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억셉티드>의 한 장면. |
얼마 전 선우 회원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실렸다. ‘여자 학벌이 너무 좋으면 남자들은 프러포즈를 꺼리나.’ ‘S대 박사과정에 있는데, 나는 남자 학벌을 안 본다. 그래도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남성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존경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집가기 힘들겠다.’ ‘잘난 척만 안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간혹 ‘대화가 잘 될 것 같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여자 학벌이 너무 높으면 부담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학벌을 많이 보는 쪽은 여자들이다. 하지만 여자의 학벌을 따지는 남성들도 제법 있다. 아이들의 두뇌는 모계 유전이 많고, 실질적으로 아이들과 많이 접촉하고 교육을 시키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학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벌 좋은 사람들은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없다나? 그러면서도 결혼을 염두에 뒀을 때 학벌이 자신보다 좋은 여자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이 한국 남자들의 심리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 사건들을 보더라도 우리가 학벌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학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학벌로 상징되는 학력은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효율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선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된다.
하지만 결혼을 한 사람들은 아주 머리가 나쁘거나 학벌이 낮지만 않다면 살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학벌임을 잘 안다. 그러다 보니 결혼에서 학벌을 따지는 경향이 조금씩 줄고 있다.
10년여 전만 해도 결혼상대 선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조건이 학벌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직업을 더 많이 본다. 학벌이 좋다고 사회생활을 잘하거나 경제력이 좋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학벌 좋다고 결혼생활 잘하는 건 아니다
학벌에 대한 인식 변화는 젊은 세대가 그만큼 현실적인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이고,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스스로 능력을 갖추면서 예전처럼 상대의 조건이나 능력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부부인 L 씨, Y 씨(32세)가 좋은 예다. L 씨는 집안이 부유했지만 공부에 뜻이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다가 주유소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이 적성에 맞았는지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한 결과 인근의 주유소보다 훨씬 영업실적이 좋았다.
주유소는 L 씨 인생의 가능성을 찾아준 동시에 천생연분을 만나게 해준 통로가 되기도 했다. 주유소 바로 옆 건물에서 미술학원을 경영하던 지금의 부인을 만난 것이다. 부인은 명문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주변에서는 ‘남자 학벌이 너무 처진다’ ‘여자가 잘나면 남자 기 죽인다’ 같은 말들도 많았지만 두 사람에게 학벌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L 씨는 사업 성공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또래 친구들은 샐러리맨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L 씨는 당당한 사업가가 된 것이다. 학벌로 능력을 판단하려는 사회에 강펀치를 먹인 셈이라고 할까.
우리 사회가 학벌에 유연해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직은 학벌이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에서 보듯이 그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차츰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학교에서 1등 했다고 사회에서도 1등 한다는 법은 없다. 결혼생활에선 더욱 그렇다. 결혼생활엔 머리도 필요하지만 가슴이 우선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