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손학규 대표 체제로 장외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당 개혁특위가 파격적 내용의 개혁안을 내놓고 공청회를 가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천정배 개혁특위 위원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당 개혁특위는 지난 10월 말 손학규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참여한 워크숍에서 기구 설치에 합의했고, 천정배 최고위원을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당 개혁특위 위원에는 책임 있는 논의를 위해 중앙당과 원내 등 당무관련 당직자들을 포함시켰고, 대표성을 위해 원내외 인사로 균형을 맞췄다. 각 시도당위원장과 지역위원장들도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기구가 떠맡은 역할이 간단치 않다. 당원 제도 정비, 당원의 참여제도 마련, 공천 및 경선제도 혁신 방안, 사무처 개편 등 당 개혁이 필요한 모든 부분에 대해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당내 모든 경쟁의 룰과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차기 대권과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부뿐만 아니라, 총선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까지 당 개혁특위의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당 개혁특위에서 논의된 내용 중에 파격적인 사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향후 본격적인 도입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12월 23일 충남 대덕에서 열린 개혁공청회에서 제기된 방안들이 그 수위를 가늠케 한다.
이날 공청회에선 민주당의 정체성을 ‘좌클릭’하는 진보강화 주문이 쏟아졌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민주당의 개혁방향과 과제’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민주당 개혁의 방향으로 ‘통 큰 진보’를 제안했다.
김 교수가 제안한 ‘통 큰 진보’란 큰 가치, 큰 단결, 큰 개방, 큰 연합을 말한다. ‘큰 가치’는 평화, 복지와 같은 진보가치의 실현이다. ‘큰 단결’은 작은 차이를 넘어서 진보가치를 중심으로 당내 대동단결하는 것이다. 2012년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범야권연대를 염두에 둔 민주당의 이념적 좌표 수정을 주문한 것이다. ‘큰 개방’은 다양한 제 세력들의 참여, ‘큰 연합’은 진보 가치를 지향하는 제 세력들의 광범위한 연대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민주당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시민들도 민주당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중도냐’라는 관념적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공천제도에 관한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먼저, “당비 내는 당원의 개념에서 관념적으로 탈출할 필요가 있다”면서 “당원이라는 개념을 ‘당비’보다 정당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다양한 ‘자원 활동’으로 전환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캠페인에서 당비보다는 당을 위한 다양한 자원 활동이 더욱 절실하고, 이를 위해 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취지에서 당직은 당원들에게, 공천은 일반 유권자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활동가인 당원들에게 당내 리더십 선출권과 정책결정권을 다양하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 시·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 등 모든 골간조직의 당직 선출시 해당 범위의 ‘전 당원 투표’를 통한 선출을 원칙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룰 협상에서 비주류모임인 쇄신연대 측이 강하게 제기했던 사안이다. 당 개혁특위를 등에 업고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최고위원 등이 연대해 강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큰 것이다.
공천, 즉 공직후보 선출권을 일반유권자들에게 개방하자는 의견도 큰 호응을 얻었다. 조 교수는 “대통령 선거 후보선출은 100% 국민경선으로 치러야 한다”면서 “이는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선거승리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후보는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하되, 당원과 국민참여 부문을 50 대 50 등의 방법으로 적절하게 배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당의 노선에 대한 진보강화, 당직과 공천 과정에 대한 당원·국민참여 확대, 이를 통한 야권 연대 방안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야권연합 또는 통합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MB정권 교체의 제1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민주당의 수권정당 전략과 야권연합을 통한 정권교체는 그 초점을 달리하는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민주당의 정치환경과 지지기반은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면서 “전국적인 전략과 지역별 특성에 따른 전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당의 분권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10·3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진보담론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으나, 이념적 진보 개념 자체를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과도한 이념적 논의는 생활정치와 유리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듯 당개혁특위가 논의하는 수위가 높아지면서 당내에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 개혁을 위한 논의가 당 내분의 새로운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고위당직에 대한 전 당원 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전당대회를 거치며 나타난 부작용들만 더욱 부각되고 민주적인 정당의 모습보다 구태적인 모습들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손학규 대표체제가 최근 장외투쟁을 벌이는 동안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는데, 당개혁특위를 중심으로 내부 문제로 국면이 전환될 경우 지도부 내 갈등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면서 “이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새로운 ‘내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