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명 현직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이라는 불의의 일격을 받았던 정치권은 일단 청목회 입법 로비 수사에 협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당초 ‘헌정 유린 사태’라며 강하게 검찰을 성토하던 것에서 한 발 물러난 모습이다.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계속 버틸 경우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리스트에 올라 있는 한 민주당 의원은 “수사 받을 건 받겠다. 죄가 있으면 대가를 치르겠다. 다만, 지금의 수사가 검찰 의지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논의돼왔던 검찰 개혁 방안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 역시 “여야를 떠나 검찰이 국회를 너무 무시한다는 불만이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어떤 식으로든 검찰을 압박하기 위한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등 검찰에게 민감한 사안이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수활동비 등 내년도 검찰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여권 내에서도 ‘검찰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공수처 도입과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는데 최근 당 지도부가 잇달아 검찰 개혁과 관련해 긍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치고 있다. 안상수 대표는 “검찰의 수사권 가운데 업무상 과실, 가벼운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로 이관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수처 도입과 경찰 수사권 독립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던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 검찰에 반격을 가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치권 공세에 검찰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야권이 반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지만 여권조차 대립각을 세우자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야권이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자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11월 17일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지휘권을 폐지하고 기소권만 갖게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문 의원 측은 “그동안 검찰의 수사권 남발로 폐해가 많았다. (법이 통과되면)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형사사법 서비스 질을 더욱 높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이제 발의 단계인데 아직 뭐라고 할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검·경 수사권 문제가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불거진 것을 우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11월 중순 조현오 경찰청장이 주요 언론사 사회부장들과 식사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검찰이 진위 파악에 나섰던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풀이되고 있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검찰과 대립하고 있는 정치권 기류를 틈타 경찰이 숙원 사안인 수사권 독립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다양한 라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의 한 고위 인사는 “청목회 수사를 하고 있는 북부지검의 이창세 지검장이 정권 실세와 연결돼 있다거나 여야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을 편파적으로 했다는 의혹들이 나왔다. 민주당은 검찰 고위 간부들 간 불화설까지 들고 나왔다”면서 “여기서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되면 정치검찰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된다. 총장 지휘 아래 다들 옷을 벗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으로 꼽히는 이창세 북부지검장과 조은석 차장검사 역시 청목회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치권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검찰은 청목회 로비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다른 ‘입법 로비’로 수사를 확대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여기엔 북부지검 외에 동부지검 의정부지검 등이 선봉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의정부지검은 지난 8월 농협중앙회가 각 지역본부에 공문을 보내 ‘농수산식품위원회 위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내라’고 독촉한 것으로 알려진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엔 한나라당 김성수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또한 검찰은 청목회가 모금한 8억 원 중 일부가 올해 초 또 다른 입법 로비에 사용됐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L 의원이 청목회로부터 10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 중이다. 동부지검은 조만간 L 의원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이밖에 검찰은 국회의 다른 상임위원회에 대해서도 입법 로비 등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재 검찰 리스트에 오른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지식경제위원회 세 곳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환노위 소속 상당수 위원들은 지난해 한 노동단체로부터 총 3억 원가량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몇몇 문방위 위원들이 통신사들로부터 상시 로비를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확인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지경위 위원들은 한 공기업 자회사의 분리 및 민영화를 저지해달라는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 반발을 감안해 최대한 신중하게 내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사실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이러한 검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에선 ‘검찰과의 일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다른 상임위까지 수사한다면 그야말로 정치권과 진검승부를 벌이겠다는 것”이라면서 “당의 존폐가 걸린 문젠데 김준규 총장 탄핵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에 대응하는 정치권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수사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은 얼마 전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2009년 국회의원 고액 후원금 리스트 중 불법성이 의심되는 명단을 건네받고, 정밀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한나라당 47명, 야권 80명 등 총 127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