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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4대강 사업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차기 ‘영순위’로 꼽히는 박 전 대표를 서로 ‘우군’으로 영입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 때문에 친박 진영은 박 전 대표가 어떠한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장고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4대강 침묵’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전선’이 친박 내부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내막을 따라가 봤다.
최근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4대강 사업 관련 예산은 9조 5747억 원이다. 수자원공사(3조 8000억) 국토해양부(3조 2800억) 환경부(1조 467억) 농림수산식품부(1조 1930억)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김황식 총리가 대독한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4대강은 국제적인 명소로서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녹색성장의 선도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면서 국회의 신속한 예산 통과를 부탁했다. 여권 핵심부는 친이 의원들에게 일부 예산안은 야권에 양보하더라도 4대강 사업만큼은 ‘사수’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산안이 공개되자 민주당이 즉각 공격에 나섰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정부 예산안은) 한마디로 4대강 사업 강행의지만 있는 국민무시 불통예산이다. 절대 이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박 원내대표는 시민사회·종교계와 연계해 4대강 반대 국민운동을 실시할 계획이다. 민주당 정부예산안심사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나라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4대강 예산을 무리하게 편성하다 보니 정부가 재량적으로 할 수 있는 시급한 복지사업 예산이 줄어들었다”면서 “4대강 검증특위를 구성해 차근차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4대강 예산안을 밀어붙일 경우 심사 자체를 거부하거나 원외투쟁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민주당 공세에 ‘지나친 발목잡기’라며 분개하고 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4대강 예산안을 꼼꼼하게 살펴보자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예산이 4대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 국방 미래와 관련된 예산들이 더 중요하다”면서 “4대강에 매몰된 것은 야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선 민주당이 예산안을 왜곡하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민주당은 4대강 사업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꼼꼼히 살펴보면 전혀 사실과 다르다.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잘못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예산안 심사를 거부할 경우 단독으로 강행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예산 국회’가 물리적 충돌에 따른 파행으로 끝날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는 4대강 예산안을 놓고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한나라당 유력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다. 당초 박 전 대표가 후반기 국회 상임위를 기획재정위원회로 택했을 때만 해도 여권 주류 내에선 적지 않은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세종시 정국’에서처럼 박 전 대표가 4대강 예산을 문제 삼을 경우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반대를 안 하는 것만 해도 어디냐.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박 전 대표와의 회동을 추진해 성사시키고, ‘국정동반자’로서 인정한 배경엔 이처럼 4대강 사업에서 박 전 대표의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도 박 전 대표 도움을 내심 바라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아무리 저항해도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이길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세종시처럼 박 전 대표만 우리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4대강도 저지할 자신이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 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가 ‘뜻’을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반면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합류’를 반대하는 견해도 들린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손학규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박 전 대표와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박 전 대표가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게 대권전략상으론 민주당에게 유리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박 전 대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란 게 여러 친박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정치적으로 실익이 없다”는 게 그 이유. 박 전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이 대통령과의 연이은 만남으로 겨우 계파 간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 어찌 됐건 한나라당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 전 대표가 굳이 해빙기류를 깰 필요가 있겠느냐. 세종시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사석에서도 박 전 대표는 “왜 나보고 자꾸 의견을 말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기재위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발견되면 지적하겠지만 국가가 하는 사업에 내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핵심 측근들 역시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후 결정하자”고 충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좀 더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분이라면 국가적 어젠다인 4대강 사업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도 “박 전 대표가 당내 갈등을 고려해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답하는 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여와 야를 막론하고 박 전 대표의 ‘침묵 모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친박 내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한 친박 의원은 “친박은 다른 계파에 비해 ‘군기’가 센 편이다. 보스(박 전 대표)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뭐라 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러나 몇몇 의원들은 조금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4대강 사업에 대해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경남에 지역구를 둔 한 친박 의원은 “지역구 민심을 들어보면 원성이 더 크다. 박 전 대표가 왜 세종시처럼 강하게 말리지 못하느냔 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지금 내부 분위기상 이러한 여론을 (박 전 대표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몇몇 친박 인사들은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이 많은 불교계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박 전 대표의 ‘결심’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 내부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혼란스러운 기미를 보이자 박 전 대표 역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신중한 태도에 불만을 털어놓았던 한 의원을 직접 의원회관 사무실로 불러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4대강 사업에 대해 언급할 것이란 추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윤호석 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4대강 사업 전반이 아닌, 박 전 대표 상임위인 기재위가 다룰 만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수준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 주류를 만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야권의 공격도 방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