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 대통령은 보고서가 언급한 ‘레임덕과 4대강 사업’ 부분을 여러 차례 꼼꼼히 읽었다고 한다. 역대 정권을 살펴보면 임기 후반 차기 주자들 목소리가 높을수록 레임덕은 앞당겨지는데, 그럴 경우 대통령이 추진하는 핵심 사업들이 지지부진하거나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요 골자다. 보고서엔 이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야권과 시민단체가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상황에서 친이 잠룡들까지 가세하면 4대강 사업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란 예측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여권 차기 후보들이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4대강 사업을 비판할 가능성이 있다. 사전에 이를 차단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면서 “4대강 사업을 계승하는 조건으로 차기를 밀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 나왔지만 (보고서에) 포함시키진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는 향후 정치권의 ‘판짜기’를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잠룡들의 움직임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는 물밑에서 2012년 대선과 총선을 대비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차기 ‘영순위’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엔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친이계 의원들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박 전 대표 역시 외연 확대를 위해 친이 인사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박 전 대표 뒤를 쫓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김문수 지사, 오세훈 시장 역시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위해 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 핵심부는 이러한 기류가 확산되면 국정 운영의 무게 중심이 청와대가 아닌 당으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 역시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한 고위 관료는 “계파 간 화해 기류와는 별개로 친이 의원들의 ‘이탈현상’에 대해선 이미 당 지도부에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지금은 시기상조다. 이 대통령이 G20 회의와 4대강 사업 등을 잘 마무리 지은 다음, 향후 정치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순서가 가장 이상적이다. 내년 6월 이후부터 가시화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현재 거론되는 차기 후보들의 캠프 측과 접촉해 대권 행보로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또한 청와대는 당·청 관계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아젠다’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개헌을 비롯해 중요한 정치일정은 이 대통령이 직접 당과 소통하며 챙길 것이다. 임기 말이라고 해서 당에 끌려 다니는 모습은 없을 것”이라면서 “정치 발전을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는 앞서의 보고서를 접한 이후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한나라당 지도부 및 현역 의원들을 만나 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최근 친이계 의원들에게 “대권주자들을 따라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해 6월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후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정치권에서는 이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윤호석 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오해를 각오하면서도 이 의원이 직접 발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이명박-이상득 ‘형제’가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나타내준다”면서 “친이 의원들에 대한 경고 성격인 동시에 차기 대선 정국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 표출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의원이 이처럼 전면에 등장한 것은 청와대의 ‘SOS’ 때문일 것이란 관측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 대통령에게 친이계의 ‘월박’과 ‘줄서기’를 단속하기 위해선 당내 최대주주 중 한 명인 이 의원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이를 이 대통령이 받아들였고 ‘형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여러 차례 “이 대통령과 나는 공동운명체”라고 말했던 이 의원 역시 ‘동생’을 위해 친이계 군기 잡기에 발 벗고 나섰다.
이 의원 이외에도 임태희 비서실장 진두지휘 아래 청와대 정무 라인이 한나라당 친이 인사들과 만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의사소통이 원활한 정진석 정무수석은 주로 잠룡들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호석 소장은 “청와대나 이 의원 측이 대권 레이스가 일찍 시작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팩트’”라면서 “이 대통령이 누구를 차기로 밀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어느 한 쪽으로 힘이 기우는 것은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정치권에선 여권 핵심부가 ‘제3후보’ 혹은 ‘박근혜 지지’ 등과 같은 카드로 기존의 친이 잠룡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도 친박-친이로 판세를 명확히 가르기보다는 막판까지 지켜본 다음에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김문수 지사, 오세훈 시장 등 그동안 친이 유력 주자로 꼽혀왔던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김 지사의 지지율 상승,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급부상 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오 시장 측은 조만간 대권 레이스에 시동을 걸 예정이었지만 최근의 여권 핵심부 기류 때문에 그 시기를 뒤로 늦출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6·2 지방선거 이후 ‘박근혜 대항마’로 친이계에서 각광 받았던 김 지사는 한때 이 대통령을 향해 집중 포화를 날렸지만 최근엔 다소 주춤한 상태다.
특히 이들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에 조성된 해빙 기류가 썩 달갑지만은 않은 듯하다. 여권 핵심부 내에선 “박근혜면 어떠냐. 정권만 재창출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적어도 친이계 내에선 경쟁력을 자신하던 김 지사나 오 시장으로선 껄끄러운 변수가 더해진 셈이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대선구도가 본격화되면 그래도 이 대통령이 친이계를 밀어주지 않겠느냐”면서 “청와대 협조도 있었고…. 조용히 지내며 도지사 업무에 충실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 시장 측 역시 “김 지사가 먼저 치고 나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점을 청와대 측에 설명해 오해를 풀었다. 당분간은 대권과 오 시장을 연관시키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과 김 지사가 잠시 속도경쟁만 자제할 뿐 이미 차기 대권레이스에 돌입한 상황이라며 “누가 먼저 다시 가속페달을 밟느냐만 남았을 뿐”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MB 대선 외곽조직 ‘이기는 편 우리 편’
‘성공실천연합’(국실연)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국실연이 올해 연말 ‘NEW 한국의 힘’으로 명칭을 바꿔 재출범해 2012년 대선을 준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960호). 그런데 최근 국실연 인사들이 친박계 의원들과 접촉하며 박 전 대표 지지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국실연의 한 관계자는 “사실 우리는 친이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을 뿐이다. 보수정권 창출이 우리에겐 가장 큰 목표인데 박 전 대표가 그것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 대선에선 박 전 대표를 지지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높다”고 전했다.
국실연은 해체 전 전국 16개 지부에 3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 대의원(3000명 추산)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당 대표 경선에서 출마자들이 국실연을 향해 ‘러브콜’을 보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내 기반이 취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현재 한나라당 최대주주이지만 동시에 ‘비주류’이기도 한 박 전 대표로서는 향후 국실연의 지원이 큰 힘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