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만들고 말이 삶을 고단하게 하지만 숲은 말이 없다. 조용히 위로를 전할 뿐이다.
치유의 숲 삼나무 군락 '엄부랑 길' 15km의 숲길을 따라 빼곡하게 줄지어 선 나무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을 찾아간다.
한라산 남쪽 시오름과 마을이 연결되는 자리에 위치한 서귀포 치유의 숲. 이곳에는 주중 150명, 주말 300명만이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이 가능하다.
2017년 처음 예약제가 시행되고 인터넷을 사용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이나 우연히 숲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반발도 많았다. 숲을 자랑하고 싶지만 왔던 길로 돌려보내야 하는 직원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그러나 이런 노력 덕분에 숲도 사람도 건강과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두 번 진행되는 '산림 치유 프로그램'의 인기 코스는 해먹 체험이다. 24시간 육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하루 종일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사는 직장인들은 해먹 침대 위에 누워 외부 세상과 단절된 낯선 자유를 체험한다.
방문객 진영규 씨는 "30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고 그때는 정말로 치열했지요.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사람들은 무엇이 좋은지를 알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능력은 필수, 성공은 덤. 치열한 일상을 견뎌내며 쉼을 잊어버린 사람들. 자연의 경건함 앞에 서면 필사적으로 뒤쫓던 가치들의 부질없음을 절로 깨닫게 된다.
놓치고 흘려보낸 소중한 가치를 되찾기 위해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비워내는 방법을 연습한다.
산림 휴양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는 오종석 씨(67)는 5년 째 폐암으로 투병 중이다. 항암치료로 걷는 일도 어려워졌던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숲이 가진 치유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듯. 자연의 순리대로 마음을 비워내고 나니 일상의 행복들이 스며들어 빈자리를 메웠다. 치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품고 숲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숲길을 오른다.
고된 한 주를 보낸, 또 다가올 한 주를 준비하는 우리들. 내일의 걱정과 두려움은 잠시 내려두고 숲이 부르는 바람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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