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은 13개월에 걸쳐 <일요신문>에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을 연재하며 현대사의 주역들에 대한 그만이 알고 있는 비화를 공개했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80)이 <일요신문>에 연재하던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이라는 코너를 지난 1월 31일(지령 977호)를 끝으로 마무리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등 2~3회로 다뤄진 거인이 있고, 정일형-이태영 부부처럼 한 회에 함께 다뤄진 인물들도 있어 정리하면 모두 55명이었다. 이 코너가 화제가 되자 김 전 위원에게 “000도 한 번 써달라”는 식으로 청탁이 들어오기도 했단다. 연재를 마친 김 전 위원의 소감을 들어봤다.
―원고 작성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타자를 치시는 것으로 아는데?
▲모두 A4용지에 손으로 썼습니다. 원고는 모두 비서가 보관하고 있죠. 타이핑은 내각수반 비서, 고위외교관 등을 경험한 까닭에 잘하는 편입니다. 제가 그래도 피아니스트 아닙니까? 50~60년대는 제가 영타를 치면 속도가 빨라 사람들이 놀라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옛날 타자기는 구하기도 힘들고,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에는 익숙지 않아 아예 손으로 눌러 씁니다. 한자와 영어를 병용하는 습관이 많아 가끔 비서들이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애를 먹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번 연재에서 모두 55명을 다루셨는데 인물 선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솔직히 이 점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일단 연재가 1년여의 기간이라 횟수에 제한이 있고, 또 한 사람을 정하면 최소 30매 분량의 이야기를 엮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지만 한국이나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분, 그리고 영국과 일본의 왕실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지만 그 세계를 알아둘 필요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한두 번 만난 사람이 아니라, 식사도 같이 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는 등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분들을 주로 다뤘습니다.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을 보면 작고하신 분들도 있지만 생존해 왕성히 활동하는 분도 있습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허전량 IOC 위원(중국), 고 민관식 회장과 박세직 회장의 부인 등으로부터는 글을 잘 봤다는 전화를 직접 받았습니다. 외국 언론 등 해외에서는 영어로 된 글을 볼 수 없느냐는 문의가 오기도 했죠. 일부 번역해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됐다, 글을 잘 읽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고요. ‘이런 식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유일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는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면을 할애해준 <일요신문>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몇몇 지인들은 누구누구를 쓰면 어떻겠느냐며 은근히 ‘민원’을 해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석좌교수로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태권도 및 스포츠외교 대학교재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온 바 있는데, 조만간 <일요신문>의 원고들을 잘 정리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입니다.
―첫 질문에서 나왔지만 미처 쓰지 못한 거인들이 참 많습니다. 이 분들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역대 4명의 필리핀 대통령, 나카소네, 다케시다 등 일본 수상, 미국의 아이젠하워, 부시 대통령, 저랑 같이 헬리콥터에 동승하고 가이드를 자처했던 스위스 대통령을 비롯해 세네갈, 독일, 레바논, 터키 등의 국가원수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만 해도 한국전쟁 무렵 제가 <코리아 리퍼블릭>(영자지)에 쓴 글을 유심히 읽으셨고, 이후 제가 각종 보고서를 영어로 작성해 보고한 바 있습니다. 제가 통역을 하는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한 훌륭하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합니다.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이 단행본으로 엮어질 경우 꼭 추가할 생각입니다.
―일선에서 물러나 계시지만 최근 2022년 월드컵 유치전 완패, 정몽준 FIFA 부회장의 낙선, 평창 동계올림픽의 3번째 도전 등 참 많은 일이 있고, 또 과제도 많습니다. 조언을 좀 해주시죠.
▲2022년 월드컵 유치 도전은 일단 그 발상부터 문제였습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지요. 그리고 정몽준 회장이 낙선한 것도 가뜩이나 한국의 스포츠외교가 위축됐는데 안타깝습니다. 개인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 외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A급 국제대회의 유치에는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창의 3번째 도전은 잘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륙순환론이나, 한국의 유치활동 때문이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IOC내 유럽 위원들의 역학관계 때문에 승산이 높다고 봅니다. 참고로 평창의 라이벌인 뮌헨을 이끌고 있는 토마스 바gm IOC 부위원장은 차기 IOC 위원장으로 유력합니다. 유치활동 과정에서 평창과 바흐 부위원장의 부상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뿌리가 태권도이신데요, 태권도는 어떻습니까?
▲일단 아테네,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대만선수의 판정문제가 터져 안타깝습니다. 제가 해외에서 듣는 정보에 의하면 태권도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 않습니다. 특히 유럽 IOC 위원들 사이에서 그렇습니다. 2013년 태권도가 올림픽의 코어(핵심)종목으로 남기 위해서는 나쁜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지난해 한국어를 보조언어로 강등한 것은 아주 불필요한 일이었습니다. IOC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WTF와 국기원은 제가 만들었고, 대한태권도협회도 가장 오랫동안 회장직을 수행했습니다. 홍준표 의원이 이끄는 대한태권도협회는 일사불란하게 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국기원, WTF는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 새해 계획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직도 50명 정도의 IOC 위원에게 수시로 전화연락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도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제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일본 스포츠외교 관계자도 그렇게 다뤄주지 않습니다. 제 이름이 필요하다면 이름을 빌려주고, 누구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소개시키고, 후학들을 위해 강연을 해달라면 강연을 하는 등 원로로서 후학들에게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지만 뒤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자비를 들여 개인홈페이지(김운용닷컴)를 만들어 문서, 사진, 동영상 등 태권도 및 스포츠외교와 관련해 소중히 모아온 자료를 모두 공개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새해에도 명지대 연세대 한체대 중앙대 한국외교연구원 등의 강연이 잡혀 있고, 한 통신사와는 격주로 시사칼럼을 쓰기로 했습니다. 외국에도 수차례 나갔다 와야 하고, 조선대 태권도 교재 제작과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단행본 출간도 있습니다. 어쨌든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