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은 투타 겸업 논란 속 양쪽에서 대성…올 시즌 장타력 만개 60홈런 페이스 ‘가성비도 최강’
어쩌다 한 번씩 역할을 바꿔가며 나가는 것도 아니다. 오타니는 지명타자로 풀타임 출장하면서 일주일 간격으로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다. 그러면서 성적도 엄청나게 좋다. 특히 올해는 '타자' 오타니가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오타니는 7월 8일(한국시각)까지 홈런 32개를 터트려 아시아 선수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썼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 부문 전체 1위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출루율+장타율)도 1.064로 전체 3위에 올라 있다.
투수로서도 수준급이다. 13경기에서 67이닝을 던져 4승 1패, 평균자책점 3.49를 기록하고 있다. 피안타율은 0.195, 이닝당 출루 허용(WHIP)은 1.21이다. 탈삼진 87개를 잡아 9이닝 당 탈삼진 11.7개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투수보다 등판 간격이 길어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을 뿐 수치만으로는 다른 팀 에이스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웃돈다. 그야말로 '세상에 없는 완벽한 베이스볼 플레이어'가 나타난 셈이다.
#떡잎부터 남달랐다
오타니는 1994년 7월 5일 일본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 전체가 스포츠에 재능이 많아 오타니도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아버지 도루 씨는 미쓰비시중공업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었다. 20대 중반 어깨 부상으로 일찍 야구를 접었지만 현재 자동차제조사에서 일하면서 사회인 야구 시니어리그 지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 가요코 씨도 미쓰비시중공업 사회인 배드민턴부 선수 출신이다. 전국대회에 지역 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이뿐 아니다. 오타니보다 일곱 살 많은 형 류타 씨는 도요타자동차 사회인 야구단 소속이다. 두 살 많은 누나 유카 씨는 학창시절 배구선수로 활약했다.
오타니의 큰 키(193cm)에도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182cm, 어머니가 170cm, 형이 187cm, 누나가 168cm다. 모두 일본인 평균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이들에게 야구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꿈이었다"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삼남매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유독 놀라운 속도로 체격이 좋아지는 막내를 보면서 "야구선수가 될 만한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
오타니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2년 뒤인 5학년 때는 최고 시속 110km 공을 던지면서 남다른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구부 포수였던 오타니의 초등학교 동창은 일본 방송 인터뷰에서 "그때부터 공이 빨라 내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타니는 한 번도 화내지 않고 '다음엔 잘 받아줘'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야구도 야구지만, 인간적으로도 존경하는 친구였다"고 돌아봤다.
중학교 시절에도 강속구 투수로 지역 내에서 유명세를 탔던 오타니는 하나마키히가시고교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타니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 롤 모델로 삼았던 기쿠치 유세이(시애틀 매리너스)의 모교였기 때문이다.
오타니보다 3년 선배인 기쿠치는 고교 졸업 당시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6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은 끝에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초특급 왼손 유망주 대접을 받았다. 기쿠치가 학교를 떠나자마자 입학하게 된 오타니는 그 모습을 보고 "일본에서 가장 빠른 공(시속 163km)을 던지는 투수가 되겠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 1순위 지명을 받아 기쿠치 선배를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 오타니는 고교 1학년 때 이미 최고 시속 147km를 기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학년 때는 구속이 시속 151km까지 올라 역대 고교 2학년 선수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3학년이던 2012년 여름에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와테 대회 준결승전에서 일본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속 160km를 찍는 데 성공했다.
오타니는 그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야구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일본 대표팀 투수로 참가한 그는 한국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삼진 12개를 잡으면서 2실점 했다. 최고 구속도 시속 155km까지 나왔다. 경기가 한국의 승리로 끝나 패전 투수가 됐지만, 한국 야구팬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투타 겸업' 약속한 니혼햄
오타니는 원래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게 목표였다. 고교 3학년 때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그 꿈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이 때문에 오타니는 2012년 일본 프로야구(NPB)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내 오랜 꿈은 메이저리그 진출이니 부디 날 지명하지 말아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삿포로돔을 홈구장을 쓰는 니혼햄 파이터스가 오타니를 1순위로 지명했다. 구리야마 히데키 니혼햄 감독이 직접 오타니를 만나러 가는 등 열성적인 영입 작전도 펼쳤다.
구리야마 감독은 이때 메이저리그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오타니에게 "투수와 타자에서 모두 일류 선수로 만들어 주고 싶다"며 '이도류'(두 개의 칼) 계획을 언급했다. 투수와 타자 중 어느 쪽도 포기하기 어려웠던 오타니가 마음을 돌린 결정적 계기였다. 실제로 오타니는 훗날 "나는 고교 시절 늘 투수보다 타자에 더 자신 있었다. 항상 '왜 나는 투수로서의 평가가 더 높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던 참이었다"고 털어놨다. 오타니에게 영입 제안을 한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타자가 아닌 '투수 오타니'에게만 관심을 집중했다.
결국 오타니는 투타 겸업을 약속받고 니혼햄 유니폼을 입었다. 니혼햄은 오타니에게 계약금 1억 엔, 연봉 1500만 엔, 옵션 5000만 엔(일본 언론 추정치)이라는 거액을 안겼다. 또 니혼햄 에이스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승승장구하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등번호 11번을 선물했다.
정작 프로 첫 시즌인 2013년엔 부상이 겹쳐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 투수로 13경기에 등판해 3승(평균자책점 4.23)을 올리는 데 그쳤고, 타석에선 타율 0.238에 홈런 3개를 때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부터 진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오타니는 투수로서 11승 4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했고, 타자로는 타율 0.274, 홈런 10개를 쳤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10승과 10홈런을 동시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이때부터 오타니의 투타 겸업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됐다. 야구 기술이 발전한 현대 야구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에이스가 4번 타자로도 나서는 고교야구와 선수 각자가 자신의 포지션에 전문화된 프로야구는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일본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은 "프로야구는 동네 야구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반대하는 대부분 야구인은 오타니가 "타자보다 투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설적인 포수 출신인 노무라 가쓰야 전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을 수 있다. 내가 감독이라면 투수로 기용할 거다. 타자로는 언제든 전향할 수 있지만, 시속 160km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타니에게 등번호를 물려준 다르빗슈조차 "투타 겸업이 흥미로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계속 한다면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아시아 타자 중 가장 위대한 역사를 남긴 스즈키 이치로만 유일하게 "오타니가 타자를 했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타격을 할 줄 아는 선수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점점 더 좋은 성적을 내자 야구계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타니는 2015년 일본 프로야구 다승(15승), 승률(0.750), 평균자책점(2.24)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투수 3관왕에 올랐다. 타자로서는 70경기에 나가 타율 0.202, 홈런 5개, 17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투수로 워낙 뛰어난 성적을 냈기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해 말 일본에서 열린 프리미어12에서는 한국과의 개막전과 준결승전에 모두 선발 등판해 한국 타자들을 괴롭혔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더 진화했다. 투수로 10승 4패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고, 타자로 타율 0.322, 안타 104개, 홈런 22개, 67타점을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10승-100안타-20홈런 기록을 세우면서 니혼햄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 투수와 타자로 각각 베스트9에 뽑히면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2017년은 발목과 대퇴근 부상 여파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이도류' 오타니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달라졌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전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은 "선수 자신이 투타 겸업을 꼭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싹을 자를 필요가 있겠는가. 오타니의 선택에 맡기고, 본인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고 했다. 오타니 이전에 아시아 타자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던 마쓰이 히데키도 "스스로 가능하다고 느낀다면, 양쪽 다 계속하는 게 낫다"고 지지했다.
#오타니는 '슈퍼 히어로'다
니혼햄에서 5시즌을 뛰고 해외 진출 가능 자격을 얻은 오타니는 2017년 12월 마침내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이뤘다. 포스팅시스템에 입찰한 7개 팀 가운데 아메리칸리그 소속팀인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7개 구단과 모두 면담했지만, 이번에도 투타 겸업을 약속한 에인절스가 그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아메리칸리그는 내셔널리그와 달리 지명타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포지션 플레이어가 아닌 오타니도 지명타자로 타석에 설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입 전쟁이 치열했던 데 비해 큰돈은 받지 못했다. 25세 미만 해외 선수에게 적용되는 해외 선수 계약 규정에 따라 첫 세 시즌은 최저 연봉 수준의 금액을 받고, 이후 세 시즌은 연봉 조정을 통해 새로운 액수를 받는 형태로 계약해야 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처음엔 고전했다. 첫 3시즌 동안 투수와 타자로 동시에 활약한 기간은 2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첫 해인 2018년 6월 초까지는 타석에서 맹타를 휘두르면서 선발 투수로도 9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은 뒤로는 타자로만 경기에 나섰다. 심지어 첫 시즌 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까지 받았다. 2019년 5월 타자로 복귀해 타율 0.286, 홈런 18개, 62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코로나19로 인해 7월 개막한 지난 시즌에는 초반 두 경기에 투수로 나섰다가 다시 팔을 다쳐 8월 초부터 타자에 전념했다. 부상이 끊이지 않는 오타니를 향해 다시 "투수 쪽에 전념하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이유다.
그러나 오타니는 꿈을 놓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연봉 조정을 통해 2년 850만 달러 계약에 합의하면서 다시 한 번 "투타 겸업을 재개하겠다"고 구단을 설득했다. 구단도 재활 기간 오타니의 훈련 자세와 경과를 보고 "이런 선수는 흔치 않다. 다시 모든 기회를 주겠다"고 동의했다.
그 합의의 결과는 앞서 언급한 올 시즌 성적표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오타니는 투타에서 나란히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 어떤 선수도 남기지 못한 발자취를 새기고 있다. 특히 장타력은 가공할 수준이라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한 시즌 홈런 60개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심지어 오타니의 올해 연봉은 300만 달러, 내년 연봉은 500만 달러다. 미국 유력 경제잡지 '포브스'가 최근호에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계약'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타자로만' 오타니와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는 동료 마이크 트라웃이 올해 3712만 달러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현지에서도 오타니를 향해 '역대급'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올 시즌 전반기 아메리칸리그 최고 선수로 오타니를 꼽으면서 "사실 오타니는 야구선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야구'를 사용하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라고 썼다. 오타니는 21세기의 야구장에 초현실적인 역사를 쓰고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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