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오 시장과 김 지사는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을 견제할 만큼 당심과 보수 표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 물밑에서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두 주자의 차기 전략, 그 막후를 따라가봤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20일 무상급식과 관련된 입장을 이야기하기 위해 ‘양천학교발전연구회’ 학부모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
그런데 최근 이들 양 주자의 행보를 가속화시킬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표의 본격적인 움직임이다. 박 전 대표는 예비 대선캠프와 다름없는 ‘국가미래연구원’을 2011년을 얼마 앞둔 시점(12월 17일)에 발족시키며 이전과 달라질 행보를 예고했다. 또 새해 들어 강연회 활동을 통해 차기 대선 정책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국가미래연구원에 대해 “면면을 보니 별 것 없을 것 같다”며 “정당의 싱크탱크가 기본이지 각자 만들면 정당은 무엇을 하느냐”고 꼬집었으나, 야권주자인 유 원장의 비판은 박 전 대표를 향한 ‘견제구성’ 발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 본격화가 타 주자들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행보를 가장 주시하고 있을 주자는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다. 오 시장과 김 지사는 당내 유력주자인 박 전 대표와 차기 주자로서 비교하기엔 지지율 차가 매우 큰 상황. 30% 내외의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는 박 전 대표에 비해 오 시장과 김 지사는 각각 5~9% 사이를 기록하고 있어 박 전 대표의 ‘맞수’가 되기엔 한참 역부족이다. 그러나 앞으로 대선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정치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들 두 주자의 입지가 어떻게 달라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앞서의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대통령 등 친이계가 친이 주자를 낙점해 띄우기를 시작한다면 현재의 지지율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열세’인 현 시점에서 이들 두 주자의 속내엔 어떤 전략이 담겨 있을까. 최근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 전략의 밑그림을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가 있다. 오 시장 측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새해 들어서까지 ‘무상급식’ 문제로 야권 시의원들이 주축이 된 서울시의회와 혈투를 벌이다시피 했다. ‘서울시정이 무상급식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 시장은 무상급식 문제를 둘러싼 민주당과의 대결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 결국 지난 6일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이 서울시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내용의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발표했고, 서울시 측은 이에 대해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대결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에는 대권주자로서의 미래 전략이 맞닿아 있다는 게 여야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상급식 100% 지원’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할 만큼 여야 정쟁 대결에서 핵심적 이슈 중 하나다. 무상급식 정책을 실시하느냐 마느냐는 단순한 예산 싸움이 아니라 오 시장과 야권이 주도권 다툼에서 누가 승기를 잡느냐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이번 사태의 승패를 떠나 그 대결 과정 자체만으로도 오 시장은 당내 친이계와 보수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섬으로써 이들의 심정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물론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이미지로 보이는 것에 대해 오 시장 측도 부담감을 갖고 있지만, 여기엔 장기적 비전의 ‘오세훈표 복지정책’을 실현시키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오 시장과 12년 넘게 함께 일해 온 서울시 강철원 정무조정실장은 “언론에서는 오 시장이 무상급식을 무조건 반대하는 듯 비춰져 사실 억울한 점이 많다. 오 시장은 무조건 ‘주는 복지’가 아니라 복지 정책 대상층을 줄여나가는 ‘동기부여식’ 정책을 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희망플러스 통장이나 소상공인 창업지원 정책 등이 그런 예로 볼 수 있다. 무상급식을 아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확대해가야 한다는 주장인데 야권은 무조건적인 전면무상급식에서 한 치 양보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엔 보다 ‘치밀한’ 정치셈법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 시장이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한나라당 내에서의 입지 확보가 중요하다. 당내에 탄탄한 기반이 없는 ‘소장파’ 출신의 그로서는 야권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 입지를 구축하는 우회적 전술이 현명할 수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무상급식은 큰 의미에서 보면 복지 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향후 ‘복지 포퓰리즘’ 공방은 차기 대선구도에서 중요한 여야 대결 이슈가 될 것이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각을 세운 뒤 향후 복지정책 대결에서 야권과의 정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오 시장이 박 전 대표와는 또 다른 방식의 ‘복지 이슈’ 선점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라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박 전 대표와 차기 대선 이슈인 복지 정책에서 경쟁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무상급식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의원 보좌관은 “오 시장이 지난해 이미 서너 차례 박 전 대표와 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지 않았나.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 차기 대권전략의 밑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차기가 아닌 차차기를 염두에 둔 장기적 대권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사회 계층이 다양화되면서 여론을 보수와 진보 양 갈래로 구분하기 어려운 추세. ‘젊은 주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오 시장은 한나라당의 전통 지지층인 50~60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보수표심을 기반으로 중도층의 지지까지 끌어내겠다는 계산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강철원 정무조정실장은 “극우보수층의 지지를 얻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여론분포상으로도 중도층이 가장 넓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중도보수층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지난해 6월 재선에 어렵게 성공하며 대선주자로서 남다른 각오를 했다고 한다. 당시 오 시장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등 외적 이미지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사실상의 패배”라고 당선 소감을 밝힐 만큼 힘겨운 재선 성공 이후 두 번째 임기 동안 보다 탄탄한 대선주자로서의 발판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홍보팀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
▲ 지난해 11월 26일 포격 사태가 벌어진 연평도를 찾은 김문수 경기지사가 폐허가 된 주택가에서 현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대북정책에 대해 김 지사는 매우 강경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도발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식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사격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66.6%,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26.2%로 응답자 상당수가 보수적 여론을 보이기도 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20대의 ‘사격훈련 찬성’ 의견이 50대 이상(68.7%)보다 높은 76.2%로 모든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는 점(리얼미터 12월 20일 조사). 이 결과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부분은 김 지사의 연령대별 지지층이다.
김 지사의 연령대별 지지율은 20대에서 8.0%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30대 5.3%, 40대 7.9%, 50대 이상 7.5% 리얼미터 12월 27일~31일 조사). 오세훈 시장의 경우 20대에서 4.7%에 그쳐 김 지사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의 대북 관점이 기존의 진보성향 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경기불황기를 보내고 있는 20대는 국가관과 안보의식이 진보층과는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50대 이상보다 보수적 국가관을 보이기도 한다. 김 지사의 강경한 대북정책 주장이 이들 젊은 층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강경보수 이미지 강화를 통해 20대층 지지라는 부수이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지지율과는 별개로 당내 김 지사의 위상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의원 보좌관은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 두 인물만 놓고 본다면 김 지사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지지율에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오 시장은 중량감에서 아직 대선주자급으로 모자란 감이 있다는 당내 시각도 있다. 반면 김 지사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와 각을 세워야 하는 이슈에서 파이팅 능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과연 두 인물 중 친이계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주자는 누가 될까. 박근혜 전 대표와 ‘끝까지’ 같이 갈 수 없는 이상, ‘견제용 주자’가 필요한 친이계는 서서히 주자 띄우기를 시작해갈 것이다. 그때까지 이들 두 주자의 레이스도 지금보다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