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스마트폰을 들고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대권행보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물론 한나라당 내 친이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국감을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에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새 대표로 당선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등 야권 주자들도 국감을 통해 여당 공세를 강화하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각오다. 신분에 따라 감사자와 피감자로 나뉜 여야 차기 주자들은 과연 이번 국감에서 어떤 ‘성적’을 남기게 될까. 2010년 국감을 치르고 있는 대권 잠룡들의 국감 준비와 국감장에서의 모습을 분석해 보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역대 국정감사마다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우수 의원으로 정평 나 있다. 2008년엔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돼 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국감 때 복지위 소속이었던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이전 국감 때 질의한 내용이 실제로 반영됐는지 확인하는 등 꼼꼼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 바 있다. 구체적인 수치와 대안을 제시하는 박 전 대표는 피감기관장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의원 중 한 명이다. 간혹 박 전 대표를 향해 피감기관장들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정도.
당내 계파 다툼의 중심에 서 있는 입장이다 보니, 정치공방의 이미지를 넘어서 정책과 대안을 내놓는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 2010년 국감장에서도 꼼꼼한 준비로 수준 높은 질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전반기 보건복지위에서 하반기엔 기획재정위로 바꾼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국감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의정활동 중 하나가 국감이다. 역대 국감마다 상임위와 관련된 자료수집과 공부에 남다른 노력을 해왔다. 특히 이번 국감에서는 박 전 대표의 각오가 남 다른 것 같다. 정책 질의로 평가를 받겠다는 의지도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4일 국감에서는 미국 연방정부의 투명한 재정정보 공개 시스템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재정 정보 공개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장에서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연결되지 않아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이날 스마트폰 시연은 평소 트위터나 미니홈피 등 인터넷 활용으로 젊은 세대의 표심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해온 전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 날인 5일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다시 스마트폰으로 국감장에서 재시현을 펼쳐 성공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박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는 국감 기간 동안 대전과 충청, 호남 방문으로도 주가를 높였다. 지난 11일과 12일 관세청·조달청·통계청 국감을 위해 대전을 찾은 데 이어 14일에는 광주지방국세청, 15일엔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를 방문했다. 박 전 대표가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큼 이들 지역은 박 전 대표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대전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박성효 한나라당 대전시장 후보가 초반 열세를 보이다가 박 전 대표가 유세 중 피습을 당한 뒤 ‘박풍’으로 역전해 승리한 곳이다. 또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충북 옥천)이 있기도 한 충청권은 세종시 문제로 친이계과 갈등을 겪을 당시 원안을 고수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굳건했던 지역이다. 그런가 하면 호남의 경우 2007년 11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전남 무안)를 한 이후 3년 여 만의 첫 방문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한동안 정체됐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최근 호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감일정을 통한 자연스런 충청·호남 방문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세 결집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도 국감서 질의에 답하는 김문수 지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야당 의원들은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김 지사를 견제하는 질의를 내놓았지만 이것이 김 지사에겐 득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13일에 이어 14일 행안위의 경기도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 지사를 향해 “대권에 대한 뜻이 있느냐”고 연이어 질문을 퍼부었다. 문학진 의원은 “대권 생각이 없다고 한 것은 위증”이라고 공격했고, 이윤석 의원은 “상대방에게 틈만 보이면 빠지고 김태호 총리 후보도 비난하며 대권 발걸음을 가속화시켰다. 도정 책임자로 아주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김 지사가 이번 국감을 차기 주자로서 중요한 ‘대권 일정’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 이후 김 지사의 대권 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다. 김 후보자의 공백을 메울 만한 마땅한 친이 주자가 나올 것 같지 않자 김 지사가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등 눈길을 끌 만한 언행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피감기관장으로 국감장에 나서는 것은 대권주자로서 상당한 부담이다. 일종의 대선후보로서 검증절차로 볼 수 있는 것인데 김 지사는 이를 대비한 듯 상당한 방어자세로 국감에 임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내 골프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기지사 출신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견제 구도를 만든 것도 이를 의식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김 지사는 골프장 허가에 대해 “손 대표가 지사 시절 인허가를 했고 나는 도장만 찍었다”며 ‘선제공격’을 했고,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자료상에는 김 지사가 2006년부터 허가한 골프장이 38개”라며 “김 지사가 위증한 것인지 가려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에 김 지사는 “제 임기에 승인된 38개 중 25개는 손 지사 시절 입안된 것”이라며 “손 지사가 골프 좋아해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때 법을 고쳐 허용된 것”이라며 손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을 모두 견제하는 ‘영리한’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손학규 대표는 의원 신분이 아니어서 상임위에 소속돼 있진 않지만 든든한 국감 지원군으로 나서고 있다. 의원 시절 손 대표는 국감에서 성실한 정책 질의로 인정을 받았는데, 교수 출신인 그의 질의서는 꼼꼼하고 논리정연하기로 유명했다. 의혹 제기와 명령조로 질의하는 상당수 의원들과 달리 손 대표의 질의서는 개선방안과 대안, 도입 필요성 등을 담고 있어 ‘모범적’ 국감 질의서로 지금까지 통하고 있다. 이번 국감기간 동안 당 대표로서 민생현장 방문에 치중하고 있는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여당의 주요 정책 질의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과 수시로 상황을 모니터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손학규 대표에 대한 견제에 나선 ‘대권 경쟁자’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에게는 이번 국감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위 소속인 정동영 최고위원은 국감차 해외방문 중에 이낙연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 인사가 이뤄졌다며 손 대표 측에게 항의 의사를 전했다. 정세균 최고위원(국방위) 역시 한 인터뷰에서 손 대표에 대해 “최고위원들과 제대로 상의하지 않고 여의도로 당사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당사 이전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두 최고위원 모두 장관을 지낸 행정경험을 토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하는 등 국감 일정을 수행하고는 있으나 내부적으론 손학규 대표 체제에 대한 견제구 마련이 보다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피감자이자 감사자 신분을 겸한 행보로 눈길을 끌고 있다. 보건복지위 소속인 이 장관은 지난 4일 의원 신분으로 보건복지위 국감장을 ‘깜짝 방문’해 자신의 측근이기도 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감사받는 장면을 지켜봤다. 그런가 하면 29일에는 그 자신이 피감기관장으로서 국감 무대에 서게 된다. 감사자와 피감자를 오가는 그의 모습이 차기 대선과 관련해 ‘킹’이냐 ‘킹메이커’냐는 논란을 낳는 현실과 오버랩되는 듯하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장광근 의원 “4대강 반대=낙태 압박” 파문
이명박 정부 중반을 맡는 2010년 국감장에서는 과연 어떤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을까. 몇 가지 주요 쟁점들과 서민들의 관심을 끌 만한 민생관련 국감내용은 어떤 것들인지 짚어 보았다.
4대강 문제, 여야 중 승자는 누구?
2010년 국정감사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바로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국회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 문제를 두고 한바탕 여야 격론이 벌어졌다. 민주당의 국토해양위 소속 강기정·김재윤·김진애·박기춘 의원 등은 이번 국감을 통해 4대강 사업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고 임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미 상당부분 4대강 사업이 진척된 상황이어서 이번 국감이 4대강 사업 저지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의 핵심은 4대강 사업이 여전히 운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반면 한나라당은 물을 공급하는 것이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한 용도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차로 뜨거운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얼마 전 국감장에서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낙태 발언’이 튀어나와 여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이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민주당 김진애 의원을 향해 “4대강 사업은 여성으로 따지면 임신 5개월 이상 지난 것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 임신 못하게 하다가 지금은 낙태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
이에 대해 김진애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낙태 비유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생명모욕, 여성모욕”이라 강하게 항의하는 등 민주당의 반발은 거셌다. 의견차를 줄이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국감장이 싸움을 증폭시키는 전장이 되고 만 것. 그런데 한나라당이 장광근 의원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하면서 논란이 커지는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공방전이 공허한 말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한나라당이 의도적으로 말싸움을 부추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논란이 될 것이 뻔히 예상되는 4대강 사업의 본질을 비껴간 발언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그에 대한 소모전으로 시간을 벌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치사하지만 치밀한 전략”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반대의 메아리’ 같은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4대강 사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기는 편치 않다. 이번 국감 결과에 따라 4대강 사업 이슈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소모적인 논쟁에서 얻게 될 소득이 과연 있을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민생국감? 서민들만 우울하다
음주단속을 해야 하는 경찰관들의 음주운전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경찰청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이후 경찰공무원의 음주운전사고가 520건에 달해, 시민 8명이 사망하고 269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08년 이후 음주운전사고를 낸 경찰관(170명) 중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이가 121명이나 되었고 사고 뒤 음주 측정에 응하지 않은 경우도 7명이나 있었다.
얼마 전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가 지병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진 뒤 이와 관련된 국감 내용도 전해졌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원인별 자살현황’에 따르면 2006~2009년까지 5년 동안의 총 자살자(6만 8378명) 중 ‘질병’을 이유로 자살한 경우가 21.9%(1만 4231명)에 이르렀다. 또 가난을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서민들의 가슴을 울적하게 만든다. 2008년에는 ‘빈곤’을 이유로 자살한 경우가 480명이었지만, 2009년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경제생활문제’로 자살한 경우가 무려 2363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국민이 낸 소중한 성금이 엉뚱한 데 쓰인 것으로 드러나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1월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 당시 모은 구호성금 97억 중 실제 아이티 주민들에게 전달된 돈은 고작 6억 500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66억 원은 ‘정기예금’에 묻어두었고 호텔과 한식당 이용비 등 의료단 운영비에 5억 원이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의 소중한 ‘피’도 대한적십자사의 관리 소홀로 상당량이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대한적십자사가 제출한 ‘최근 5년간 부적격 혈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7만 5577팩(한 팩당 400㎖)이 폐기처분됐다. 혈세를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 성금과 혈액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해 왔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