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희토류를 선적하는 중국 장쑤성 연운항 항구. 연합뉴스 |
최근 국내 대기업 자재 구매 담당자들에게 던져진 지상과제다. ‘희토류’는 티타늄 인듐 세륨 디스프로슘 등의 원소를 총칭하는 말로 희귀한 광물을 의미한다. 희토류는 하이브리드자동차용 2차전지, LCD, 휴대전화, 풍력발전기용 모터 등 대부분의 전자 제품에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전략사업으로 꼽히는 제품들에는 대부분 희토류가 사용돼 갈수록 희토류의 효용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희토류 전 세계 생산량 97%를 차지하는 중국이 최근 이를 자원무기화하고 있어 한국, 일본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얼마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벌어진 중-일 간의 분쟁에서 일본이 백기투항했던 것도 바로 희토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대기업의 주력 사업이 이 희토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토류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9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 간의 영토 분쟁이다. 당시 일본은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영토 침범으로 간주, 이를 나포하고 중국인 선장을 구속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희토류 대일본 수출 금지 조치란 대응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한 방에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석방하고 사실상 백기투항했다. 일본과 같이 전자제품을 전략산업으로 하는 나라에게 희토류 수입이 중단된다는 것은 곧 나라 경제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중-일 분쟁이 우리나라에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주력산업이 일본과 겹치는 데다 대중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언제 일본과 비슷한 일을 겪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엮인 각종 문제와 관련해 희토류를 무기로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지식경제부 희소광물 담당자는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30%, 생산량의 97%를 점유하고 있다. 매장량에 비해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중국이 미국이나 호주 등 희토류를 생산하던 일부 선진국보다 환경규제가 적고, 인건비가 워낙 싸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면에서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희토류를 생산했으나 중국이 흙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희토류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오판이었다. 세계적으로 첨단 전자산업이 발달하고 희토류 희소성 가치가 높아진 데다 중국이 사실상 생산을 독점, 이를 자원무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희토류는 각 나라의 신성장 동력에 필수적인 만큼 중국은 ‘갑’의 위치를 적극 활용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횟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의 희토류 자원무기화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대응방안이 주요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비축 중인 희토류의 양은 금속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2개월치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비축량도 부족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데 중국이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인상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이번 대일 수출 금지조치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수출 자체를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미국 의회가 파악해 공개한 바로는 전 세계 희토류의 연간 총생산량은 12만 4000톤이지만 오는 2012년에는 수요가 18만 톤으로 증가한 후 2014년까지 해마다 20만 톤씩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우리나라가 새로 비축한 희토류는 현재 단 1g도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 희토류 가격은 폭등했다. 단적인 예로 올해 1월만 해도 톤당 5500달러였던 란탄옥사이드의 가격은 6월 8289달러로 뛴 데 이어 8월에는 3만 56달러, 지난달엔 4만 달러 선을 돌파했다.
게다가 그동안 중국의 환경규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었으나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환경 기준치를 강화하고 있어 대부분의 중국 희토류 가공 공장들이 새로운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실정이어서 생산량은 자연스레 감소할 전망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희토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이 IT(정보기술)나 자동차, 첨단 전자 산업이 주력인 만큼 희토류 확보 전쟁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중국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중국 정부나 기업과의 마찰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정부 간 마찰은 불가항력적일지라도 기업 측에서 먼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희토류와 관련해 최소한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비책은 일본 등에 한 발 뒤처졌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1000억 엔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상태고 호주 태국 등과도 희토류 채취를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미국은 한동안 폐쇄했던 캘리포니아의 희토류 광산을 다시 열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12일에서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희토류 공동탐사를 위한 정부 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장기적인 희토류 확보 방안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야 첫 발을 내딛은 채 당분간은 중국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 증권사 에너지기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일부 IT기업이나 자동차 관련 기업에서 희토류 공급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현재 광물자원공사에서 나서서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미흡한 실정이다.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국가 전략 산업이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희토류를 둘러싼 각 국가 간 전쟁이 지난 1970년대 ‘석유전쟁’을 방불케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원외교를 주창한 이명박 정부에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