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씨는 현재 서부지검 수사를 받고 있는 A 사 비자금 일부를 ‘무기명 채권’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의 소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묻지마 채권’으로도 불리는 무기명 채권은 외환위기 이후에 지하자금을 양성화시키기 위해 1998년 처음 등장했다. 채권자나 채무자의 실명을 기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래 내역을 추적 받지 않고 현금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 비자금을 유통시키거나 상속세·증여세 등 세금을 포탈하는 경로로 악용되기도 했다.
서부지검 관계자에 따르면 유 씨가 가지고 있는 무기명 채권의 액수는 20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유 씨가 보관 중인 무기명 채권은 A 사 임직원들의 명의로 된 차명계좌에 있던 돈으로 사들인 것이다. 검찰은 유 씨가 이 무기명 채권을 왜 가지고 있는지, 또 다른 채권들은 없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부지검은 유 씨 소환 이후 A 사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당초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던 A 사 수사는 최근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검찰 내부에서도 “다소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반성도 나왔다. 그런데 최근 A 사 총수의 최측근들을 줄줄이 불러 소환하며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유 씨를 소환했다고 수사가 탄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유 씨를 포함해 여러 경로를 통한 증거를 가지고 점점 좁혀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서부지검은 A 사 계열사들이 내부 거래 방식으로 총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