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민주당 신임대표가 대의원선거를 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 9월 2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서울시당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는 모습.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한나라당은 탈당 전력이 있는 손 대표가 야당의 수장으로 선출되자 한 수 아래라며 낮게 보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층과 겹쳐 여당 후보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 평가가 나오면서 손 대표 임기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여 대권의 싹을 자르겠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은 공개적으로 손 대표를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손학규 포비아’가 어른거리고 있다. 친이계 김문수 경기도 지사에게선 ‘박-손’ 양강 구도가 형성되면 자신은 오히려 군소후보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손학규 대표의 대선 경쟁력과 그에 연동되는 한나라당 잠룡들의 손익계산을 두드려봤다.
한나라당이 손학규라는 정치인을 해석하는 유일한 코드는 바로 ‘탈당 DNA’다. 이인제 의원이 지난 1997년 대선 전 ‘세대교체론’을 선언하고 경선에 불복한 후 탈당해 독자출마했던 뼈아픈 경험을 했던 한나라당으로선 정확하게 10년 뒤 손학규 대표가 그 잊혀졌던 악몽의 DNA를 되던지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손 대표가 지난 2007년 3월 19일 오후 백범기념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했을 때 대부분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손학규는 끝났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손 대표를 보좌하던 ‘한나라당 성향’의 측근들 상당수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고, 손 대표는 지금도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당시 손 대표의 탈당 악몽을 똑똑히 기억하는 대부분의 당원들은 그의 야당 수장 복귀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떠나는 그를 향해 “‘장관·3선 의원·도지사 14년’의 단물을 뱉었다”며 그를 격하게 비난했던 한나라당 사람들은 그의 최근 야당 당수 등극을 보고 “우리가 빌려준 사람이니까 합당해야지”라는 농담까지 던지며 대권 경쟁력을 우습게보고 있다. 이들은 손 대표의 탈당 DNA를 오로지 대권욕에 찌든 정치인의 배신 코드로 정의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은 “손 대표는 ‘탈당’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막상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에 뒤져 뛰쳐나간 게 부각되면 경쟁력이 떨어져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의 탈당 DNA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손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 중심의 보수 일변도 당 정체성에서 중도개혁을 무기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개혁 코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민주당에서 그 꽃을 피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손 대표의 최근 부상을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소장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제 손 대표의 탈당 DNA를 잊어야 한다. 한때 그의 적이었던 민주당 호남지역이 그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탈당의 멍에로부터 풀어주겠다는 뜻과도 같다. 이는 곧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이 손 대표의 탈당에 대한 응징과 같은 과거회귀 투표가 아니라 그가 탈당할 때 외쳤던 개혁코드가 통합의 정신으로 유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굉장히 긴장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에서는 ‘3등’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1등을 하자 내심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의 여론조사 지표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고 경계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손 대표의 대권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호남지역이 그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손 대표가 호남을 등에 업고 급부상한 것을 ‘제2의 노무현 효과’로 부르며 크게 경계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1년 대선 후보 전국 순회 경선 때 광주전남 지역에서 1위로 치고 올라와 이인제 후보를 따돌릴 수 있었다. 호남이 영남후보를 내세워 대선 경쟁력을 높였던 대표적인 전략 투표의 결과였다. 손 대표가 호남 연고성이 뚜렷한 정동영-정세균 후보를 물리쳤던 것도 바로 호남의 전략적 투표 때문에 가능했다. 노 전 대통령이나 손 대표 모두 민주당의 비주류였다가 대권후보 또는 수장으로 당을 접수한 케이스다. 호남은 손 대표를 통해 당을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인 대선 준비체제로 전환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또한 대선에서 수도권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점을 주시하고 대표성이 있는 손 대표를 적임자로 고른 동시에, 이념 전쟁에서도 스펙트럼이 박근혜 전 대표보다 넓고 유연한 손 대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손 대표의 향후 대권주자로서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중도층 싸움에서도 손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손 대표가 한나라당에 있을 때 그를 지지했던 마니아 지지층을 차기 대선에서 복원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여당 후보에게는 더 악재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에 기반을 뒀던 손 대표가 중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긴장되는 야권 후보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김황식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손 대표와 관련, “여권은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허태열 의원도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와 손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1 대 1 양자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되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한나라당의 ‘광범위한’ 우려는 손 대표가 한나라당에서 중도층에게 어필하는 개혁 정책들을 꾸준하게 추진해온 ‘DNA’를 여당지지층의 개혁성향 유권자들이 기억해낼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현재 한나라당에는 소장파의 개혁 노선을 지지하는 고정 마니아층이 있다. 그들이 손 대표의 개혁노선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에 14년 동안 몸을 담았던 정치인이고 화합 이미지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지지층이 손 대표의 향수를 되살리는 착시효과로 작용한다면 여권 후보로 갈 표가 그에게로 빠져 나가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손 대표가 한나라당에서 기반을 다졌던 대권주자 이미지에 제1야당의 후보라는 점이 겹쳐지면서 오히려 ‘하이브리드형’ 대권주자로 업그레이드돼 제3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들의 정서가 보수에서 다시 진보로 이동할 징후가 엿보이는 대목도 손 대표의 어깨에 힘을 넣어주고 있다. 손 대표가 2위로 치고 올라온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차기 정부 성향은 ‘진보개혁 정부’가 49.2%로, ‘보수안정 정부’라고 응답한 41.1%에 비해 무려 8.1%포인트나 더 높게 나타났다. 아직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이 뚜렷하게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보개혁 정부 선호도가 높은 것은 손 대표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또한 이런 조사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적 리더십에 대한 반성이자 후회에서 나오는 반작용 성격도 짙다. 손 대표가 그런 국민들의 감정선을 잘 건드려준다면 정체성 논란을 겪고 있는 그에게 진보진영의 지지라는 선물이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손 대표의 업그레이드된 경쟁력도 태생적 한계 앞에선 무력해진다. 먼저 손 대표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분석에 유의해보자. 민주당 대의원들이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대선 패배를 자숙하지 않고 때마다 나온 밉상’이란 이유로, 정세균 최고에게는 ‘이명박 정부를 야당답게 견제하지 못한 죄’를 이유로 각각 비토했을 뿐이지 그것이 오롯이 손 대표를 대권주자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내년 12월까지 시한부 대권주자의 명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언제든 낙마하는데, 정동영-정세균 투톱이 딴죽을 수시로 걸 경우 손 대표 혼자 자칫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는 가변성이 많다.
손 대표를 둘러싼 선명성 논쟁도 그를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대권주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는 취임 일성에서 “집권을 위해서 중도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중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적들이 그의 정체성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타협적 강경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진보 색채가 뚜렷한 쪽으로 일단은 좌표를 이동시켜야 한다. 최근 그가 한미FTA,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그동안의 유연한 자세에서 벗어나 강경책을 구사하려는 것도 정체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당내에서는 “손 대표가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안에 갈지자 행보로 대응하다 진보와 중도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여기에 호남권의 결집된 지지도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 대표의 갈지자 행보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층이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몸담은 국민참여당으로 급속하게 쏠릴 경우 지난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때처럼 손 대표가 유 전 장관과의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예상된다.
손학규 대표의 탈당 DNA는 영원히 그를 따라 다닐 정치 코드다. 한나라당에선 손 대표가 그 배반의 DNA 때문에 결국 용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 DNA의 멍에를 떼어주는 날, 손학규 대표의 경쟁력은 미래형에서 현재형으로 바뀔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차별화 전략 뭐 없수?
▲ 박근혜 전 대표(왼쪽)와 김문수 지사. |
하지만 이는 공개적 반응이다. 내부적으로는 박 전 대표의 경쟁력이 손 대표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있는 것이 뭣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의 승부처인 중도층 선점 경쟁에서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복지 등을 내세우며 중도로 좌표이동을 하고 있지만, 그 ‘저작권’이 손 대표에게 있다는 점이 우려스런 대목이다. 손 대표가 탈당을 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중도층에 대한 집착과 정성이 차기 대선에서 표로 연결될 경우 박빙의 승부에서는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도 손 대표의 부상이 그리 달갑지 않다. 손 지사는 ‘컨벤션 효과’를 등에 업고 단숨에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뛰어올라 박근혜 전 대표와 맞장을 뜨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손 대표와 이념이나 개혁코드가 비슷한 김 지사나 이재오 특임장관 모두 군소후보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권 경쟁이 ‘박근혜-손학규’ 구도에 ‘유시민’ 단일 변수로 조기에 정착될 경우 김 지사의 활동 반경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친이 일각에서는 “손 대표와 맞불을 놓기 위해 수도권에서 경쟁력이 있는 김 지사를 박 전 대표 대신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밖에 박 전 대표 체제로 차기 총선을 치른 뒤 ‘패배’하게 되면 대선 후보 교체론이 힘을 받게 되고 그 공간에 김 지사를 내세울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친이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