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모진들의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 실장(왼쪽)과 정진석 정무수석(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
현재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이끌고 있는 청와대 참모진은 류우익 전 실장(2008년 2월~6월)과 정정길 전 실장(2008년 6월~2010년 7월)에 이어 ‘3기’로 분류된다. ‘최측근 3인방’으로 불리던 박재완(국정기획) 박형준(정무) 이동관(홍보) 수석이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새롭게 꾸려진 3기 참모진은 ‘임태희 원톱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상득 의원(SD)과 가까운 임 실장은 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단시일에 흐트러진 조직을 장악했다. 특히 임 실장은 취임 이후 정부부처 고위공무원 및 공기업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인사권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모든 정보가 임 실장을 거쳐 VIP(이 대통령)에게 간다고 보는 게 맞다. 모든 보고 내용 역시 임 실장을 먼저 통한 후에 이 대통령에게 전달된다”고 귀띔했다.
여권 내에서 임 실장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대포폰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 지지도가 꾸준하게 40%대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에 임 실장의 ‘보좌’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데엔 당·청 관계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임 실장은 비록 ‘SD’라인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한나라당 대부분 계파와 관계가 원만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당내 화합’을 부르짖던 임 실장이 취임한 이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화해 기류’가 조성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듯하다. 이 대통령 역시 평소 임 실장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기와 2기 참모진에 비해 의사결정 과정이 빨라졌고, 정책적 역량이 높아진 것도 임 실장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경부터 여권 일각에서 임 실장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인사권이 지나치게 독점돼 있어 자칫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임 실장과 관련 있는 인사들이 고위직에 오른 사례들을 수집하기도 했다. 임 실장 취임 이후 지난해 이뤄진 8·8 및 12·31 두 차례 개각에서 임 실장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사 8명이 장·차관급으로 임명됐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 최원영 보건복지부 차관, 임채민 국무조정실장(장관급), 육동한 총리실 국무차장, 김석민 총리실 사무차장은 임 실장과 행정고시 24회 동기다. 김창경 교육부 2차관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임 실장과 경동고 동문이고,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은 임 실장의 서울대 경영학과 선배로서 평소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임 실장에 대한 구설이 나오자 얼마 전 한나라당에서조차 ‘임태희 견제론’이 확산됐다. 수도권 출신의 한 친이계 의원은 “임 실장이 주도한 8·8 개각에서 총리 및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했다. 그런데 아무런 사과도 없었고, 그 후에도 계속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 외에도 임 실장을 향한 쌓였던 불만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이 대통령의 ‘확전 방지 발언’을 둘러싼 참모진의 서툰 일처리, 구제역 사태에 대한 안일한 초기 대응에 대해 뒤늦게 ‘임태희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대권을 향한 시동을 걸면서 친이계 내부에선 친박과의 관계 재정립이 요구되고 있는데, ‘온건파’에 속하는 임 실장보다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임 실장 입지도 약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일부 참모들도 이러한 기류를 틈타 물밑에서 ‘반 임태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톱체제’로 일컬어지던 3기 참모진의 권력구도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민정라인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역시 보통 공무원 조직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상명하복 체계다. 대통령실장에게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다만 임태희 체제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참모들이 정치권 인사들과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받는 것이 포착됐다”고 털어놨다. 이들 일부 참모들은 이 대통령을 향한 ‘창구’가 임 실장에게로 일원화되면서 ‘소통’이 막혔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호석정치연구소 윤호석 소장은 “정보가 한 곳으로 쏠리면 당연히 전횡이나 부정부패가 생기기 쉽다. 이 대통령이 더 다양한 민심을 듣기 위해서라도 다른 참모들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에 대한 불평은 이내 ‘왕특보 귀환’의 당위성으로 옮겨갔다. 즉, 고용노사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재완 전 수석을 제외한 ‘야인’ 박형준 이동관 전 수석을 청와대 ‘특보’로 임명해 임 실장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주로 청와대 정무 파트 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됐는데, 이 때문에 비서실과 정무라인이 정면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정진석 정무수석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들이 ‘비서실’에서 비롯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양측의 관계는 한때 더욱 악화됐었다고 한다. 윤호석 소장은 “진위 여부를 떠나 권력의 중추 기관인 청와대 내 핵심 참모들이 역정보를 흘려가며 싸운다는 말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서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이 내부 분열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으로서도 모른 척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대통령도 청와대 참모진 간 마찰 조짐이 보이자 ‘형님’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수습책을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박형준 전 수석을 12·31 개각이 이뤄지기 전에 청와대로 불러 다섯 시간 넘게 향후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결국 이 대통령은 박 전 수석을 사회특보, 이 전 수석을 언론특보로 발령 내고 지난 1월 3일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박 전 수석은 정무특보 기용이 유력했으나 기존의 정진석 정무수석과의 업무 중복 문제 및 임 실장 등 참모진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임 실장 측에서는 박형준 전 수석의 ‘컴백’에 대해서 적지 않게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박 전 수석과 임 실장의 업무 스타일은 상당히 비슷하다. 보고서 쓰는 형식도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둘을 아끼는 이유다. 따라서 박 전 수석이 돌아오면 어떻게든 임 실장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6개월 만에 돌아온 왕특보들에게 ‘파격’에 가까우리만큼 애정을 보이고 있다. 박·이 두 특보는 임명장을 받기도 전인 지난 1월 1일과 2일 이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 원고 독회에 참여했다. 안보와 경제를 강조한 이번 이 대통령 신년연설은 사실상 두 사람의 ‘첫 작품’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중론이다. 당시 원고 독회엔 임 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등이 동석했다. 3기 참모진의 ‘핵심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과 함께 왕특보들이 회의에 참여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힘의 균형’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관측이 대부분이다. 지난 3일 임명장을 수여하던 날도 왕특보들의 존재는 특별했다. 이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해당 인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덧붙였는데 두 사람에게만큼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믿음과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장면이다.
청와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임 실장은 왕특보들의 귀환과 관련해 편치 않은 심경을 넌지시 내비쳤다. 지난 1월 3일 선임 비서관들과의 오찬에서 “청와대 라인이 두 개로 비춰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어 임 실장은 “특보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며 박형준 사회특보와 이동관 언론특보의 역할에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서 일부 참모 기능이 왕특보들에게 옮겨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 직후였다.
임 실장은 이 대통령이 왕특보들에게 행정관을 배치하고, 사무실을 청와대 내 위민관(비서동)에 내주려 하자 “다른 특보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 역시 임 실장 의견에 공감했고 결국 박 특보와 이 특보는 행정관 없이 청와대에서 떨어진 창성동에 사무실을 두게 됐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이를 놓고 ‘위민관과 창성동의 결투’가 벌어질 것이라며 미묘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의 여권 고위 관료는 “이 대통령은 기업 시절부터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임 실장과 왕특보들을 데리고 집권 후반기 국정을 운영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