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기업의 잇단 M&A, 대기업집단의 핵분열, 사업구조조정 가속화 등이 지각변동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다.
판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는 지난 2000년 그룹 분리 이후 재계 순위가 수직상승한 대표적인 그룹이다.
지난 2004년 초 현대차는 2003년 그룹 매출액이 56조4천억원을 달성해 삼성(1백37조원)과 LG(1백12조원)에 이어 재계 3위에 올랐다고 발표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3위일 것이라고 예상되던 SK그룹을 2조원 차이로 제친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의 2004년도 실적은 재계 2위인 LG그룹을 제칠 것으로 보여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월 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04년 3분기까지의 국내 10대그룹 누적 매출액을 보면 삼성그룹이 50조3천9백억원의 매출에, 순익 4조6천억원을 기록했고, LG그룹이 31조7천억원의 매출에, 순익 1조7천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34조8천억원의 매출에, 순익 2조3천억원을 기록했고, SK그룹은 21조원의 매출에 1조7천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상장기업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현대차그룹이 매출이나 순익 규모에서 LG그룹을 따돌리고 2위에 오른 것. 이는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그룹 순위를 매기는 공정거래위 자료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회사수 및 자산총액 순위(공기업 포함)에서 1위는 한전(94조원)이었고, 2위가 삼성(91조원)이었다. LG는 61조원으로 3위, 현대차는 52조원으로 4위, SK는 47조원으로 5위였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LG는 GS그룹의 LG건설(자산규모 2조9천억원)과 LG칼텍스정유(자산규모 7조9천억원) 등 11개 계열사가 빠져나가는 등 자산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GS그룹은 오는 4월 공정거래위의 순위 발표 이전에 완전히 LG그룹과 지분관계를 정리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LG에서 빠져나간 굵직한 계열사만 따져도 자산규모가 12조원 이상 줄어드는 게 확실시되고 있다.
반면 2003년 4위였던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4년 자산규모 2조4천억원 규모의 한보철강을 인수한 데 이어 자산규모 9조원대(3분기)의 현대캐피탈이 지난 10월1일 GE로부터 1조원대의 외자를 유치해 합작법인을 공식출범시키는 등 몸집 불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때문에 공기업을 뺀 자산규모 재계 순위에서도 현대차가 삼성에 이어 2위 등극이 확실시되고 있다. 현대그룹이 2세 체제로 넘어가면서 범 현대가의 계열 그룹들이 10위권대에 포진해 있다 현대차그룹이 4년 만에 재계 ‘넘버 2’로 복귀하게 되는 것.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그룹은 두산그룹이다.
술과 필름, 의류 등 수입소비재 회사로만 여겨졌던 두산그룹이 90년대말 구조조정을 거친 뒤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해가면 재계 순위가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있는 점이다. 몇 년 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해 10위권을 바짝 추격하던 두산이 지난 2004년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또 한번 도약을 꿈꾸게 됐다.
대우종합기계의 자산규모는 2조5천억원대로 두산그룹의 자산규모 9조1천억원대의 25% 정도에 해당한다. 증권가에선 두산그룹이 대우종기의 인수에 성공하면 매출 규모도 6조6천억원대에서 8조9천억원대로 뛸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규모 12조원대면 현대중공업그룹(14조원)과 금호아시아나그룹(10조원)의 중간쯤 된다.
두산그룹은 내친김에 오는 2008년까지 21조원의 매출액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펼쳐보이고 있다. 21조원의 매출 규모라면 SK그룹의 지난 2004년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에 해당되고 재계 5위권인 한진그룹의 매출액 10조원대의 두 배에 해당한다. 두산그룹이 대우종기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그룹 매출의 80% 이상이 중공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기업이 재계 상위 5위권 안에 오르는 결과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롯데그룹이다. 자산규모 6위인 롯데그룹이 5위인 한진그룹을 추월하느냐 여부이다. 2003년까지 한진그룹의 자산규모는 25조원으로 24조원인 롯데보다 한순위 더 높았다. 하지만 롯데가 지난 2004년 대형 인수합병을 성공시켜 이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는 KP케미칼 인수 등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 자산 규모가 26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여 자산규모에서 한진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선 롯데가 매출 규모에서도 17조원대를 넘을 것으로 보여 한진그룹을 제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롯데나 두산의 경우 2005년 동아시아 금융시장 최대의 인수합병 매물로 꼽히는 진로 인수전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어 진로 인수합병 결과에 따라 또 한번 재계 순위판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잠룡’으로 불리는 GS그룹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일지도 2005년 재계 판도의 변수다. GS그룹은 아직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아 별도의 살림을 꾸리고 있음에도 공정거래위 순위나 증권거래소 등의 통계에 아직 잡히지 않고 있지만 주요 계열사의 자산총액만 놓고 보면 LG칼텍스 7조9천억원, LG건설 2조9천억원, LG유통 1조5천억원, LG파워 7천6백억원, 한무개발 7천6백억원, LG홈쇼핑의 4천억원 등 14조원대에 달한다.
이는 재계 9위권인 현대중공업그룹(자산규모 14조2천억원대)을 누르고 10위권 이내에 데뷔를 할 가능성이 크다. 정유, 유통업 등을 통해 부동산과 현금 재벌로 꼽히는 GS그룹이 공격 경영을 펼치느냐의 여부에 따라 5위권 내 재계 순위 싸움도 향후 5년간 가장 치열할 전망이다.
2위 자리를 굳힌 현대차그룹이 새롭게 진출한 철강 분야에서 철강 경기 활황세와 신차 효과를 타고 요지부동 1위인 삼성그룹을 얼마나 따라 붙느냐, 롯데와 두산 등 중위권 재벌이 인수합병을 통해 중화학-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하느냐가 2005년 재계판도의 핵심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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