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지진과 원전 방사능 유출로 흔들리는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상대적인 수혜를 볼 업종으로 보유주식을 재조정하라고 충고한다. 사진은 지난 18일의 주가 그래프.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일단 시장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지금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기에는 너무 불안하다. 일본 지진 발생 직후 반짝 순매수하던 외국인은 이후 줄곧 주식 사고팔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문형랩 중심으로 유입됐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도 지진 발생 직후 이탈 조짐이 뚜렷하다. 연초 코스피지수 2100에서 상승세가 꺾인 증시가 1900을 바닥으로 버텨주자, 이 기회에 차익 실현을 하자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반면 새롭게 들어오는 자금은 연기금 등 정부 관련 자금 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주식시장에서 연기금 자금은 시장을 끌어올리는 역할보다는 낙폭을 막는 방어적 역할을 하는 게 보통이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시는 실현된 악재보다 불확실성을 더욱 싫어한다. 특히 일본 원전 사고 소식이 심리적인 부담을 크게 주는 이유는 이 정도의 원전 사고를 아직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은 급락 이후의 반등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시점이다. 사고 추이에 좀 더 주목해 보면서 나머지 변수들을 챙겨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그럼 주식을 이미 보유한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은 일단 일본 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상대적인 수혜를 볼 업종으로 보유 주식을 재조정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본 정유공장과 화학공장의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면, 우리나라 정유업체와 화학업체가 세계시장 공급에서 일본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해야 한다. 정유 및 화학 공장은 하루아침에 새로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우리나라 공장들의 가동률이 올라가고, 매출이 늘어나고, 이익은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공장은 제한된 생산능력이 있다. 가동률 이상을 생산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값을 더 올리면 되지만, 값을 더 올릴 경우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너무 값이 비싸면 사는 쪽에서도 더욱 아끼게 되고 자연스레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김영일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화학제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 증가가 어느 정도까지는 통하지만, 한계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수요가 줄어들어 매출과 이익증가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올랐다고 판단되면 이익을 실현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상반기까지는 우리나라 정유·화학업체의 수혜가 계속될 것인 만큼 2분기 실적 윤곽이 잡히는 5월 말이나 6월 초쯤이 이들 업종의 차익실현 여부를 판단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럼 다른 업종은 어떨까. 일단 화학과 같은 논리는 철강에서도 통한다. 하지만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들 업종은 주요 부품을 일본에서 공급받는다. 일본에서 제대로 부품을 만들지 못하면 국내 기업도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반짝 수혜는 있겠지만 일본 사태가 장기화되면 동반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외국인이나 개인은 주가가 반등할 조짐만 보이면 자동차와 전기전자 업종을 내다파는 것이다.
일본의 생필품 부족현상이 우리나라 유통업체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있지만 그 규모가 미미하다. 물론 방사능 공포의 정도에 따라 일본 내 생산제품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아직은 ‘가능성’ 수준이다.
지금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라면 시장에서 아예 눈을 떼는 게 정답일까. 앞으로도 계속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언제고 주식투자를 재개하려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일본과 중동이다.
일본은 일단 원전 사태가 가닥을 잡아야 한다. 일본 경제가 정상으로의 복귀를 하려면 방사능 공포를 떨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고가 난 원전이 없어도 일본의 전력 공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상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사고가 난 원전의 전력 생산능력은 일본 전체의 8.1%, 생산량은 전체의 12.1%다. 사고가 안 난 나머지 원전과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최대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충분히 만회할 만한 규모”라고 분석했다.
원전 다음은 일본의 복구과정이다. 어떤 계획으로 얼마만큼의 자금이 소요될지 파악이 되면 이와 관련한 경제지표들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일단 예측이 가능하면 수혜주와 피해주,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분석되면서 투자지표를 얻을 수 있다.
증시의 또 다른 큰 변수인 중동 사태는 리비아보다 바레인을 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 세계 원유공급의 2%만을 차지하는 리비아는 정치적 이슈에 불과할 수 있지만, 바레인의 경우 지배층은 수니파, 피지배층은 시아파로 구성돼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국가와 이란 이라크 등 시아파 국가들의 갈등이 분출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수니파 국가는 왕정, 시아파국가는 공화정이란 점과 수니파 국가는 친 서방, 시아파 국가는 반 서방이란 점도 미묘하다. 이들 6개국은 전 세계 원유공급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조그만 분쟁만 발생하더라도 3차 오일쇼크의 발원이 될 수 있다. 오태동 토러스증권 연구원은 “종파 간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향후 악재의 뇌관은 바레인”이라고 말했다.
유럽 재정문제와 중국 긴축문제도 내다봐야 한다. 유럽은 24~25일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 회원국에 대한 지원방안이 확정된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긴축정책이 물가상승률을 억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다만 유럽과 중국의 문제는 당사국들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통제되는 이슈라는 점에서 큰 악재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과 중동사태의 추이에 따라 유럽과 중국 모두 통제력을 시험 받게 된다는 점에서 꽤 복잡한 계산을 해볼 필요는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