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20(홈런)-20(도루) 클럽 달성에 성공한 메이저리그 스타 추신수(28·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아내 하원미 씨(28)한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연예인보다 월등한 미모의 소유자’ 또는 ‘내조의 여왕’이란 타이틀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연극영화를 전공하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지만 불같은 사랑에 학업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였다. 미국 생활 10년 만에 팀의 주전 선수로 내년, 연봉 대박을 꿈꾸는 남편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돼 아들만 둘인 씩씩한 아내로 살고 있는 그가 남편,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간의 짧은 귀국을 감행했다. 추신수가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수로 발탁되면서 대표팀에 합류해야 했고 하원미 씨 또한 1년 만의 한국 나들이를 즐기고 싶어 큰아들 무빈(6)이, 건우(2)와 함께 귀국했던 것. 그러나 무빈이 학교 문제로 지난 10월 16일, 남편만 놓고 세 가족은 다시 미국 애리조나로 돌아갔다.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만한 이벤트를 기획하다 육아 잡지 화보 촬영을 제안받은 추신수-하원미 부부는 부산 해운대를 배경으로 아이들과 함께 멋진 작품들을 연출해 냈다. 부산에서 만난 두 부부의 연애사와 일상들을 들어본다.
드라마 같은 연애 스토리
추신수 하원미 씨의 연애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추신수가 마이너리그 시절, 시즌 마치고 귀국 했을 때 후배를 통해 자연스레 소개를 받았던 여자가 지금의 아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을까? 추신수는 아내를 보자마자 ‘바로 이 여자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를 본 순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제 앞에 앉아 있는 듯했거든요. 아내도 절 보자마자 사랑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한 달 동안 잠 자는 시간만 빼놓고 하루 종일 같이 지냈어요.”
한 달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냈던 추신수는 혼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미국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눈만 뜨면 여자친구 생각에 야구도 잘 되지가 않았다. 야구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전화통을 붙들고 살다시피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결국 양가 부모님의 허락 하에 원미가 미국으로 들어왔어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먼저 살림부터 차린 셈이죠. 원미가 옆에 있으면서 힘든 야구가 힘들지 않게 느껴졌어요. 훈련이나 경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절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행복감과 즐거움을 줬었죠. 그렇게 지내다 원미가 미국 온 지 6개월 만에 무빈이가 생긴 거예요.”
아이가 아이를 낳다
두 부부는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스물두 살 되던 해에 무빈이를 낳은 하원미 씨는 한마디로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아 지식이 제로였다고 한다. 하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 얘기를 곁들인다.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이 한 명도 없으니까 모든 게 낯설고 두렵고 힘들었어요. 무빈이 태어나고 한 달 만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의사가 무빈이를 어디서 재우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 아빠랑 같이 잔다고 했더니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는 부모랑 절대로 같이 자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빠가 자다가 잘못해서 아이를 눌러 질식사시킬 수도 있다는 얘길 하면서요. 그러면서 베이비 클립을 사서 재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사러 갔더니 300달러가 넘더라고요. 그 당시 우리 통장에 130달러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던 마이너리그 시절, 오로지 사랑 하나 믿고 태평양을 건넜던 하 씨는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덜컥 임신부터 한 이후 폭풍 같은 삶을 보내야 했다.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간 탓에 임신 초기, 혼인 신고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태아의 다운증후군 검사를 하는데 800달러를 지급해야만 했다. 당시 추신수의 한 달 월급이 1000달러를 조금 넘게 받던 시절이었으니 아이의 존재가 두 부부한테는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두 사람을 닮은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단다.
▲ 오랜만에 한국 나들이를 한 추신수 부부와 두 아이가 부산 해운대세서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사진제공=베스트베이비 |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니까 무빈이가 분수처럼 토하더라고요. 남편이 너무 놀란 나머지 구단에 전화를 해서 경기에 못 나가겠다고 말한 뒤 같이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무빈이를 진찰한 의사가 하는 말이 아기가 너무 많이 먹어서 토했다는 거예요. 제가 모유 수유를 1년을 넘게 했는데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리는 걸 몰라서 밤새 물리고 잠을 잤거든요. 무빈이는 밤새 엄마 젖을 빨았고요. 그 결과 이상 증세를 나타낸 거죠.”
남편이 원정 경기를 떠나 집을 비운 사이, 무빈이가 열이 올라 밤새 보채며 운 적이 있었다. 하 씨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닦아주기만 하다가 아침 일찍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명은 수족구. 무빈이 입 안이 온통 하얀 물집이 잡혀 있었는데 하 씨는 그걸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가 집에 없으니까 더 두렵더라고요. 응급실로 가면서도 영어가 짧아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싶었죠. 결국 약 처방 받아 들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서럽고 겁이 나 눈물이 쏟아졌어요. 남편 없을 때, 저 혼자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한국에 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추신수는 야구 선수로 살다보니 자신이 육아를 위해 함께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굉장히 힘들어 했다고 한다.
아빠 대신 가장 노릇하는 무빈이
무빈이가 태어난 지 4년 반 만에 둘째 건우가 태어났다. 아이가 한 명 있는 것과 둘이 있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베이비시터를 둘 수 있는 형편도 안 돼 육아는 온전히 하 씨의 몫이었다.
“아빠 경기를 보러 야구장을 가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예요. 그래서 시간될 때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 나들이를 가죠. 건우를 안고 무빈이 손을 잡고 아기 가방을 둘러메고 클리블랜드 홈구장을 향하는데 갑자기 무빈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몸이 바빠져요. 다시 가방 메고 건우 안고 무빈이 손 잡고 화장실에 갔다가 무빈이 볼 일 보고 나면 저도 급해져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럴 땐 좁은 화장실 안에서 무빈이가 잠시 건우를 안고 있고 제가 볼 일을 보는 거죠. 어떨 때는 무빈이가 저랑 건우 보호자 같아요. 아빠도 아빠 대신 무빈이가 엄마랑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고 말을 해서 그런지 아주 의젓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여섯 살 무빈이는 어린아이다. 아빠가 홈 팀이 있는 클리블랜드에 남고, 세 가족은 애리조나로 이사를 온 상황에서 무빈이는 아빠와 전화 통화할 때마다 ‘엄마를 도와서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책임감이 커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가 없을 때는 투정도 안 부리고 동생도 봐주면서 엄마를 도와주려 애쓰지만 막상 아빠가 옆에 있을 때는 한없이 어리광피우고 자주 울기도 하면서 아빠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내조의 여왕
추신수가 옆에서 아내 얘기를 듣고 있다가 이런 말을 내놓는다.
“흔히 운동선수의 아내는 화려하게 살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아직은 큰돈을 버는 게 아니라 아내 혼자 두 아이 키우면서 한국 부모님께 생활비 보내드리는 등 정말 절약하며 살고 있거든요. 이전부터 베이비시터를 두려 했는데 그 돈 아낀다며 혼자 다 감당하며 지냈어요. 건우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체력이 달린 나머지, 최근에야 베이비시터를 구했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 아등바등 대며 사는 거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고 그래요. 정말 대단한 엄마이고 아내이고 여자입니다.”
추신수는 집에선 야구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 또한 야구와 관련해선 아예 물어보질 않는다고. 그래서 야구를 보는 수준이 여전히 아마추어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제가 야구를 제대로 볼 줄 알면 자꾸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야구를 구경만 하려고 해요. 남편이 4타수 무안타에 삼진을 먹는다고 해도 전 무조건 잘했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전 남편이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디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것 만으로도 감사해요. 동양 선수가 외국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하 씨는 남편과 아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틀린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클리블랜드에서 같이 살 때는 남편이 경기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이 새벽 1시 정도였다. 이미 아이들은 9시에 잠자리에 든 터라 그는 TV로 야구 경기를 지켜보면서 남편의 저녁 준비를 한다.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잠 드는 시간이 새벽 두세 시 정도. 그런데 아이들은 아침 7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엄마를 깨운다. 무빈이도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다시 하루를 맞이하는 게 하 씨의 일과였다.
하 씨는 아빠를 닮아서 운동에 소질을 보이고 있는 무빈이가 운동뿐만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 등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생 직업으로 운동을 선택한다고 해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어린 시절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다양한 취미 생활을 가질 수 있게 토양을 제공해 주고 싶은데, 남편은 그저 아이들은 놀게 하는 게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간혹 교육 문제로 의견 차이를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무빈이가 리틀 야구팀에서 생애 첫 안타를 쳤을 때는 남편이 만루 홈런 쳤을 때보다 더 기쁘고 감동적이었어요(웃음).”
10월 25일부터 야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에 나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도 복잡 미묘해진다. 그러나 강단 있는 하 씨는 이런 말로 응원을 보낸다. “어느 유니폼보다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대표팀 유니폼이 가장 근사해 보이더라고요. 전 남편이 멋진 플레이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거라고 믿어요.”
부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