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동근 차관 소유의 부산 용호항 S 업체 사업 부지. 맞은 편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주변 어민들은 S 업체에서 띄운 바지선 때문에 어선 운항에 있어 사고 위험성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갑작스레 등장한 바지선에서 수상오토바이, 제트스키 등이 오고가자 불편을 겪는 어민들이 관리감독기관에 피해사실을 신고했지만 바지선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지속되자 불똥은 S 업체에 부지를 대여해 준 소유자들에게 튀고 있다. S 업체에게 부지를 임대해 준 소유자 중에는 부산지역 유력인사이자 현 교육과학기술부 최고위층인 설 차관이 포함돼 있다. 설 차관이 S 업체에게 상당액의 임대료를 받고 있어 현지에선 외압 의혹마저 일고 있다.
용호항 바지선 불법영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 및 설 차관이 구설에 오른 내막을 현지에서 취재했다.
부산시 소재 용호항 인근에서 20여 년 동안 어선을 몰아온 박 아무개 씨(50). 주변이 깜깜한 새벽4시경 매일 출항해왔지만 수십년 동안 왕래한 바닷길이었기에 사고 한 번 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박 씨는 작년 여름 처음으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항로 중간에 예고 없이 정박된 바지선 때문에 시야가 가려 반대편에서 오고 있는 어선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박 씨는 급히 방향을 돌렸지만 어선은 반대편 옹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박 씨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어민들도 갑작스레 등장한 바지선 때문에 위험천만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날이 밝자 박 씨와 어민들은 항로 중간에 정박된 바지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바지선은 용호동 5-19 부지 바로 옆에 정박돼 있었다. 5-19 부지에는 레저장비를 대여·판매하는 S 업체 사무소가 들어서 있었고, 제트스키와 바나나보트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5-19 부지 바로 옆에 위치한 문제의 바지선 위에는 육지에 있는 제트스키를 수면으로 옮기기 위한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바지선은 레저장비가 바다로 나가기 전 출발 지점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었다.
어민들은 업체 관계자에게 위험성을 이유로 즉각 바지선을 철거하라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며칠 후부터는 문제의 바지선을 기점으로 하루 수십 대의 제트스키가 어선 항로를 가로질러 광안대교까지 시속 70~100㎞/h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민들은 할 수 없이 관리감독기관인 부산해양항만청, 부산항만공사, 부산해양경찰서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몇 달째 바지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부 어민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S 업체에 영업을 허가한 5-19 부지의 소유자가 설 차관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실제로 S 업체가 들어선 5-19의 땅 소유주는 지역 유지이자 8년간 부산시 교육청 교육감을 지낸 설 차관이라는 사실을 인근 어민들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사건 무마 의혹이 불거지자 관련 수사기관인 해경 측은 민원 제기 사실에 대해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일 것이라 예고했다. 또 공유수면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관련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10월 20일 용호항을 찾아가 봤다. 용호항에는 문제가 된 바지선이 여전히 정박해 있었다. 부지에는 제트스키 여러 대가 놓여 있었고, S 업체 사무실도 정상영업을 하고 있었다. 민원이 제기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용호항 어민들을 대표하는 박정석 어촌계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박 계장은 “해경에서 ‘바지선을 이동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해 S 업체로부터 각서를 받고 서로 안전사고에 유의하는 선에서 해결을 봤다”고 설명했다. 계장이 보여준 각서에는 ‘레저장비가 어선에 피해를 끼치면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는 사후처리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박 계장은 “어민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기관에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계속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어촌계장은 처벌근거가 없는 것으로 통보받았지만 부산해양항만청에 확인한 결과 바지선이 떠 있는 수면은 부산시 소유의 공유수면으로 어촌계와 S 업체 간의 합의와는 별도로 영리목적으로 이용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엄연히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안이었던 셈이다. 박 계장은 이 부분에 대해 “어민들이 법적인 부분을 자세히 알겠나. 잘 모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합의했었다”고 토로했다.
5-19 구역에 위치한 S 업체 사무실을 찾아가 봤다. 10월 20일 기자와 만난 S 업체 추 아무개 이사는 해당 부지에서 레저장비 대여 및 판매 등 영리사업을 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추 이사는 “우리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땅 소유자가 괜찮다고 해 계약했고, 부지를 빌려 쓰는 대가로 매월 1200만 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바지선이 정박돼 있는 공유수면에 대해선 “그냥 써도 되는 줄 알았다. 알았다면 바지선을 내려 놨겠나. 레저영업을 할 것을 알면서도 계약한 것은 토지 소유자다. 우리도 피해자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이 등기부등본을 살펴본 결과 이 업체가 사용하는 5-19에 해당하는 부지 실소유자는 설 차관과 허 아무개 씨로 확인됐다.
추 이사는 “설 차관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허 사장과 부지 임대를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S 업체 사장도 5-19 공유수면 부지 임대계약은 설 차관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설 차관의 동생 설 아무개 씨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설 씨는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설 차관 역시 S 업체로부터 월 450만 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동생 설 씨는 “부지 소유자인 설 차관과 허 사장이 한 달에 450만 원씩 받는 조건으로 지난 5월부터 S 업체에 부지를 임대해 줬다”고 말했다.
▲ 부산 영도구 해양경찰서 전경.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해경이 ‘봐주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도 발견됐다. 기자와 만난 해양항만청 공유수면계 관계자는 “용호항 공유수면 관련 민원이 제기돼 현장조사를 나간 결과 레저사업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유수면은 영리목적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후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해경에 이 사실을 고발했다”고 말했다.
설 차관의 동생은 S 업체가 쓰고 있는 5-19 부지에 대해서 먼저 설명했다. 설 씨는 “부지 자체를 레저사업에 쓰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바지선이 떠 있는 공유수면이다”며 “S 업체가 계약 당시 5-19 부지를 주차장으로 쓴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7월부터 갑자기 레저사업을 하고 있더라. 그 와중에 인근 수면에 바지선까지 띄워 놨더라”며 공유수면 불법사용 책임은 S 업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공유수면에 영리목적의 바지선을 띄워논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왜 제지하지 않았냐’고 묻자 “12월까지 S 업체와 계약돼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10월 20일 만난 사건 담당 팀장은 기자가 취재한 것과는 전혀 엉뚱한 답변을 늘어놨다. 그는 “조사결과 S 업체가 영리행위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상스키와 바나나보트 타기를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레저장비를 거기다 갖다 놓고 즐기는 것이다. 대여료를 받거나 불법영업을 한 정황은 없었다”며 “영리목적이 아닐 경우 바지선 자체를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S 업체 대표가 레저장비 대여 및 매매 사업을 해당 부지에서 하고 있다고 시인했다’고 반박하자 “경찰 조사에서는 증거자료가 확인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해양항만청이 공유수면의 불법사용에 대해 확인하고 바지선 사용자 및 신청자들을 해경에 고발한 걸로 알고 있다고 재차 질문하자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선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용호항의 바지선 불법영업 논란은 설 차관 입장에선 어쩌면 억울한 사안일 수도 있다. 설 차관 동생의 주장대로 정식계약을 맺고 사유지를 임대만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란이 커진 것도 사법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처리가 원인이 된 측면이 강하다. 현지에서도 ‘경찰이 알아서 긴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없지 않았다.
설 차관이 일체의 오해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이 시점에서 바지선 불법영업을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기자는 이와 관련해 설 차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교과부로 서면 질의서까지 보냈으나 설 차관은 끝내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