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손학규 대표 <오른쪽>정동영 최고위원 |
당 차원의 무상복지 드라이브는 이미 활 시위를 떠난 상태다. 전병헌 정책위의장 등은 “여기서 흔들리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20일 첫 회의를 가진 ‘보편적 복지 재원조달방안 기획단’은 세금 신설이나 급격한 증세 없이 재정구조, 복지, 조세 등 3대 개혁을 통한 재원조달을 골자로 하는 보편적 복지 정책 추진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
기획단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세청장과 건교부 장관을 지낸 이용섭 의원이 단장을 맡고 있다.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의 강봉균 의원,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등을 필두로 김춘진, 김효석, 백재현, 장병완, 전병헌, 조영택, 주승용, 최인기, 홍재형 의원 등 당내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무상복지 정책의 실현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한 관료 출신들을 위원으로 참여시켰다. “문제 제기는 안에서 하라”는 메시지다. 복지 문제를 놓고 당내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기획단은 이달 말까지 보편적 복지정책의 큰 그림과 재원조달의 기본 방안을 마련하고, 2월 중순쯤 외부 용역을 통해 민주당 안을 마련, 의원총회를 통해 최종 당론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증세논쟁’은 계파 간 노선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부자세 신설’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와 함께 ‘복지는 세금이다’라는 토론회까지 열어 “재원 없는 복지대책은 거짓”이라고 규정했다. 순자산 3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상위 0.58% 개인과 1조 원 이상 재벌에게 매년 한 차례 부유세를 거둬 13조 3000억 원을 확보하고, 10% 고소득자에 대해 복지목적세를 부과해 10조 원을 확보하자는 내용이다. 그는 이렇게 20조 원 이상의 재원을 모으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복지정책을 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의 부자세 신설 안은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고 있지만, 복지 이슈의 가장자리에 설 만한 화두를 잡았다는 측면에서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오히려 증세 문제에 부정적인 손학규 대표를 견제하면서 진보주자로서 이미지를 굳힐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있다. 손학규, 정세균, 정동영 ‘빅3’가 증세 문제를 놓고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천정배 최고위원도 21일 복지국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우선 재정지출 및 재정수입 구조를 바꾸고 조세개혁을 통해 사회복지 재원을 만들되 증세가 필요할 경우 사회복지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놔 증세론에 가세했다. 천 최고위원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10% 삭감하고 매년 순증 예산 중 50%를 복지예산으로 쓰는 한편 부자 감세를 폐지하고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비과세 조세감면도 환원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는 증세가 필요하다면 소득세의 10%를 할증해서 더 내는 형태로 사회복지세를 붙이는 방안이 가장 조세정의에 맞는다”고 밝혔다.
결국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의 비주류연대와 ‘점진적 복지론’을 내세운 손학규 대표와의 대립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김효석 의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검증모임은 손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중도성향의 정치노선부터 ‘집토끼뿐만 아니라 산토끼를 잡아야 정권교체를 꿈꿀 수 있다’는 총선 및 대전 전략에서도 손 대표와 유사한 전망을 갖고 있다. 20∼30명 정도의 의원이 참여할 이 모임에 손 대표의 측근인 김부겸, 정장선 의원 등이 포진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여차하면 일전을 앞두고 있는 노선투쟁에서 손 대표를 지지하는 정치모임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후임을 뽑는 오는 5월 원내대표 경선이 계파 간 세대결의 정점을 이룰 수도 있다.
손 대표는 지난 18일 강봉균 이용섭 장병완 의원 등 관료 출신 의원들을 만나 재원마련의 현실적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등을 통해 구체적 복지정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고위 관계자는 “지난 15일 손 대표가 학자들과 만나 무상의료와 무상급식에 대한 토론을 5시간가량 벌였다”며 “학자들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손 대표에게 종종 조언하는 교수들”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가 당 총선전략으로 가다듬고 있는 복지 이슈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