새가 가득했다. ‘강도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 특수강도, 특수감금…’ 강력범죄가 총망라된,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재판기록이었다. 마주앉은 두 남자는 이 사건의 ‘범인’들이었다. ‘살인범’들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정확히 5년 전인 2016년 2월, 하얀 입김이 조금씩 옅어질 무렵이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와 변호인. 왼쪽부터 최인철 씨, 박준영 변호사, 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긴 시간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과거 경찰은 고문·폭행으로 두 남자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수사기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작을 통해 두 남자를 살인범으로 몰아 만들었다. 검찰과 법원에서 결백을 외쳤지만 바로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무기수가 됐다. 두 남자는 비록 감형을 받았지만 무려 21년 5개월이 지날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온 청춘을 감옥에서 하릴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사실일까,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들은 가석방될 때까지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왔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 생각만 하다보면 사실은 왜곡되고 거짓이 진실로 포장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법원의 판단을 몽땅 부정하고 이를 완전히 뒤집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건네준 분홍색 보따리를 집으로 가져와 한 장 한 장 다시 읽기 시작했다. 꼼꼼히 읽어 내려갈수록 그들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커져갔고 신념이 돼갔다. 한 달 뒤, 당시 일면식도 없던 박준영 변호사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두 남자는 억울한 게 분명하고, 기록을 꼭 봐달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기록을 읽고, 두 남자를 만났다. 함께 분노하고 아파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변호인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첫 보도였다(관련기사 “증거 없고, 알리바이도 있는데…무기징역 살랍디다”).
이후 사건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와 정보에 더해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이 두 남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전문가들의 증언을 더욱 풍부하게 확보했다. 공적 기구인 검찰 과거사위원회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올라 구체적인 조작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후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재심 본안 공판 등에선 앞의 과정들이 다듬어지며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2021년 2월 4일, 마침내 부산고등법원은 5년 전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기록상 확인되는 사건 조작뿐 아니라 고문과 폭행들에 의한 허위자백이 인정된다며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 재심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로 통한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 법원은 재심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해석도 매우 까다롭다. 과거 확정 판결을 받기 전 제출할 수 없다가 판결 후에 발견된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고, 그 증거는 기존 판결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하고 ‘고도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새 증거는 재심 청구인이 직접 수집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낙동강변 2인조’의 수감 기간은 무려 21년 5개월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사건 현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출소 직후 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법률구조공단, 지역 언론사를 찾아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뒤 형을 다 살고 나온 ‘살인 전과자’가 스스로 재심 청구를 위해 ‘새롭고 명백한, 고도의 개연성’을 가진 증거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검찰이 대신 재심을 청구해줄 순 있다. 지난해 무죄 선고가 나온 이춘재 8차 사건 재심처럼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재심을 청구하면 증거 수집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수 있지만 이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시국 사건 등 과거사 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 사건에서 검사가 대신 재심을 청구해준 일은 거의 없다.
여기서 언론·기자가 역할을 할 수 있다. 취재 영역에서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고, 정부기관에 협조 요청 및 각 분야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삼례 3인조, 약촌오거리 등 앞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서도 언론사와 기자들이 이 같은 역할을 했다.
5년간 40여 건의 탐사보도 형태 기사를 통해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건을 발굴해 취재했고, 증거를 수집하고 검증하는 과정과 그 의미, 이를 토대로 제기한 주장들이 법원을 통해 사실로 인정되는 장면들을 전부 고스란히 담았다(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무죄 선고로 진실이 밝혀진 지금, 이 기록들과 결과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