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신입사원>의 스틸컷. |
취업난 때문에 한 번 회사에 발을 들여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오랜 백수생활을 거친 신입사원들의 절박함은 그래서 더하다. 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회사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신입들이 있다. 외식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7)는 지난 연말에 입사해 2개월째 근무 중이다. 그는 새해가 되면서 순조롭던 직장생활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불안해했다. 현재 자신의 업무를 하던 직원이 퇴사하면서 동시에 입사했는데, 한 달 뒤에 그 전 직원이 다시 출근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정말 어렵게 취업이 돼서 퇴근 무렵 설거지거리가 산처럼 쌓여도 군말 없이 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있는데요. 올해 인사 개편이 되면서 전에 있던 그 직원이 다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것도 승진해서요. 저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말이에요. 그냥 알아서 나가라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던 건지 아무도 귀띔해 주는 직원이 없어요. 전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말이죠. 사실 계속 근무를 하게 돼도 훨씬 어린 상사를 모신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다른 팀원들은 반기는 눈치라 저만 소외될 것만 같아요.”
불안한 마음은 M 씨(28)도 마찬가지다. 입사 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요즘에는 다시 취업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다. 마음 편하게 일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사이에만 네 명이 퇴사했어요. 그중 대다수가 팀장과의 트러블 때문인데요. 정말 제가 봐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힙니다. 선배들이 제 발로 떠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예요. 이제 좀 있으면 제 차례가 될 것 같아서 불안해요. 아직은 제가 팀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강도가 센 편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선배들이 힘들어서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아 나도 곧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심지어 월급도 며칠 밀린 상황이에요. 제 발로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일단 버티고 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교육재단에서 일하는 S 씨(29)는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중이다. 누가 보면 배부른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은 진지하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들도 따로 보거나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다른 데 갈 수 있을 때 가라고 충고한단다. 연봉이 큰 불만이다.
“업무 강도가 세지는 않아요. 어지간하면 7시 전에 퇴근할 수 있어요. 큰 실수나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도 보장되는 것 같습니다. 복지 혜택이나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도 좋은 것 같고요. 하지만 문제가 연봉입니다. 사실 스스로의 몸값은 입사하면서 정해지는 건데 지금 직장에 매여 있으면 다른 좋은 면접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만이 커지고 있어요. 거의 10년차에 다다른 선배의 연봉도 3000만 원대 중반입니다. 이 속도라면 제 앞날이 불 보듯 하지 않겠어요? 자꾸 돈만 생각한다고 뭐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면 다른 신입도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봐요.”
역시 회사에 불만이 많은 L 씨(여·28)의 상황은 S 씨와 반대다. 적잖게 받는데 몸이 너무 힘들다. 지금 같아선 돈을 좀 적게 받더라도 업무강도가 덜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그는 입사 후 3개월이 지나고부터 개인 프로젝트를 맡아서 동분서주해왔다. 혼자 근 한 달을 해외출장도 다녀왔다. 다녀와서도 보고서 분량만 해도 수백 장이 넘는데 4일 만에 처리해내야 했단다.
“입사 1년도 안됐는데 몸이 부서져라 일합니다. 심지어 여자이길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하며 보고서를 작성한다니까요. 도대체 쇼핑한 게 언제인지, 친구들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아직도 한참을 배워야 할 직원한테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해놓고 제대로 못했다고 상사가 노발대발해요. 거의 매일 밤새고 집에도 못 가면서 보고서 준비하는데 만날 깨지기만 합니다. 밤새 야근하다가 응급실에도 몇 번 실려 갔어요. 회사 규모나 연봉에는 불만 없지만 이런 식으로 일하다간 제명에 못 살 것 같아요. 다른 신입들도 이렇게 일하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불안과 불만인 상황이 지속되면 하루하루가 우울해진다. 규모가 작은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25)의 심정이 딱 이렇다. 매일 출근하는 게 너무 싫은데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표정이 저절로 어두워진다.
“6년 만에 처음 신입을 뽑은 회사예요. 입사했더니 저만 20대고 다른 직원들은 거의 다 30~40대 기혼남이더군요. 좋은 놀림감이 회사에 온 거죠. 저를 앞에 두고 듣기 민망한 농담들을 하면서 재미있다고 웃어요. 사람들도 싫은데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아 고역입니다. 평일에는 일에 치이고 주말에는 피곤함 때문에 그대로 뻗어있기 일쑤죠. 생활도 단조롭지만 억지로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괴로워요. 집안 사정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거든요. 매일 기분이 심하게 다운돼서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세가 있다고 하네요.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나아지질 않을 거고 그만둘 수는 없고 매일이 고민입니다.”
처음 맛보는 직장생활의 현실은 그동안 꿈꿨던 이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괴리감에 신입들은 매일매일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다른 터전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직장생활 13년차로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G 씨(41)는 “신입들은 보통 쉬운 일이나 귀찮은 일을 하게 마련인데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며 쉽게 그만두는 모습들을 많이 봐왔다”며 “연봉에만 관심 두고 불만을 키우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먼저 집중하고 그래도 불만이라면 되도록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