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오찬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두고 ‘빅딜’이 오갔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런데 박 전 대표가 동생의 로비연루 의혹에 대해 “본인이 확실히 밝혔으니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로 세간의 의혹을 단칼에 종결시키자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여당에서조차 “자신감을 넘어 오만으로 비쳐진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마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이 의혹이 커질 즈음에 단박에 부정하는 기민한 대응을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지난 6월 3일 청와대 회동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빅딜’이 오갔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퇴임 뒤 안전판’을 확보해야 하는 이 대통령과 대선 길목의 최대 걸림돌인 박 전 대표의 ‘가족문제’로 양측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삼화저축은행 로비사건에 얽힌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의 ‘수상한 밀월’ 막후를 들춰봤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친이계의 네거티브 공세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패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반면교사랄까. ‘재수’에 나서는 박 전 대표 측은 이번에야말로 여야의 네거티브 공세를 적극적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믿는다. 친박계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대선후보 경선은 박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공세가 집중되었다. 이 문제는 대부분 의혹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이번 대선 정국에서는 지만·근령(서영) 씨를 둘러싼 가족문제가 집중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동안 꾸준히 준비했고 관리해왔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직접 동생들과 만나며 주의를 주고 있다. 앞으로 크게 문제가 될 소지는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친박 측의 주장과는 달리 박 전 대표가 동생들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족 갈등으로 터진 문제가 그의 대선가도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근령 씨는 14세 연하 신동욱 씨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와 갈등을 빚었고, 신 씨는 이런 과정에서 지만 씨와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벌이기까지 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대선에 나와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 가운데 집안문제를 들 수 있다. 근령 씨 남편 신동욱 씨가 지만 씨와 몇 년째 소송을 하며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다. 만약 신 씨가 대선 정국에서 ‘박정희 가문’의 내밀한 이야기를 폭로하는 ‘빅 마우스’가 될 경우 박 전 대표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집안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맏이의 이미지를 심어준다면 대선 정국에서도 큰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령-신동욱 부부 문제가 언젠가 터질 화약고라면 지만 씨 부분은 꾸준하게 관리를 해도 여전히 문제가 잠복해 있는 휴화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만 씨 문제는 그의 ‘복잡한 과거사’ 때문에 더욱 민감하고 다루기도 힘들다.
지만 씨와 친분이 있는 한 전직 의원은 이에 대해 “지만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 충격의 후유증으로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투약 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된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표 가족은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박 전 대표는 자존심 때문에 면회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근령 씨는 술도 잘 마시고 성격이 활달해 지만 씨를 자주 면회 갔다고 한다. 지만 씨가 마지막으로 출소한 뒤 친박계 최측근들 사이에서 ‘지만 씨를 그냥 둬서는 안 되고 친구도 소개시켜주고 해서 사회와 어울리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박 전 대표 측근 가운데 한 명이 ‘58년 개띠 친구 몇 명을 소개시켜줘 무조건 같이 지내라’고 했다. 외로움도 달래 주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렇게 해서 지만 씨는 2004년 12월에 16세 연하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도 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도 지만 씨를 소개받아 친구가 되었다. 박 전 대표 측근들은 ‘지만 씨가 더 이상 구렁텅이로 들어가지 않게 관리를 하는 것이 박 전 대표의 대권 도전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해 당시 자신들의 지인들을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지금에는 그 친구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만 씨는 처음 신 회장을 만날 때 마약을 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한 ‘순수한 친구’ 내지는 ‘동반자’로 소개받았기 때문에 그가 최근 “(신삼길 회장에 대해)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던 해명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신 회장이 골프를 좋아해 저축은행 최초로 프로골프팀을 만들 정도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주로 골프를 통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토대로 친박계에서는 “지만 씨도 당시 EG(2000년 코스닥 상장)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에 신 회장과는 처음부터 말 그대로 친한 친구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 회장이 지난 2008년 금괴 불법유통 사건으로 재판에 서는 등 경영 상 압박을 받았을 때부터 지만 씨와의 ‘친구’ 관계에 변화가 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신 회장이 ‘금괴 변칙유통을 통한 부당환급’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지난 1월 초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 친박계를 통한 구명로비의 시발점으로 지만 씨에게 접근해서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이 정치권에 조달할 비자금을 무리하게 조성하다가 저축은행 경영부실을 더 악화시켜 결국 몰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지만 씨의 삼화저축은행 로비연루 의혹에 대해 “본인이 확실히 밝혔으니 그걸로 끝난 거죠”라며 세간의 의혹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지만 씨가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신 회장과의 로비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해명을 100%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박 전 대표의 ‘한마디 대응’에 대해 여당 내에서조차 시니컬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평소 박 전 대표의 간결한 단답형 화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이번과 같은 권력형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게 해명을 했어야 했다는 것.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한 시점에서 ‘그걸로 끝’이라며 일축한 것을 두고 여론이 좋지 않다. 힘이 세진 뒤부터 오만해졌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여의도 선덕여왕’은 동생이 말했으니 그것으로 끝이라고 하면 그만인가. 이것이 (검찰에 대한) 수사지침인가”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오만하게 비쳐질 정도로 간단하게 해명을 한 배경을 두고 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빅딜을 통해 정산이 끝난 사안’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친이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6·3 청와대 회동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것이었다고 본다. 친박계 의원들이 일부 연루됐다는 소문이 지역정가에 퍼지고 있었고, 올해 초부터는 지만 씨와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의 친분관계도 정치권에서 회자될 때였다. ‘대권주자로 나서라’는 내락을 받으며 활동범위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저축은행 사태는 박 전 대표에게 악재 그 자체가 아니었겠는가. 스타트하자마자 바짓가랑이 잡히는 격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확실히 클리어를 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 대통령도 향후 안정적인 정국운영과 퇴임 뒤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박 전 대표의 요구를 들어줬을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빅딜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두 사람 간의 암묵적 동의(적어도 지만씨 등 박 전 대표 직계 가족에게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지난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중단을 검찰에 지시해 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을 터주었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1월 한 특강에서 ‘내가 대통령 재임 중 김대중 씨의 13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정축재 자금 문제가 터져 나왔다. 검찰이 그 문제를 수사하게 되면 김 씨 구속이 불가피할 것이고 대선을 치를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 판단, 검찰총장을 불러 직접 수사유보를 지시했다’고 말했었다. 이에 DJ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 바 있음). 이런 예를 볼 때 이번 저축은행 로비사건도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짐이 되지 않도록 클리어해줄 가능성과 연결된다. BBK 문제는 아직 완전히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이 대통령의 퇴임 뒤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 확실하다. 박 전 대표 또한 지만 씨의 저축은행 로비연루 의혹이 비자금 의혹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킬레스건이다. 양측의 공통이해 관계가 있는 두 사안에 대해 터치하지 말자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졌을 수 있지 않겠는가. 특히 가족문제는 박 전 대표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문제만은 확실하게 방어해달라고 요청했을 수 있다. 앞으로 저축은행 사태가 박 전 대표 쪽으로 번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사태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친이계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친박계 사이의 온도차가 확연하다. 사태의 전말을 온전히 컨트롤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야생마’ 박근혜 전 대표를 길들일 수 있는 훌륭한 채찍 하나를 가진 셈이다. 물론 자기방어용으로도 적격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