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면을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배가 없으면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오지 중의 오지가 있다. 반월, 박지도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에 색을 입히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섬마을에 퍼진 '보랏빛 향기'에 전 세계의 주목이 쏟아졌다. 당연하게도 조용히 살아왔던 주민들의 일상도 바뀌었다.
2007년 걸어서 읍내에 나가고 싶다는 박지도 어르신의 평생소원이 이뤄졌다. 섬과 섬을 잇는 해상보도교가 생긴 것이다. 병원 진료 한 번, 뽀글뽀글 파마 한 번이 쉽지 않았던 섬마을 주민들에게는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20년. 목교는 보수 공사를 통해 보라색 꼬까옷을 입었다. 이 몽환적인 채색에 이끌려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도 하나둘 돌아왔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섬의 앞날에 퍼플교가 환한 빛을 비춘 것이다.
반월, 박지도의 또 다른 이름은 퍼플섬이다. 이 별칭에서 알 수 있듯 두 섬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모습을 뽐낸다.
과거 두 섬에서는 도라지를 많이 재배했고 지천에 보라색 도라지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이에 힌트를 얻은 주민들은 집의 지붕을 보라색으로 단장하고 보라색 옷을 입고 밭에 나갔다.
보라색 꽃인 아스타 국화와 라벤더도 심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섬에 보랏빛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영롱한 색을 따라 섬을 찾는 여행객들도 섬에 색을 더하고 있다. 반월, 박지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보라색 소품을 꼭 챙겨온다. 보라색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고 동창들과 반월, 박지도를 찾은 정미라 씨. 세 친구는 이번 여행을 위해 보라색 상의를 단체로 구매했다. 단돈 몇천 원의 입장료를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걷는 오늘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아로새긴 보랏빛 추억은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반월, 박지도가 여행지로 탈바꿈하자 주민들의 하루도 바빠졌다. 바닷일과 밭일로만 일상을 채웠던 이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고향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의 강명식 씨는 지난해부터 마을 카페에서 주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다. 메뉴판을 머릿속에 통째로 옮겨놓기 위해 집에서도 나머지 공부를 하는 그. 올겨울에는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도 칠 생각이란다.
무채색으로 흘러가던 그의 일상이 보랏빛 꿈으로 물들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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