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위대한 유산>.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부서 내에 여직원이 혼자이거나 회사 자체에 여직원이 한 명밖에 없는 곳이 의외로 많다. 이럴 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와 닿는 부분이 바로 점심시간이다. 혼자 먹는 경우가 많고, 같이 먹더라도 적응이 안 될 때가 적지 않다. 액세서리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Y 씨(여·26)는 매일 점심 때마다 고민이다. 총 인원이 5명 정도인데 그나마 다른 사람들은 오전부터 영업 때문에 밖에 나가고 대부분 혼자다.
“사장님은 외부에서 손님과 식사할 때가 많아서 지하 식당에서 저 혼자 먹을 때가 많죠. 질리기도 하고 혼자 식당 들어가는 것도 좀 망설이게 되더군요. 시간 지나면 적응이 되겠지 했는데 오히려 고민이 많아지네요. 달랑 한 그릇을 배달시켜서 먹을 수도 없고, 혹여 먹다가 사장님 들어오면 민망하고 사무실에 냄새가 밸까봐 걱정도 됩니다.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정성들여 준비해서 혼자라도 맛있게 먹었는데 점점 귀찮아지고 대충 만들게 되더군요.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어디서 뭐 먹나’ 생각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Y 씨는 점심 때 인근 회사 직원들이 모여서 같이 밥도 먹고 몰려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고. 그는 “식사 후에 여직원들끼리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게 제일 하고 싶다”며 “동료애도 느껴보고, 같이 맛집도 찾아다녔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토로했다.
외톨이처럼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다 보면 어느새 의기소침해질 수가 있다. 조경회사에서 일하는 K 씨(여·28)는 점점 소심, 무기력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다들 현장에 시공하러 가면 혼자일 때가 많아요. 가뿐하게 혼자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어 가니까 그렇지가 않네요.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할 때가 많아요. 이러다 입에 거미줄 치겠다 싶어요. 성격도 조용해지면서 어두워지더라고요. 어쩌다 다른 남자직원들이 사무실에 있어도 자기네들끼리 담배 피러 우르르 나가면 또 저 혼자 소외감 느끼죠. 점점 일에도 흥미를 잃어가는 것 같아요.”
K 씨와는 반대로 성격이 남성화하기도 한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L 씨(여·29)는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늘 원피스 아니면 치마 정장만 입고 다니던 여성스런 스타일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여직원 혼자라 제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계속 혼자 겉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음료수 사들고 먼저 말도 걸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나 재테크 같은 분야도 일부러 공부했어요.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점점 대화에도 껴주더군요. 너무 여성스럽게 굴면 이질감을 느낄까봐 털털하게 굴었습니다. 옷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주로 입었고요. 그랬더니 슬슬 남자직원 대하듯 편하게 대해줬어요. 원래 내 성격이 아니라 버겁긴 한데 안 그러면 외톨이가 될까봐 ‘활발한 척’을 하고 있네요.”
L 씨는 요즘은 ‘너무 편하게 대했나’ 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말을 가리지 않고 하는 직원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수위가 약하지만 성희롱 발언도 심심찮게 하고 듣기 싫어도 내색을 안 하니 빈도수와 강도가 세지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여직원이 혼자다 보니 업무량이 많아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수출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28)는 입사 후 점점 일이 늘어난 데다 자꾸 새로운 업무가 맡겨져 고민이다.
“매출은 상당한데 직원이라고는 사장을 제외하고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부장과 저뿐이에요. 제가 온갖 일을 다 할 수밖에 없어요. 사무실 잡무부터 무역사무까지 모두 제 몫이죠. 무역서류 선적통보 경리 각종 심부름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데 부장이 이제 해외영업까지 해보라는 거예요. 영어회화가 부족해서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학원 다닐 시간은 없고, 업무는 커지고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마음이 무거워요. 부장의 압박 때문에 계속 미루기도 어렵고요.”
J 씨는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면 커리어도 쌓이고 경험도 늘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대뜸 기초도 모르는 영업, 게다가 영어도 안 되는 사람한테 해외 영업을 하라고 하는 게 계속 일을 하라는 소린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민을 넘어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도 있다.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M 씨(여·27)는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최근에는 회사에 남아있는 정이 없단다.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
“회사에서 경리·회계 업무를 맡고 있어요. 나름 대학에서 회계학도 전공하고 자격증도 있지만 여직원 혼자라 무시당할까봐 평소에 공부도 많이 했어요. 일이 많을 때는 혼자 늦게까지 남아서 업무도 했는데 열심히 한다고 격려해주기는커녕 경리가 무슨 할 일이 많으냐며 조롱하는 투더군요. 이제는 자체결산까지 낼 수 있을 정도로 업무적으로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이 여직원이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수시로 해요. 맡은 업무 말고도 손님 차 접대, 비품 챙기기, 화분에 물주기, 전화 받기, 심지어 설거지까지 다 제가 해야 해요.”
M 씨는 얼마 전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어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 업무가 많아 정신없어서 전화를 못 받았는데, 상사가 불호령을 내렸다고. 그는 “그렇게 벨이 울려도 그냥 두는 다른 직원들이나 전화 한 번 못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사나 다 똑같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가 많은 곳이라고 편하진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P 씨(여·33)는 “여자가 많으면 뒷담화의 대상이 되거나 심하면 ‘왕따’가 되기도 한다”며 “여자가 많든 혼자이든 어디 곳이건 직장생활은 힘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