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추 값 폭등으로 김치가 ‘금치’ 대접을 받는 가운데 요식업체들의 고민도 쌓이고 있다.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 ‘김치 추가 2000원’이란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배추파동’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5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배추 10㎏ 상품의 도매가는 1만 9067원(2.5㎏ 포기당 5000원꼴)으로, 하루 전 가격인 2만 8692원보다 33.5% 내렸지만 아직도 높은 가격에 소비자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배추 값 고공행진에 이를 대체하기 위한 다른 상품 값도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10월 5일 무 18㎏ 상품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4만 3715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7363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6배나 비싼 가격이다. 문제는 가격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상적이지 않은 채소 값에 음식점 운영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모밀순두부전문점 ‘소담’을 운영하고 있는 주웅택 사장은 “최근 배추 한 통에 1만 4000원, 무는 하나에 4000원이 넘는 값을 치렀다. 2개월 전과 비교하면 평균 4배 정도 오른 셈인데 보쌈김치의 경우 양배추나 무로 대체할 수 없어 가격이 비싸더라도 배추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손님들의 입맛은 그대로인데 재료를 아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손님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어 80% 정도는 지레 겁을 먹고 리필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최근 상황을 전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 아무개 씨도 2㎏ 한 상자에 1만 원 정도 하던 상추 값이 최근 두 배 가까이 올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 씨는 “값이 올랐다고 상추를 안 내놓을 수도 없고 더 달라고 하는 손님에게 싫은 내색도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다. 하루빨리 채소 값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프랜차이즈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외식업, 특히 채소를 많이 사용하는 업체의 경우 전반적으로 원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메뉴 가격을 올릴 수도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원재료 값을 올리지 않고 이전 가격 그대로 가맹점에 재료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채소 값 고공행진이 지속될 경우 다른 재료로 대체하거나 가맹점에 최소한의 인상분을 부담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치를 가맹점에 완제품으로 공급하고 있는 ㈜김가네의 경우 포장 김치 가격 인상으로 대체품인 깍두기 공급량을 한시적으로 늘리고 있다. 또 김치의 경우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가맹점별로 공급량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준희 마케팅팀 과장은 “현재 이전과 다름없는 가격으로 김치가 공급되고 있지만 추후에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는 최소한의 인상과 본사의 이윤은 없이 가맹점에 공급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아빈’ 시청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환 점장은 “쌀국수에 사용되는 채소의 인상폭은 한식 쪽에 비해 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외식업체들이 명절 등으로 매출이 많이 떨어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재료 값까지 올라 타격이 큰 상황”이라며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산지와 직접 계약을 통해 채소를 구매하는 곳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 식자재 중 채소의 비중이 큰 샤브샤브전문점 ‘채선당’은 계약 재배지로부터 30% 인상된 값에 채소를 공급받고 있다. 이에 본사에서는 친환경 채소는 이전 가격 그대로, 일반 채소의 경우 15% 정도만 가격 인상을 적용해 가맹점에 원재료를 공급하고 나머지 손실은 본사에서 떠안는 방법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또 채소 값 인상으로 양을 줄이는 점포가 등장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슈퍼바이저의 관리감독도 보다 철저히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무 값의 동반 상승으로 치킨업계 역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치킨 무 값이 2000원에서 4000원으로 두 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가격을 인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무 값이 올랐다고 치킨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본사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가맹점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는 후문이다.
‘장충동왕족발’ 신신자 사장은 “채소 값 폭등 조짐은 봄부터 예견됐던 일이었다. 그러나 채소의 특성상 많은 양을 미리 확보해 놓을 수도 없어 결국 눈 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배추를 공급해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이것이 서울에만 특별 공급이 이뤄지고 타지방의 경우 배추 값을 오히려 올려놓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채소 값이 오르면서 본사의 공동구매 시스템을 활용하려는 가맹점주도 늘어나고 있다. ‘사바사바치킨’ 마영희 홍보팀장은 “최근 개별적으로 채소를 구매하는 것보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채소가 더 싸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본사를 통한 채소 구매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채소 값 고공행진에 대처하는 음식업계 운영자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창업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현상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기본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주문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고객 신뢰도를 높여 결국 꾸준한 발걸음을 이끌어낸다는 것. 실제로 채선당 일부 점포의 경우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며 이전보다 손님이 꽤 늘어난 곳이 있다고 한다. 재료를 줄여 원가를 낮추는 방법보다 회전율을 높여 매출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