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월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책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정치인들이 즐겨 읽는 책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가치관이나 정치의식뿐 아니라 관심사까지 짐작할 수 있을 때가 많다. 과연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과 여야 유력 정치인들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대권레이스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잠룡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구상이 담겨 있는지 이들의 ‘독서 목록’을 통해 한번 들여다봤다.
지난 2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들춰보는 장면이 사진 기자들에게 포착되었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박 전 대표이기에 그가 본회의장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조차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박 전 대표 측 정호성 보좌관은 “본회의장에 가면 여러 의원들을 한꺼번에 만나기 때문에 책이나 자료집 같은 것을 읽어보라고 종종 건네주고는 한다. 그 책도 그날 본회의장에서 받아 들여다보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간혹 미리 책을 준비해 가 본회의 도중 짬이 날 때 틈틈이 읽기도 한다. 정 보좌관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사전에 책을 준비해 가서 읽으실 때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에도 박 전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들어서며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당시 박 전 대표가 가지고 있던 책은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 2007년 출간된 이 책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등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던 글로벌 리더 2500명의 통찰력을 모은 책으로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양대 연구소로부터 경제·경영 분야 ‘최고경영자(CEO) 필독서’로 추천돼 큰 화제를 불러온 바 있다. 출간 한 달 만에 10쇄를 찍을 만큼 인기를 모은 이 책은 정치인들 상당수도 탐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운찬 전 총리 또한 이 책에 관해 “책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경제 권력구도 변화와 새로운 힘의 방정식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평한 바 있다.
박 전 대표가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을 읽던 당시엔 2008년 총선 공천 정국을 앞두고 친이-친박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여서 박 전 대표가 읽고 있던 ‘힘의 이동’이라는 책의 주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주로 자택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서울 삼성동 자택에는 일을 돕는 아주머니와 집사 등 소수 인원만 거주하고 있는 데다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용한 편에 속한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공식 일정이 없을 때면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기 때문에 독서도 집에서 혼자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정호성 보좌관은 “(박 전 대표가) 트위터에 직접 언급해 화제가 되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경우도 보좌진은 읽으신 줄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초 ‘휴가 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팔로어(follower)들의 요청을 받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며 <열국지>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소개한 적도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우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에 관한 책은 여러 권을 구해 섭렵하는 편이라고 한다. 정 보좌관은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선물로 들어오는 책도 워낙 많다”고 설명했다. 한 측근은 “근래 박 전 대표가 많이 읽고 있는 책은 복지 관련 분야를 다룬 책들”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일기와 독서를 통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다’고 밝히고 있다. 평소엔 법구경, 금강경 등 불교경전과 성경, 동양철학 관련 책, 명심보감 등을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본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예전 한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 힘들었던 시절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다는 박 전 대표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깨달음을 준 대목을 노트에 메모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진리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근래 대권주자로서 장기적 비전을 구상할 수 있는 분야의 책들을 읽고 있다고 한다. 김 지사가 최근 읽고 있는 책은 중국 CCTV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대국굴기(大國屈起)>. 제목의 ‘굴기(屈起)’란 ‘산처럼 솟구치며 일어서다’는 뜻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강대국의 성공비결을 다룬 책이다. 중국 CCTV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3년에 걸쳐 9개국을 현장 취재하며 각국의 석학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7년 2월 EBS에서 방영된 뒤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프로그램을 본 뒤 국무회의에서 그 감상을 언급한 바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윤종용 고문과 이재용 사장도 당시 임직원들에게 시청을 권유해 삼성 내에서 이 프로그램의 시청 붐이 일기도 했었다. 또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도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나의 꿈이 실린 영화”라는 극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다방면의 책을 다독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여러 분야의 책을 동시에 많이 읽으시는 편인데 세계 석학들의 책은 빠짐없이 본다”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정 전 대표의 독서 리스트에 올려진 책. 이러한 석학들의 책 외에도 인문·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즐긴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 전 대표가 최근 읽은 책 중의 하나는 이외수의 <아불류시불류(我不流 時不流)>라고. 이 제목은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대가 시간의 주인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서평에는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매일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중심은 오직 나에게 있고 자유자재로 시간을 운용하는 자만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전한다’고 나와 있다. 최근 다시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하고 있는 정 전 대표의 현 상황을 감안하면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평소 정 전 대표는 책뿐 아니라 읽을거리에 대해선 습관적으로 챙긴다고 한다. 한 측근은 “(정 전 대표는) 다독 이상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가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우선 모든 신문을 작은 1단짜리 기사까지 다 보신다. 또 책 선물도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이러한 책들도 일일이 다 챙겨서 어느 정도라도 꼭 읽어 본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책은 교육과 중국 관련 서적들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책으로 이반 일리히가 지은 <학교 없는 사회>를 근래 탐독했다고 한다. 이 책은 학교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가설이 받아들여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를 다룬 것으로 1971년 출판된 이후 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고전이다. 이외에도 손 대표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와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을 근래 독파했다고 한다. 손 대표 측 관계자는 “손 대표는 이동 중에도 차 안에서 책이나 보고서 등 읽을거리를 항상 들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로 상임위를 옮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요즘 복지와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가 의원들이 대체로 기피하는 환노위로 자청해 옮긴 것을 놓고도 대권주자로서의 행보와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차기 대선의 주된 화두인 복지 이슈와 맞물려 노동 현안에 대한 내공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분석.
정 최고위원 측 관계자는 “노동문제와 복지문제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근래 이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으며 공부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 최고위원이 읽은 책 역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김종진 외),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정이환),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등 노동과 복지 문제를 다룬 책들이 주류다. 정 최고위원 측 정진화 비서관은 “(정 최고위원은) 한 달에 10권~15권 이상 책을 읽는 편”이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 한 밑줄이나 형광펜으로 그어가며 수험생처럼 열심히 보신다”고 설명했다.
차 안이나 의원회관 등에는 언제나 책이 손에 닿을 수 있도록 한두 권씩을 가까이 두고 틈나는 대로 읽는다고. “보좌진이 읽는 책도 간혹 물어보시며 빌려 가실 때도 있다”는 정 비서관은 “의원열람실도 자주 이용하시는 편이어서 자주 방문하는 의원 명단을 보면 아마 정 최고위원 이름도 있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국회의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책을 가장 많이 대출해 갔을까. 국회도서관에 2010년 2월 23일부터 2011년 2월 22일까지 일 년간 가장 많이 대출된 상위 10권의 목록을 요청해 집계순위를 건네받았다. 책 목록을 살펴보면 정치인들이 근래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1위를 차지한 책은 <알파독:그들은 어떻게 전 세계 선거판을 장악했는가?>(제임스 하딩). 미국의 정치컨설팅업체 소여밀러그룹이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는지를 다룬 책으로 지난해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출간돼 정치권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소여밀러그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큰 인연이 있는데 소여밀러그룹 출신의 데이비드 모리가 10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정치컨설팅을 담당하며 지난 1997년 대선 승리에 기여한 바 있기도 하다.
2위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수도권 편>(손낙구). 민주노총 대변인과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노동운동가 손낙구 씨가 지은 것으로, 수도권의 모든 시군구 동네별로 주민들의 경제·사회적 특성과 투표 행태와의 상관관계를 자세히 분석한 책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국회의원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대목.
이어 3위는 <트위터:140자로 소통하는 新인터넷 혁명>(조엘 컴 외)으로 정치권에서도 ‘소통’을 화두로 트위터 열풍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 4위에 오른 책은 모두 네 권으로 <화폐전쟁>(쑹훙빙), <문제는 리더다: 정관용이 묻고 남재희, 김종인, 윤여준, 이해찬이 답하다>(윤여준 외), <맨큐의 경제학>(그레고리 맨큐), <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노무현 재단)이었다.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와 <노르딕 모델: 북유럽 복지국가의 꿈과 현실>(메리 힐슨)이 공동 5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