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오른쪽)가 지난 2007년 계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클럽. 연합뉴스 |
경 씨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막대한 자금과 그 경위에 대한 A 씨의 제보가 충격적인 이유는 비단 재계 유명인사 딸의 외화불법유출 및 거액상습도박에 대한 폭로 때문만은 아니다. A 씨는 경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로부터 거금을 전달받았다는 정황과 증거가 있으며 일정 부분 자신이 직접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A 씨는 이전의 개략적인 주장에 대한 상세한 추가설명 외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정연 씨의 허드슨클럽 소유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면계약서’를 제시해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경 씨의 해외도박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일요신문>은 100만 달러를 미국으로 유출할 당시 중간전달자 역할을 했던 인물과의 직접 인터뷰, 그리고 단독으로 입수한 경연희-노정연 간의 이면계약서를 통해, 풀어야 할 의혹 및 허드슨클럽 실소유주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해 봤다.
허드슨클럽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또 수상한 거래가 이뤄진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정연 씨가 허드슨클럽 400호를 계약한 사실은 알려졌지만 이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2006년 7월 16일 경 씨는 왕임과 함께 허드슨클럽 400호를 151만 5000달러에 공동매입했다. 9개월 후인 2007년 4월 경 씨는 400호 소유권을 1달러에 왕임에게 넘겼고, 왕임은 다음날 남편과 공동소유로 소유권을 변경했다. 90만 9000달러의 모기지를 얻어 구입한 고가의 주택을 단돈 1달러에 넘긴 것도 이상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경 씨와 왕임이 계약서의 소유비율 항목에 0%라고 기재한 사실이었다. 소유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기로 짜고 거래가 진행됐을 가능성과 함께 ‘진짜 주인’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특히 경 씨는 400호를 매입한 날 129만 9000달러에 435호를 추가로 단독매입, 애초 계약이 대리계약일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 435호에는 한때 정연 씨 부부가 실제 거주하기도 했는데, 400호를 계약해놓고 435호에 거주한 것과 아파트의 수상한 거래를 두고 경 씨와 정연 씨의 관계에 의혹의 시선이 쏠렸다. 또 경 씨가 잇달아 두 채를 매입한 것과 비상식적인 거래가 이뤄진 것 등을 두고 실소유주가 정연 씨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검찰은 2007년 9월 정연 씨가 400호를 160만 달러에 매입했고, 이 돈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회장으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정연 씨가 ‘계약서 파기’를 주장함으로써 선금·계약금 지급과 잔금 처리 약정 등 구체적인 돈의 흐름은 물론 정연 씨의 실소유 여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 경 씨와 노 씨의 서명이 담긴 허드슨클럽 435호 이면계약서. |
허드슨클럽 계약을 위한 돈의 출처 및 실제 소유주가 아리송한 현 상황에서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유입됐다는 A 씨의 폭로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이는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A 씨의 주장대로 이들 간의 금전거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허드슨클럽 미스터리를 풀 마스터키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A 씨는 경 씨와 허드슨클럽 초기 매입자였던 왕임이 미국 팍스우드 카지노에서 스파우스(spouse)로 얽혀있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다. 따라서 아파트 소유관계로 얽힌 경연희-왕임-노정연을 둘러싼 삼각고리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재 A 씨가 “경 씨의 도박자금의 실체와 유입경로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기자는 A 씨를 상대로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문서를 입수했다. 바로 허드슨클럽 435호 소유권에 대한 노정연-경연희 간의 ‘이면계약서’였다. A 씨는 “두 사람이 작성한 이면계약서 원본을 직접 확인했다. 공증자는 경 씨의 직원인 서 아무개였다”고 증언했다. 이상한 점은 계약서에 명시된 아파트가 정연 씨의 실소유 의혹이 제기됐던 400호가 아니라 경 씨가 단독으로 매입했던 435호라는 사실이다. 이미 400호의 거래과정에서는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으며 수상한 거래가 이뤄진 이유와 실소유주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435호에 대한 이면계약서의 존재는 또 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경 씨가 운영하는 투자회사 문건으로 작성된 이면계약서에는 “2007년 10월 5일, 경연희와 노정연 이 두 사람의 상호동의하에 24th Avenue Port Imperial, Unit #435, West New York, NJ 07093의 소유권이 노정연 앞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 재산은 경연희 명의로 2년 동안 돼있지만, 노정연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될 것이기에 노정연도 똑같은 이 집에 대한 이익 권리를 가질 것입니다. 2008년 10월 5일부로 완전히 노정연 이름의 소유재산이 될 것입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2007년 10월 8일자로 두 사람의 자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경 씨가 150만 달러 정도인 435호를 정연 씨에게 100만 달러 정도 더 얹어서 판 것으로 알고 있다. 435호는 경 씨와 그녀의 모친 한 아무개 씨가 공동소유주로 되어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핵심은 두 사람이 435호에 대한 이면계약을 맺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연 씨가 435호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일정기간 경 씨 앞으로 되어있던 소유권이 정연 씨에게 이전된다는 이면계약서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 씨로부터 435호를 사들인 정연 씨가 자신 소유임을 표면상 감추는 동시에 추후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이면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경 씨가 허드슨클럽으로 인해 상당히 곤란해 한 정황도 포착됐다. A 씨는 “이미 반 년 전 경 씨는 도박행위 및 원화유출, 아파트 문제 등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내가 실직한 며칠 후 찾아와 ‘한국에 있는 아버지 앞으로 협박문서가 날아왔다’고 하소연하면서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경 씨와 정연 씨 사이도 틀어졌다. 계약기간이 지나도록 정연 씨가 명의이전 등 다른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고 그 아파트로 인해서 꾸준히 불편한 일이 생기자 4개월 전 경 씨가 정연 씨에게 ‘빨리 연락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런데 정연 씨가 서울 ○○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더라. 지인을 통해 번호를 알아낸 경 씨는 정연 씨와 ‘집 때문에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타이틀을 가져가든지 집을 가져가든지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통화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분명한 것은 이면계약서가 작성된 경위 및 과정에 대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A 씨의 주장대로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흘러들어온 것이 사실인지, 그 돈이 누구를 통해 어떤 경로를 통해 유입됐으며 경 씨의 도박자금 외 어떤 곳에 사용됐는지 실체가 밝혀진다면 허드슨클럽을 비롯한 각종 의혹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검찰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 폰카로 찍은 박스돈 일부. |
“박스 7개에 만원권 꽉꽉”
12월 1일 노정연 씨의 돈 100만 달러의 중간전달 역할을 한 A 씨의 동생 B 씨를 어렵게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B 씨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다”며 한사코 증언을 거절했지만 현재 경 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A 씨의 설득 끝에 만남에 응했다.
앞서 A 씨는 2009년 1월 팍스우드 카지노 스위트룸 23××호에서 경 씨가 정연 씨에게 ‘돈을 보내라’는 통화를 했으며 다음날 돈을 전달받을 시간과 장소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A 씨는 당시 경 씨가 “한 사흘 정도 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그 돈이 하루에 되네”라고 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100만 달러는 어떻게 경 씨에게 들어간 것일까. 당시 상황에 대해 B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천역에서 몇 분 정도 들어가니 비닐하우스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쓴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내리더니 비닐하우스 옆에 크기가 다른 허름한 박스 7개를 내려놓고 갔다. 어찌나 무거운지 건장한 남성이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였다. 박스를 모처로 옮겨 놓고 풀어보니 모두 만원권 지폐가 꽉꽉 차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핸드폰 사진을 찍어뒀다.”
B 씨는 경 씨로부터 “박스돈을 미국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해 거절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 씨가 보낸 측근 E 씨에게 박스돈을 넘겨줬다는 것이다. B 씨는 “E 씨는 외제차 딜러였는데 경 씨는 그를 ‘삼촌’이라 불렀다. 그 돈이 노정연 씨 돈이라는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됐다. 어쨌든 그 사건 직후부터 뉴스에서 ‘박연차 사건’이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B 씨는 이어 “일반인이 현찰 13억 원을 미국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걸린다. 또 그 돈이 깨끗한 돈이었다면 13억 원을 몽땅 만원짜리로 바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무슨 마피아도 아니고. 어쨌든 E 씨는 직업상 다른 방법이 있었나 보더라.
제보자 A 씨 검찰 수사 촉구
“다 걸고 털어 놓는데 수사 않는 이유 뭐냐”
“경연희 씨는 엄청난 금액을 해외로 빼돌렸고 그 중 100만 달러가 유출되는 과정에는 제가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그녀는 빼돌린 자금 중 상당 금액을 도박으로 탕진했고 확인된 것만 130억 원이 훨씬 넘는다. 돈을 건네받고 전달한 사람, 환치기에 개입한 사람, 도박사실을 증명해주는 카지노 전산자료와 증인, 통화기록 등 빼도박도 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연예인들의 푼돈 해외도박에는 거품을 물고 늘어지면서 지저분한 수법으로 거액을 해외로 빼돌리고 수 백 억대 도박을 일삼은 사람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손놓고 있는 한국 수사기관을 이해할 수 없다.”
애초 A 씨의 폭로는 경 씨의 외화유출 및 상습도박 행각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당시 A 씨는 “경 씨는 2008년 1년 동안만 170일 이상 팍스우드 카지노에 체류했으며 최하 1000만 달러(한화 130억 원) 이상을 탕진했다”며 증거로 환치기에 개입한 이들에 대한 정보는 물론 경 씨가 카지노에 출입한 시간과 숙박기록, 액수 등이 체크된 컴퓨터 전산기록 등을 제공했다.
A씨는 기자와 수십 차례에 걸친 국제전화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다른 카지노에서 탕진한 금액까지 합하면 몇 백억에 달한다. 경 씨의 집안이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말도 안되는 얘기다. 유령회사 수준의 회사를 운영하는 그녀는 한국에서 엄청난 자금을 들여왔다. 그 자금에 대해 검찰과 국세청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철저히 조사하고 법대로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A 씨의 폭로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경 씨가 실제로 카지노에서 거액을 탕진했는지 △막대한 도박자금의 출처가 어디인지 △정연 씨의 돈을 비롯한 자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유입됐는지 △경 씨에게 유입된 자금이 도박자금 외 어디에 쓰였으며 누구를 통해 빼돌려졌는지 △자금 유입으로 엮인 경 씨와 정연 씨의 수상한 관계의 실체는 무엇인지 △허드슨클럽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등 온갖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A 씨는 “경 씨에게 돈이 유입된 과정 및 흐름을 파보면 정연 씨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의혹들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경 씨는 또 한국에서 들여온 돈의 상당부분을 왕임을 통해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왕임은 5억 원을 호가하는 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는 등 몸에 걸친 것만도 10억 원이 넘고 12만 달러가 넘는 벤츠600 스포츠 컨버터블을 타고 다닌다. 문제는 왕 임은 그럴 만한 재정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역시 경 씨에 대한 수사를 통해 검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경 씨와의 문제로 인해 반 년 전 직장에서 해고된 상태다. 그리고 경 씨와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된 초특급 비밀들로 인해 갖은 협박을 당하고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법정에까지 출두하는 등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A 씨는 “경 씨는 두 명의 남자를 시켜 나를 미행했다. 특히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입막음을 하기 위해 나 하나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한국에 있는 어린 딸까지 거론하며 협박을 일삼아 용서할 수가 없다. 경 씨는 내게 회유와 협박을 일삼던 중 ‘정연 씨에게 돈을 더 빼낼 수 있으니 서류(이면계약서)로 협박하자. 한몫 챙겨주겠다’는 제안도 한 적이 있으나 거절했다. 문제의 이면계약서도 그때 건네받은 것”이라고 폭로했다.
현재 A 씨는 경 씨의 상습도박 및 외환거래법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VIP담당자로서 나는 경 씨에게 최선을 다했다. 2000만 원짜리 시계를 비롯해 온갖 고가의 선물을 조달했으며 심지어 회사와 딜을 해서 경 씨가 잃은 금액의 20%를 돌려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VIP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으니까. 하지만 워낙 많은 금액을 탕진한 경 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무리였으며 결국 그녀의 클레임으로 인해 해고됐다. 회사 입장에서 나를 해고한 것은 최고급 손님을 잡아두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치더라도 외환거래법 위반과 불법도박 혐의 등과 관련된 경 씨의 혐의는 한국 검찰 및 국세청 조사로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