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두산중공업 한 여직원이 서초사옥 앞에서 회사 동료이자 임원 아들로부터 낙태를 강요받았다며 피켓 시위를 했다. |
사내연애가 잘못돼 기업 전체 이미지를 흐려놓은 사례다. 이러한 해프닝은 비단 두산중공업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 초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녹십자까지 대기업발 막장 스캔들은 한두 건이 아니었다. 대기업 사원들의 스캔들 파문은 그후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이××의 아이를 가진 여자입니다.”
마른 체격에 아담한 키의 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두산중공업 본사 정문에 섰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과 함께 피켓도 흔들리고 있었다. 직장동료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여성에게 다가가 끊임없이 뭔가를 설득하는 듯하다 이내 주변의 눈을 의식하고는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피켓에는 적나라한 개인의 연애사와 함께 실명이 공개돼 있었다. 내용은 임원의 아들과 6개월 동안 교제하며 임신까지 했지만 그는 임신 사실을 알고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골자였다. 또 남자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자고 설득했으나 낙태를 강요받았고, 심지어 그의 부모가 혼수비용까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시위 여성은 “이제 남자친구였던 이 씨와의 결혼은 원치 않지만 억울한 사연을 사회에 고발하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은 트위터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회사 내부에도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사과가 있을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 했던 여성은 몇 시간 후 종적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여성은 과연 사과를 받았을까.
이와 관련 두산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에게 “회사에서 당사자들을 불러들여 진상조사를 하고 있고,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남자사원의 징계 여부와 관련해서는 “내부규정상 ‘회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한 사원에 대한 징계’ 조항이 있긴 하지만 사적인 문제인 만큼 사측이 나서서 벌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직 임원인 남자의 아버지에 대해선 사건 당사자가 아닌 만큼 ‘무관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시위 여성에 대해서는 만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올 초 삼성전자 역시 비슷한 사건으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을 따 ‘정교빈 사건’으로 명명된 이 해프닝은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 온 한 여성의 호소와 함께 시작됐다. 이 여성은 “삼성전자에 다니는 정 아무개 사원이 자신과 5년 동안 사귀어 놓고선 다른 여자와 결혼날짜를 잡고 웨딩촬영까지 끝냈다”고 폭로하며 구체적인 연애사를 털어놨다. 게시판에는 회사명은 물론 남자의 근무부서, 실명까지 공개됐다. 얼마 되지 않아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남자는 물론 결혼날짜를 잡은 여성의 직업, 증명사진, 심지어 남자 부모의 실명과 사진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파문이 계속되자 해당 남자사원은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소문도 이어졌다.
3개월가량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정 아무개 사원은 당시 진상조사차 면접을 요청한 인사팀에 사건 정황에 대해 진술한 후 “개인적인 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에는 다른 여성과의 결혼식도 예정대로 치렀는데, 당시 정 씨 측은 사설경호원을 고용해 낯선 사람의 출입을 제한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활약으로 결혼식 장면이 온라인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위의 두 사례가 대기업 남자친구와의 개인적 연애에서 불거진 여성의 보복성 돌발행위였다면 지난 8월 말경의 ‘녹십자 불륜 사건’은 형사사건으로까지 확대된 진짜 ‘사건’이었다. 사건은 녹십자에 근무하는 남편 A 씨가 사돈(매형의 여동생)과 불륜행각을 저지른 사실을 부인이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남편 A 씨는 내연녀들과 성관계를 할 때마다 동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PC에 저장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동영상이 부인 B 씨에게 발각된 것이다.
남편의 외도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본 부인의 충격은 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후 벌어진 남편의 태도가 더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알게 된 부인에게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도리어 사생활 침해라며 구타와 폭행을 일삼았고, 결국 간호사였던 부인은 수면내시경에 쓰이는 마약 환각제인 프로포폴을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했다. 경찰에 불려간 남편은 녹십자 직원이 아닌 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허위 진술했고 조사가 끝난 후에는 태연히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이후 B 씨의 유족들이 휴대폰 문자로 전송된 남편의 협박과 폭행정황 등을 발견하고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나아가 B 씨의 친언니는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을 올리고, A 씨가 근무하는 녹십자에도 사실을 알리면서 책임을 물었다. 당시 B 씨의 언니는 포털게시판을 통해 “회사에서 A 씨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함께 물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번듯한 직장인에서 일순간에 천인공노할 파렴치범으로 전락한 A 씨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10월 14일 기자와 통화한 녹십자 관계자는 “권고사직을 권유할 틈도 없이 재수사가 진행된다는 소식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종적을 감췄다”고 전해왔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광주서부경찰서 관계자는 10월 1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상당한 양의 증거자료(PC 동영상)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 A 씨에 대해 간통죄는 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재수사 과정에서 B 씨가 A 씨의 폭행에 시달려 왔다는 정황을 입증할 수 있는 병원 진단서가 발견됐다. A 씨는 현재 폭행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됐다”고 전해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