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1월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푸른한국 주최로 열린 ‘이제는 개헌이다. 청렴공정사회를 위한 권력분산’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최근 들어서는 ‘유신헌법의 잔재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 칼날은 당연히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 개헌론 추진의 핵심에 유신잔재 청산이라는 선명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장관의 박정희 허상 깨기 전략은 개헌론 전투뿐 아니라 내년 총선과 대선후보 경선까지도 끌고 갈 친이계의 주 공격루트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세종시 등의 약발이 모두 떨어진 상황에서 ‘박정희’ 논란정국 조성은 친이계의 마지막 남은 공격 소재로 통한다. 여기에 전통 야당을 자임하는 민주당과의 양동작전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재오 장관의 개헌론 추진 강공에 숨겨진 ‘유신공주 박근혜 죽이기’ 전략을 따라가 봤다.
“언제부터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가졌는지 모르겠다.”
개헌론 의총을 전후해 한나라당 의원들 일부에서 터져 나오는 볼멘소리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지역구 민심을 듣고 온 대부분의 의원들은 ‘민생현안 집중’을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개헌론 의총 첫날 민생고를 부르짖은 의원은 김성태 의원 한 명뿐이었다. 그 외 발언을 신청한 친이계 의원들은 각자 역할 분담을 한 듯 개헌론을 설파했다. 저마다 작은 메모지를 보면서 일사불란하게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주장하는 내용이 거의 중복되지 않고 개헌추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총을 주도면밀하게 이끈 ‘감독’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의총 뒤 당 주변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총연출을 했다”라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현재 이 장관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개헌부대 소속 의원은 약 35명의 친이계 핵심 인사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분 ‘함께 내일로’ 소속의 친이계 의원들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개헌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지는 핵심인사라는 점에서 당연히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개헌은 친박계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억지로 추진하는 것은 계파갈등 심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 커질 뿐이다. 그럼에도 이 장관이 저렇게까지 나서는데 의리상 못 본 체 할 수는 없어서 모임에는 꼭 참석하고 있다. 실제로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차기 총선 공천과 관련한 “눈치 보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 정도로 여당 정치가 후진적이지 않다”라며 부인했지만, 이 장관의 잠재력만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장관이 개헌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파를 결속하고 그 여세를 몰아 당권으로 항로를 변경할 경우 차기 공천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2대에 걸쳐 공천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무후무한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친이계 35명이 똘똘 뭉쳐 ‘될 것 같지도 않은’ 개헌에 목을 매는 것도 이 장관이 그들의 공천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장관의 개헌추진은 처음부터 그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사실상 친이계의 ‘박근혜 죽이기’ 2탄이 시작된 것이라는 정가의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세종시로 정밀타격을 했지만 실패했다. 이번에는 친이계 좌장 이재오 특임장관이 직접 나서고 있다. 개헌론으로 무장하고 다시 1등 후보 저격에 뛰어들었다.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부정적이라 실현 가능성은 적다. 그럼에도 이 장관이 만드는 전선은 안개 속에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표적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그동안 여야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전장이다. 이 장관도 ‘박정희 깨기’에 실패할 경우 그 딸의 처절한 복수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죽은 박정희를 불러내고 있다. 개헌이라는 벽을 박정희라는 장대로 뛰어넘을 심산이다. 개헌정국에서 작심한 듯 유신잔재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함께 내일로’ 모임에서 그는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개헌의 결과물인 유신헌법에 직격탄을 날렸다. 참석의원들도 대부분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은 물론 권력구조 역시 시대에 맞지 않는 만큼 손을 봐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논란 야기로 정면승부를 벌여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후보의 핵심참모로 활약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최근 이 장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헌법 등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다시 박근혜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 장관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 전 대표가 2등 후보였기 때문에 박정희 허상 깨기와 같은 보수층을 자극하는 위험한 승부수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박 전 대표가 막강한 1등 아닌가. 이 장관은 일단 박정희 허상 깨기로 논란을 일으켜 보는 것이다. 다른 수단이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 개헌론을 설파하면서 ‘박정희 재평가’에 대한 논란에 계속 불을 지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박근혜 죽이기 전략’에서 여러모로 효과가 있는 타격 방법이 될 수 있다. 먼저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을 양분해내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20% 내외의 확실한 영남권 고정지지층이 있다. 하지만 수도권의 경우 세종시 정국을 거치면서 그를 지지하는 중도층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물론 이들에게는 개헌론이 주요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이 장관이 개헌정국에서 끊임없이 독재의 폐해와 유신잔재 청산을 외칠 경우 수도권 민심이 들썩거릴 수 있다. 지난 세종시 정국 때 박 전 대표 지지율이 떨어진 뒤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이번 개헌정국에서도 수도권 민심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되면 박 전 대표 지지율은 또 다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시대정신도 이재오 장관이 노리는 박정희 허상 깨기의 핵심전략과 맞닿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개혁성향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개헌정국에서의 박정희 재평가 논란은 결과(근대화의 성공)가 아니라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민주주의 탄압)이 더 강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가 상당히 경계해야 될 이슈 메이킹이다. 이 장관의 박정희 재평가 시도는 개헌뿐 아니라 차기 총선 공천과 대선후보 경선에까지 이르는, 장기적인 박근혜 죽이기의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의 박정희 재평가 전략은 경제가 점점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재성찰과도 맞물리는 대목이다. 수도권의 한 정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작업이 야권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짙다. 최근 독재라는 말까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차기 대선이 민주 대 반민주의 전통적인 여야 대결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제하면서 “지금 시중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일컬어 ‘여자 이명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예산안 강행 처리 등 야당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주의 ‘독재’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박 전 대표도 집권하게 되면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불통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음이자 대권 불가론이 ‘여자 이명박’이라는 유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원칙(근대화)을 내세워 야당과 타협하지 않고 일방주의로 흐를 경우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이 장관이 개헌정국에서 박정희 재평가 작업으로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친이계의 박정희 재평가 공격은 더욱 다양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에 이어, 긴급조치 4호도 위헌이라는 첫 고등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긴급조치로 처벌받은 피해자들의 재심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박정희 정권 때의 인권탄압과 정부의 강제 재산몰수 사건만 해도 몇 건 있다. 이는 당연히 박 전 대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들이다. 현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런 사례들을 공론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장관의 박정희 재평가 공격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방패는 그리 강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표가 이 논리에 반박하려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 일부를 부정하거나, 옹호 또는 최악의 경우 사과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도 몰릴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끊거나 숨기려는 정밀한 전략을 쓰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미니홈피에 올라 있는 옛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그가 어렸을 적 아버지 박 전 대통령과 단란하게 찍었던 것이거나 소소한 일상만을 담고 있다. 물론 미니홈피이기 때문에 사생활 위주의 사진이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표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결될 때 부녀지간이라는 점만 강조할 뿐 정치적으로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 흔적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야당 때 저격수로 활약했던 이재오 장관은 정치의 전략 전술에 능한 마키아벨리스트(국가나 계파의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로 통한다. 그런 그가 ‘개헌론은 집권세력 일부가 부르는 흘러간 옛 노래’라는 지적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개헌론에 박정희 재평가를 슬쩍 집어넣어 계속 독창을 하는 것은, 1등 후보 박근혜 전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악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