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3일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현황보고를 받은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왼쪽은 경질된 김태영 국방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런데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지도자가 돼야 할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피폭 직후 지하벙커에서 회의 끝에 나온 첫 마디가 ‘확전 자제’였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보수층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조차 ‘겁먹은’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군 미필자가 대다수인 안보장관회의에서 제대로 된 안보 대응이 나올 리 없다는 감정적인 비판도 점차 논리적인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국지전 도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위기관리 수준은 낙제점을 넘어 탄핵감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구멍 뚫린 안보 시스템 실상과 그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의 흔들리는 리더십을 긴급 진단해보았다.
연평도 사태를 바라보는 여권 내부의 분위기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이 휴전 이후 최초로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까지 살상하는 ‘준전시 상태’를 처음 겪어보는 의원들의 반응은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게 대체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그렇다고 해도 이에 대응하는 이명박 정권의 안보 대처능력이 수준이하라는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국방 시스템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 “안보 리더십 빵점인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과격한 요구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이번 연평도 사태는 이명박 정권의 숨통을 정면으로 조여오고 있다. G20 개최 성공으로 들떠 있던 청와대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이 대통령도 초기 대응 실패 비난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을 둘러싸고 국군을 통솔하는 국가 원수의 자질을 의심스럽게까지 하는 여러 가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먼저 이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 빼기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군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갑작스런 김태영 국방장관 경질에 대해 “모든 책임을 장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며 상당히 격앙된 반응도 보이고 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인사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오랫동안 전략기획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눠온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면 철저하게 챙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내치는 스타일이다. 특히 어떤 일이 터지면 자신은 빠지고 부하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CEO 출신이기 때문에 신의보다는 효율을 따지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다. 이번 김 장관 경질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부하를 끝까지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오히려 부하에게 떠넘긴 후안무치한 사건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부하들이 그를 믿고 따르겠나. 문제가 된 ‘확전 자제’ 발언을 깨끗하게 자신이 시인하고 장관은 내 지시에 따랐다고 했으면 군 전체 사기는 물론 국민들의 신뢰도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늦었다. 앞으로 이 대통령은 ‘확전 자제’ 발언 논란으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우화와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김 장관 경질로 군의 신뢰를 잃었고, 인사 원칙도 훼손해 명분도 잃었다. 군 일각에서 “혼자 살려고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라는 극단적인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사실 이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을 놓고 여권 내부에서조차 “감히 국군 통수권자의 발언을 누가 자기 뜻대로 마사지해서 언론에 흘릴 수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한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을 정확히 규명해야 제2, 제3의 연평도 사태를 막을 수 있다”라며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실제로 했다면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첫 번째로 논의되었던 것일까. 이는 청와대의 안보라인을 포함한 핵심인사들이 안보에 대해 ‘개념이 없다’라는 지적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시중에는 ‘이명박 정권은 군 미필 정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었다. 당시만 해도 여권에서는 현 정권을 무조건 깎아내리려는 네티즌들의 말장난 정도로 받아들이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군 미필 정권이 도마에 오르자 단순히 감정적인 비난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인터넷에선 청와대 지하의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벙커 회의 참석자들의 이름과 직함, 군역 현황과 사유를 적은 글들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벙커 회의 참석자들 중 이 대통령과 김황식 국무총리,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군 미필자인 점을 꼬집는 글들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각료 중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이 군 미필자로 거론되고 있다.
▲ 11월 25일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차려진 합동 분향소를 찾은 한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 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우리가 공군기 등을 동원해 2~3배 맞대응할 경우 전면전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마 청와대도 그런 걱정을 제일 먼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군사전문가들이 볼 때 ‘아마추어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본다. 북한은 확전을 못하게 돼 있다. 그게 일반 국민과 군사 전문가들 시각차이다. 전면전을 할 상황이 안 된다. 김정일 정권이 몰락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도 반대하고 있다(최근 중국 <환구시보>는 ‘북한만 의기양양해하며 마치 주도권을 쥔 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이 독이 든 술로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이란 걸 평양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음). 대규모 국지전 도발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사태 초기에 보복 대응을 보다 강력하게 했으면 북한에 끌려가지 않고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한 소장파 관계자 또한 이에 대해 “군 미필 정권은 ‘오버’라는 감이 없지 않지만 군을 다녀오지 않은 인사들이 다수 있는 현 정권의 안보라인이 타협 내지는 상황관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지적돼야 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북한의 연평도 타격에 대한 비난 정국에서 군 미필 정권과 이명박 대통령의 ‘허약한’ 안보 리더십에 대한 비판 정국으로 불이 옮겨 붙자 여권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상수 대표가 이에 대해 “내부 분열과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기대하는 것이다. 내부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사태를 수습하고 국론을 통일하는 게 우선”이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도 이번 사태가 현 정권의 구멍 난 안보전략과 이 대통령의 위기관리 실패로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야당에서는 “이번 연평도 포격도 이 대통령의 ‘내가 다 안다’병이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평소 모든 분야에 박식한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군 문제에 대해선 그도 미필자이고 문외한이다. 이 대통령이 군부대 시찰 중에 얼굴에다 총 개머리판 끝을 대고 조준하는 사진을 보면서 군대 경험이 있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이는 국방 관련 참모들에게 자율권을 대폭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국가안보 관련 전문가들을 중용하고 수시로 전방을 방문해 지휘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또한 경질된 김태영 장관이나 김병기 국방비서관이 ‘확전 방지 발표 논란’의 덫에 빠진 것도 그 근본적 원인은 전쟁을 우려하는 청와대의 전반적인 유약한 분위기, 참모들의 안이한 안보의식과 매너리즘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에 따른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청와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해 특히 군 출신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방부 장관 출신인 김장수 의원은 “민간인까지 무차별 공격한 적에 대해 군끼리의 우발적 무력충돌에 대한 대응 절차를 정한 ‘교전규칙’ 적용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전규칙이 아니라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전폭기 폭격 등 무차별적인 대응 타격을 했어야 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도 “국군통수권자가 애매모호하고 상충되는 지시를 했다”고 지적한다. 안보문제에 관한 한 단호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군도 그에 맞게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자 먼저 “북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는 성급한 예단을 내려 국민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이번 연평도 사태에서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백기투항’식의 대응으로 북의 무자비한 민간인 공격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보다 더 큰 지탄을 받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화난 민심에 놀란 이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경질하며 상황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군과 국민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는 갈팡질팡 리더십을 노정시키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도발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 번 상황이 발생한 서해안보다 서울 도심 테러 등 보다 더 극단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연평도 사태에서 보여준 무능한 안보 리더십으로는 빗발치는 북한의 ‘포격’을 피하는 데만 급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들에게 걱정과 분노만을 떠안기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