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부담은 단연 배우들이다. 요즘은 영화에서도 전라 노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연극 무대는 관객들 바로 앞에서 노출을 해야 한다. 그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 현재 대학로 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출연 중인 여배우 네 명에게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성인연극에서 전라연기를 비롯한 파격적인 노출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고민이 표면 위로 올라오게 된 계기는 연극 <교수와 여제자>에서 전라 연기를 펼쳤던 최재경(예명 수피아)의 심경 토로다. 지난 8월 기자회견을 자청한 최재경은 “<교수와 여제자>를 통해 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심적 고통이 심해 하차하게 됐다”며 “연기자이기 이전에 평범한 여자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많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었다고 한다.
연극 하차로 끝난 줄 알았던 고통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관련 사진과 동영상으로 인해 더 심해졌다고. 20세도 아닌 30세 이상 관람가의 절대 성인연극을 표방한 <교수와 여제자>. 이 작품에서 최재경은 남성 관객의 무대 난입, 몰래 카메라 적발 등의 사건을 연이어 겪다가 결국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최재경의 차기작은 또 다시 노출 연기였다. 연극 <탬버린보이>에서 호스티스 역할로 출연해 벗는 연기를 시도한 것. 최재경은 노출에 대해 “작품성 높은 작품이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들면서도 뭔가 매력이 있는 것일까.
<교수와 여제자>를 연출했던 강기웅 씨는 지난 97년 연극 <마지막 시도>가 외설 시비에 휘말리며 구속 수감된 최초의 연출가라는 이력의 소유자로 현재 또 다른 성인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연출하고 있다. 전작이 너무 파격적이었던 탓인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경우 전라 노출까지는 등장하진 않지만 대사와 설정, 행동 등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 유하(왼쪽)와 장신애. |
“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 왔는데 <바디클럽> 출연 당시에도 상반신 노출은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노출하고 컷아웃이 됐었다”는 유하는 “연기 도중 ‘교수님’을 향해 학점만 주면 모든 걸 다 주겠다며 10분 이상 전라에 가까운 노출을 감행한다. 극의 흐름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타당성 있는 노출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개인적으론 오히려 노출이 연기에 대한 애착을 높여줬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예상 외로 여주인공 ‘사라’ 역할의 장신애(26)는 생각보다 노출 수위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뇌쇄적인 눈빛과 도발적인 연기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충무로에서 연이은 영화 출연 제안을 받고 있다. “사라의 파격적인 노출을 기대하고 오는 관객 분들이 많아 처음엔 조금 힘들었다”는 장신애는 “난 애무 장면 등에서의 거침없는 행위와 눈빛 등을 통해 야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에 다소 실망하던 관객들도 극이 진행됨에 따라 반응이 뜨거워지는 걸 자주 느낀다”고 말한다. 또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느낄 때마다 구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이에 보답하기 위해 더 섹시하고 노골적인 연기를 보여드리려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고아라’ 역할의 배소정(22)은 뮤지컬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다. 배소정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목은 대사다. 그가 맡은 캐릭터의 대사가 가장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사가 익숙지 않아 힘들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해 가는 중이다”라는 배소정은 “첫 작품이라 부담감이 크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많이 배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성인연극은 그 특성상 현장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몇 달 전엔 한 남성 관객이 공연 도중 객석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사건도 있었다. ‘반선정’ 역할의 주미리(32)는 “뒤쪽도 아닌 바로 무대 앞자리 객석에 앉은 남자 관객이었던 터라 내 눈으로 똑똑히 그 장면을 목격해 당황했었다”며 “PD를 사칭하고 동료 여배우에게 접근해 캐스팅을 운운하며 술 접대를 요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자라며 접근해 온 스토커도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은 한창 작품을 공연 중이라 괜찮지만 공연이 끝난 뒤 노출 연기를 후회하진 않을까. 최재경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에 유하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관객들 역시 처음엔 나를 노출하는 여자로만 보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유하라는 배우를 한층 가까운 사람으로 여길 만큼 노출 연기는 관객과 나를 가깝게 만들어줬다”고 말한다.
과거 성인연극 <미란다>에서 전라노출 연기를 선보였던 한 에로배우 역시 당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에로배우로 활동하며 노출 연기는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연극은 무대와 객석 사이로 정말 무엇인가가 오고가는 게 느껴진다”면서 “커튼콜에서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은 뒤 에로배우가 된 뒤 처음으로 노출 연기의 자긍심을 느끼게 했을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주미리 역시 “영화 <하녀>를 보고 사람들은 전도연의 연기력을 말하지 노출만 기억하진 않는다”라며 “아무 이유 없이 무대에서 무작정 옷을 벗어 돈을 벌려고 했던 게 아닌 만큼 배우로서 노출 연기를 후회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최근 대학로에선 성인 연극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35세 유부녀 교사와 15세 남제자의 성행위 사건을 연극화한 <여교사와 남제자>라는 작품도 곧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순수한 열정을 품고 연기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선정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그들의 열정을 퇴색시키는 게 아닌가 싶은 대목은 다소 아쉽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