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얼굴도 몰라, 교육의 질 하락, 등록금은 그대로…취업 문턱만 더 높고 좁아져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20학번 정승아 씨(21)는 “캠퍼스 구조도 자세히 모른다. 가끔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직 고등학생인데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안정세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던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대학의 2학기 대면 수업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2020년에 입학한 20학번의 경우 제대로 된 대면 수업 없이 대학 생활의 전체 혹은 절반 이상을 보냈다. 수업은 물론이고 조별과제와 시험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돼 같은 과 동기의 얼굴 한 번 보지 못 한 신입생들이 다수다. 이른바 코로나 학번(20·21학번)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7월 27일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소중한 대학 생활이 몽땅 지워진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캠퍼스 낭만 기대했는데…
대면 수업에 대한 선호도는 학년별로 그 격차가 뚜렷하다. 교육부가 전국 대학생 9만 48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 대면활동 확대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학년의 경우 비대면 수업을 선호했으나 학년이 낮아질수록 대면 수업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그 이유로는 ‘사회적 교류 회복’과 ‘다양한 경험을 위한 통로 필요’가 1, 2위를 차지했다. 입학 이후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코로나 학번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코로나 학번들이 느끼는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앞서의 정 씨는 “동아리, 엠티, 체육대회, 대학 축제 등 대학에 오면 꼭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고 캠퍼스 생활에 대한 낭만도 기대했는데 하나도 해본 것이 없다. 지난해에는 1년 내내 비대면 수업을 해서 알바와 집만 오갔다. 대학 생활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한 채 이제 ‘헌내기’가 돼 허무하다. 나의 스무살이 눈물과 우울로 얼룩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이서연 씨(22)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같은 과 동기다. 이 씨는 “처음에는 비대면 수업이 마냥 편하고 좋다 생각했는데 21학번 새내기가 들어온다고 하니 ‘1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새내기들이 대학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다고 들떠있는 21학번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진 이후다. 20학번과 21학번 모두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후배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전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다. 교육부가 6월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대학의 93%가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혼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교양수업에 국한돼 있다. 실제로 고려대학교의 경우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라 학부 50명 미만, 대학원 20명 미만에 한해서 대면수업이 가능하며 최종 결정권한은 담당교원에게 있다. 이에 대해 한 고려대학교 재학생은 “이번 학기에 전공 수업은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으니 과 동기나 선후배와의 소통도 거의 없었고 학교에 대한 소속감도 느끼지 못해 공부 할 의욕도 잃었다”고 말했다.
동기 혹은 선후배 간 교류가 없다보니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1학번 김주리 씨(20)는 “사이버 강의에 늦게 접속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결석처리가 됐다. 지각이 쌓이면 결석이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고등학생 때는 지각은 지각이고 결석은 결석이었다. 그런데 19학번 선배와 친한 동기는 ‘선배가 미리 말을 해줘서 알고 있었다’고 해서 서운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비슷한 고민이 올라왔다. 수업 출석이 의무인지 몰랐던 한 신입생이 강의에는 출석하지 않고 시험만 치른 뒤 “F를 받아 억울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다. ‘황당하다’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출결 비율이 5%라 쓰여 있어 시험만 잘 볼 생각이었다”는 글쓴이의 말에 ‘동기나 선후배와의 정보교류가 전혀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안타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과거에는 선후배와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던 정보들이 현재는 일부 학생들에게만 전달이 되는 구조로 변한 것이다.
#실습비 100만 원 내고 방에서 톱질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하락한 교육의 질이다. 학생들은 “대면 수업과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도 등록금은 꼬박꼬박 내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과의 한 재학생은 “과 특성상 실기가 많은데 실습실 사용을 못 하는 것이 가장 문제다. 1학기에는 공구 다루는 법을 비대면으로 배워 집에서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했다. 조소과에 다니는 친구는 자취방에서 페인트 칠을 해서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대학은 등록금을 동결하는 모양새다. 올해 3월 열린 ‘2021년 코로나 대학생 피해사례 증언대회’에서 홍익대 미술대학 학생 김예은 씨(25)는 “학교 실기실이 열리지 않아 학생들이 사비로 작업실을 구하고, 집에서 아교 작업을 하고 석고를 뜨고 있다. 특히 원룸이나 고시원에 사는 학생들은 환기 문제, 작업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지금은 실기실과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니 이런 비용이라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는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술대학 학생들의 경우 실기비 명목으로 타 학과보다 100만 원가량 등록금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
한편, 취업 문턱은 더욱 높고 좁아졌다. 코로나19로 발목이 묶인 대학교 3~4학년들이 일찌감치 취업 준비를 시작한 까닭이다. 3학년 취준생 최연주 씨(24)는 “코로나19로 예정되어 있던 교환학생이 취소되면서 이르게 취업을 준비하게 됐다. 주변에도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여름방학 동안 공모전 2곳에 참가할 계획이다. 대외활동도 병행하려 했으나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모두 취소됐다. 그는 “각 공모전 팀원들과 매일 저녁 8시와 11시에 줌(온라인) 회의를 한다. 최종적으로는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데, 5명 이상 모이면 안 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어 그것이 가장 걱정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고 한다”면서도 “8월이나 9월에 20대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언제까지고 비대면 수업과 온라인 만남이 지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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