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푸르고 곧게 살고 싶어 ‘소나무’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소병진 선생. 그가 치료해준 선수들이 선물한 사인볼과 축구화가 벽 한 편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태어날 때부터 병을 치료하는 삶이 예정돼있던 것 같다. 내 이름이 병(秉;잡을 병)진(鎭;진압할 진)이다. 병을 진압하고 다스리란 뜻이다. 어느 순간 내 이름의 참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스레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수많은 선수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고질병을 앓고 있던 선수들은 소 선생을 만나 말끔히 나은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근육은 물론 체력 또한 몇 배로 증진된 채 말이다. 소 선생의 신통한 치료는 선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지리산 끝자락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선수들이 점차 늘어났다. 오장은(26·수원), 구자철(22·볼프스부르크), 김재성(27·포항), 정혁(25·인천), 조성환(29·전북), 박건하 올림픽대표팀 코치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소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월 폐막한 아시안컵 A대표팀 엔트리엔 소 선생의 치료를 받은 선수가 무려 8명에 달한다. 소 선생은 “치료를 받고 돌아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때 내 삶의 이유와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짓는다.
29세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치료법을 연구한 그다. 부상당한 선수를 찾아 치료를 자청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야간 훈련이 끝난 오후 7시 이후부터 새벽 2~3시까지 치료에 매달렸다. 그렇게 차츰차츰 치료 노하우를 쌓아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선수들이 뛰는 모습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의 얼굴, 행동에서 장기(臟氣;오장의 기)를 읽을 수 있다. 폐는 사람의 기운, 심장은 정신력, 위는 사고(思考)의 정도, 간은 자유의지, 신장은 힘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에 비춰 보면 선수들의 몸 상태가 파악된다.”
그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더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 일본, 호주, 독일 등 각국을 돌며 치료를 했다. 소 선생의 신통방통한 치료 능력에 놀란 해외 축구 관계자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국내 대학 축구부나 K리그에서도 그를 트레이너로 섭외하려는 러브콜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했다. 연구를 계속 하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축구부원 30명만으론 연구를 할 수 없지 않나. 보다 많은 선수들의 다양한 증상을 치료하고 싶었다.”
소 선생은 아픈 곳을 족집게같이 집어내는 것은 물론 간단하게 질병을 치료해낸다. 특별한 장비를 쓰는 것도 아니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픈 부위를 손으로 마사지한다. 그리고 필요한 부위의 근력을 강화시키는 게 전부. 그는 치료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박건하 올림픽 대표팀 코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박건하 코치가 한창 유명세를 탈 무렵 신경성 장염 때문에 고생을 했다. 치료를 위해 해외에도 나가보고 해볼 만한 건 다 해봤는데도 낫질 않았단다. 결국 날 찾아 함양으로 내려왔고, 말끔히 나아 돌아갔다. 특별히 치료한 건 없었다. 일주일간 계곡에서 함께 신나게 놀았던 게 전부다. 할 때 하고 쉴 땐 쉬어야 하는데 박 코치는 ‘내려놓음’을 모른 채 살았던 거다. 신경성 장염은 결국 스트레스에서 온다. 마음이 평안하면 신경성 질병은 찾아오질 않는다.”
선수마다 치료 방법은 달라진다. 아시안컵 득점왕에 빛나는 구자철 역시 소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자철이를 처음 만났을 때 허벅지 근력이 부족하고 몸의 균형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언덕을 함께 수십 번 오르내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단점을 보완시켰다.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라 치료는 금방 끝났지만 틈날 때마다 함양에 내려와 보강 훈련을 하고 돌아간다.”
치료를 원하는 선수라면 누구든 이곳에 올 수 있단다. 선수들이 소 선생의 거처에 머무는 기간도 자유다. 원하는 기간만큼 치료를 받고 돌아가면 된다. 소 선생은 치료의 대가도 받지 않는다. 치료를 받은 선수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보답을 하면 된다. 그러나 소 선생이 치료에 앞서 선수들에게 딱 한 가지 요구하는 것이 있다. 학부모에게 손수 차린 저녁 한 끼를 부탁한다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보면 선수의 몸 상태가 보인다. 선수가 어떤 반찬을 먼저 먹고 또 주로 먹는지, 식습관을 보면 질병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소나무 선생님과 함께 지낸 선수들에겐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일단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심박수가 낮다는 것. 소 선생이 선수들의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심폐 기능을 강화시키고 그에 맞는 식습관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둘째, 편식을 하지 않는다. 함양에 오면 모든 반찬이 맛있게 느껴지게 된다고. 마지막으로 배드민턴을 잘 치게 된단다. 배드민턴이 저녁 운동의 필수 코스기 때문인데, 이곳을 거친 선수들은 물론이고 그들과 10년 넘게 배드민턴을 쳐 온 소 선생은 프로급 실력을 자랑한다.
“치료로 맺게 된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나다. 그래서 ‘선수들을 이용한다’는 말이 들려올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선수들에게 언제까지고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돈을 목적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난 선생 자격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항상 곧고 푸르게 살고 싶어 ‘소나무’란 예명을 지었다는 소 선생. 그래서일까. 그의 눈동자 속엔 푸른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